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66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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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한민국에는 1970년대까지 민중가요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1970년대 후반에 김민기가 야학활동을 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노래극을 제작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몇몇 대학노래패와 NCC 성향 개신교 교회 청년부들이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이 그룹들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민중가요를 창작하기 시작하면서,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암암리에 배포하기 시작한 것이 대한민국 민중가요의 출발이었습니다. 이런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결집해 1984년 노래모임 '새벽'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노래운동이라는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노래패'라고 하여 시위에 동원되었던 전문적인(?) 팀들은 문선(이른바 ‘문화선동’)이라고 하여 그들의 노래에 맞춰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율동들도 존재하긴 했었습니다. 지금 보면 어색하기 그지없고, 어디 북한에서 마스게임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당시에는 음악과 율동을 통해 문화적인 선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전략(?)과 함께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마당을 펼치는 듯한 시위문화가 성행했었습니다.
이른바 전두환의 신군부가 1981년에 기획(?)했던 ‘국풍(國風)’81’도 민주화 열풍 속에 녹아들어있던 젊은이들의 에너지 발산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는 의도였으니 과격한 시위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20대의 청춘들이 가진 ‘흥’의 의미를 부각해서 민주화에 대한 자각만 쏙 빼고 ‘의식 있는 민중’이 아니라 콜로세움에서 피를 보고 흥분하는 로마시민과 같은 ‘개돼지’로 길들이겠다는 마음이었겠지요.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은, 젊은 혈기의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는 시위에서 중요한 핵심이 같이 모여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이 시위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16년 광화문의 촛불시위에서 20대가 주축이 아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국민적인 시위가 확산되면서 시위 현장에서 주로 흘러나온 노래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노래여야만 한다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시위의 목적이 중심이기에 어디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조직도 없는 사람들이 같은 뜻으로 모여 그 결의를 다지는 데 있어 그들이 함께 아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큼 빠르게 일치단결을 유도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한국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70년대 학생운동으로 발 벗고 나섰던 1세대에서 80년대 민주화에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부모님과 삼촌, 이모세대들이 중심이 되었다가 이제 2024년의 시위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것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2030 세대로 바통이 이어진 것이죠.
그래서 나온 노래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듣고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K-POP으로 진화된 것입니다. 2016년까지만 해도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익숙해져 촛불의 불을 나누어 켜가며 모두의 희망을 기원하고 그 뜻이 관철되기를 바랐던 형태에서, 실질적으로 바람에도 쉽게 꺼지지 않고 번거롭게 타들어가지 않는 응원봉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응원봉은 2030들이 K-POP을 응원하며 사용했었던 LED 응원봉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거지요.
이번 탄핵 시위에서 대표적인 시위노래로 등장한 소녀시대의 2007년 데뷔앨범에 수록된, <다시 만난 세계> 같은 경우도 집회·시위 노래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7월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들이 학교 측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반대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다 경찰과 대치하던 중 학생들이 부르면서 매스컴에 처음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의 집회해산 압박에 서로 팔짱을 끼고 있던 학생들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SNS 등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본의 아니게(?)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위노래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류의 영향으로 2020년 태국 민주화 운동에서까지 이 노래가 시위노래로 태국 국민들에게까지 불려졌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시위용 노래들이 따로 배워야 하는 인위성이 있었고, 다소 격한 멜로디와 사람을 인위적으로 격동시키기 위해 활용되었던 것에서, 자발적인 범국민적인 시위로 확산되면서 시위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는 모두가 잘 알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로 변모해 갔습니다. 심지어 에스파의 최신곡들을 부르고, 신나는 댄스곡을 부르며 그 노래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간략하게 넣어 개사하는 형태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2년을 텀으로 4년에 한 번씩 번갈아있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선거송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한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것은 일종의 응원가나 CM송처럼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거든요.
뒤에 따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한국인들에게 노래가 갖는 다양한 목적성에 따른 시대적 추억을 담보하고 진화해 왔습니다. 예컨대, 광고에 사용되는 CM송은 단순히 광고의 상품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수능금지곡의 대표적인 후크송처럼 따라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한국인에게 독특하게 작용하게 되었고, 40대가 넘으면 자신도 모르게 노래방에서 부르고 있다는 트로트도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감추고 있답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이번에 진화된 K-시위는 한국의 공연문화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변모의 원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시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중심이 되었던 2030의 젊은이들은 K콘서트 문화를 통해서 시위가 자신들이 공연을 참여하기 위해, 혹은 공연을 즐기기 위해 했던 것과 매우 흡사해서 자신도 모르게 왜 내가 이렇게 이 분위기에 익숙한지를 의아하게 여겼다고들 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일단 K 콘서트는 준비할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질서 있는 입장을 하기 전에 웨이팅을 하고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전 예습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앞에서 지휘하는 리더의 움직임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야 그 공연을 훨씬 더 즐길 수 있습니다. 신곡이라고 하더라도 노래를 함께 부르는 떼창은 K 콘서트의 백미(白眉) 중에 백미(白眉)죠. 무엇보다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갖기 위한 공감능력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도 고도의 시민의식과 맥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논외의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운영진이라고 하여, 공연을 주관하는 이들과 상관없이 팬클럽의 운영위 조직을 통해 그 질서를 유지하고, 행동을 일원화하며, 응원을 하더라도 통일된 의상 콘셉트이라던가 응원봉 등의 아이템, 심지어 먹을 도시락이나 간식마저도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아주 익숙합니다.
특히나, 콘서트가 끝나며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연장의 쓰레기 문제까지도 철저하게 모두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챙기는 성숙한 공연문화로 훈련(?)이 되어 있는 정예부대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몸에 밴 훈련방식대로 시위현장에서 못난 국민의 대표를 끌어내리자는 민의(民意)에 동조하고 시위장에 하나둘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했던 한민족의 ‘마당’ 문화와도 그 맥을 같이 합니다. 공연을 하는 자와 공연을 즐기는 자를 구분하지 않고, 내 공간과 너의 공간을 구별하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함께 같은 뜻으로 즐기고 하나가 되는 그 과정들은 자연스럽게 성별이나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어우러지게 해 줍니다.
추운 겨울 오랜 시간 추위에 떨며 시위를 하면서도 뜨끈한 것을 먹고 힘내라며 국밥을, 그리고 김밥을, 또는 따뜻한 음료를 선결해하는 문화역시 마당에서 모두가 한데 어우러질 때 여유가 되는 이가 그것을 베풀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십시일반 도와가며 즐기는 것이 바로 한민족의 ‘흥’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시위는 모인 사람들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을 상처내가면서까지 무력으로 충돌하기보다는 그 뜻을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 가장 발달한 문화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탄핵시위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새로운 시위문화는 한국인이 그리고 한국 문화가 왜 지금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고도의 정치문화 표현행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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