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65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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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밤 10시가 조금 지났을 즈음.
전 세계에는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벌인 희대의 황당무계한 비상계엄이라는 소식이 타전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인이라면 세계인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을 이 나라를 통솔해야 하는 대통령이 벌인 블랙 코미디 같은 일이었지요.
전 세계가 아무리 극우화가 진행되고 국민들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추세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그 야밤에 전 세계로 타전된 비상계엄이라는 소식은, 6,70년대 군사혁명과 80년대 군사혁명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던 대한민국의 그 옛날 개도국 시절로 한방에 돌려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와 헛웃음, 그리고 손가락질이 난무하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날의 뉴스가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전 세계인들이 주목했던 것은 어리석은 대통령 한 사람이 벌인 블랙코미디 자체 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어리석은 헛발질에 나라가 구석기로 회귀하는 것을 막겠다며 뉴스를 듣기가 무섭게 국회의사당으로 모인 대한민국 국민 하나하나의 눈물겨운 모습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 항거의식으로 한반도를 침략한 이들에게는 골칫덩어리 그 이상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치겠다고 고구려 원정을 나섰던 수(隋) 나라는 결국 그 원정의 실패로 국력이 쇠해져 멸망했고, 당 태종 역시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자신의 눈까지 잃는 원정 실패와 함께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기며 죽었더랬죠.
한반도의 침략은 언제나 민초(民草)들의 불길같이 일어나는 항거에 막혔다고 할 정도로 한민족이 뭉쳐서 들고일어나는 시위는 그야말로 항거의 역사였고, 전 세계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게 끈질기고 강력하며 일치단결하여 굴복하지 않는 시위의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형태로 한민족의 DNA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비상계엄을 막고, 헌법에 의거한 유일한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국회를 사수하기 위해 보였던 사람들의 모습은, 계엄이 해제되는 해프닝 이후, 헌법을 유린한 어리석은 통치자에게 잘못을 묻기 위한 탄핵 시위로 삽시간 국회 앞뿐만이 아닌 여의도를 시위의 현장으로 만들어 버렸고, 2024년 선진국의 대열에 속해 있다는 대한민국의 다이내믹한 민주주의의 진화현장을 전 세계의 카메라와 스마트폰들이 찍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2016년 광화문을 가득 매웠던 촛불시위는, 2019년에 있었던 홍콩의 우산 혁명에 앞서 민주주의에서 말하는(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가장 첫머리에 규정하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진리를 전 세계에 생중계로 각인시킨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 8년 만에 다시 벌어진 전국민적인 시위는 전 세계인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듭니다. 그들이 봐왔던 시위문화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축제(한국어로는 ‘놀이’와 같은 형태)인 듯 2030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현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진화된 형태의 민주주의 시위형태를 보여준 것이었죠.
세계인들은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시위’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 단체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강하게 행동력을 보여 원하는 바를 어필하는 그야말로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대개는 현 정부에 반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충돌이 많아, 최루탄이나 물폭탄을 쏴가며 시위하는 민중들을 해산시키거나 몸싸움에서 시작되어 더 과격한 경우는 화염병등을 만들어 불을 지르거나 격분한 경우, 분신자살의 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는 등 격렬하고, 과격하며, 전쟁터를 방불케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불법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국민들의 움직임이 그러했고, 군사혁명의 부당성에 항거하는 시위가 그러하였으며,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거리의 싸움이라는 의미인 ‘가투(街鬪)’라는 말이 80년대에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대명사처럼 쓰였습니다.
그런데, 2016년 전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나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한겨울 추위에 서로를 북돋으며 노래 부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원봉사자들이 결성되어 서로를 보다듬고, 핫팩을 나눠주고, 간단한 먹을 것을 나눠주는 일을 하면서 서로 같은 뜻을 이루려고 함을 하나 된 목소리의 함성으로, 노래로 표현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2024년 겨울 드디어 촛불시위에서 더 진화된 형태라고 하는 ‘응원봉 시위’, 혹은 ‘K-문화시위’ 형태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는 진화하게 됩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를 위해, 버스를 대절해서 아이와 부모가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름 모를 재외동포가 여의도의 카페에 선결제를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음료를 무료로 마실 수 있도록 함께 달려오지 못한 자신의 동참 의지를 보였고, 공연료도 받지 않는 가수가 자신의 장비와 스텝을 모두 준비하고 나와 추위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공연을 벌여주는, 진기한 광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국이 불안하고 시위가 폭동이 될 수도 있다며 원래 한국을 찾으려던 여행일정을 취소하거나 미루던 수많은 외국인들이 오히려 K-POP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그 장면들에 더욱 한국을 찾고 싶어지는 진기한 모습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독특하면서도, 한국인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기 가장 적합한 시위문화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몇 차례 설명한 바 있지만, 한국인들에게 있어, ‘흥’은 기쁠 때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한국의 노래를 대표한다고 일컬어지는 ‘아리랑’만 보더라도 팔도의 아리랑 속에서 즐겁고 흥에 겨운 시기뿐만 아니라 힘들고 지쳤을 때도 그 노래로 ‘흥’을 드러내고 ‘한(恨)’을 표출했다는 사실은 여실히 확인됩니다. 그러한 면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 중에서도, ‘노래’는 최루탄이 날리고 심지어 실탄이 쏟아지는 그 엄중한 시기 때부터 같은 뜻을 가진 동지의식을 공유하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어 온 방식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전인류 공통적으로 군대에 사기를 돋우기 위한 군가(軍歌)가 있고, 노동을 힘들지 않게 하려고 만든 노동요(勞動謠)가 있으며, 우리 편의 승리를 위한 응원가도 있긴 합니다.
그런 공통적인 면을 보더라도, 격한 군가의 음률에 가까운 딱딱하고 장엄한 가사로 일관되었던 시위 현장의 노래들은 ‘흥’이나 ‘한(恨)’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아 강했습니다.
그런데, 2016년 광화문 촛불시위를 기념으로 시위에서 불러지는 노래 역시 변모하게 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등이 7080 세대의 데모 문화에 친숙한 시위 노래였다면, 그것에 더해 7080 세대들이 그 시대를 대변했던 노래들로 <아침이슬>이라던가 <솔아솔아 푸른 솔아>, <사계> 등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대중가요와 민중가요 사이정도의 노래로 변모해 갑니다.
실제로 민중가요는 전 세계의 시위문화에 녹아들어 가 있고, 전문 밴드들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시위문화가 왜 그렇게 독특하게 진화하게 되었는지 살펴볼까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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