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결혼에 실패하였는가?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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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혼한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하나같이 말한다.
“그쪽이 문제가 있어서 헤어졌어.”
이제는 왜 이혼했는지에 대해 묻는 것도 무례가 되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문이나 보도자료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성격차이’따위는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양쪽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고, 버젓이 내연녀, 내연남과 바람을 피운 것이 들켜서 이혼을 당한 쪽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문제가 있었던 쪽은 상대방이고, 상대방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
실제로 아주 드물게, 손에 꼽을 정도로 들어본 적 있긴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담담하게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일까? 앞서 누차 설명했지만, 그리고 결혼을 했다면 당신도 이미 아는 사실이겠지만, 결혼도 이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 책임이 한쪽에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걸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결국 재혼을 하더라도 이혼을 하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언가에 실패한 사람들의 경우, 결국 성공하게 되는 사람들은 그 잘못된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다음에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반성하고 그 과정을 수도 없이 복기한 사람들이다.
당신이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당신의 혼자만의 상상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셀프 삽질을 하면서 상대를 미워만 한다면, 굳이 당신은 결혼을, 아니 연애조차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체크를 할 필요가 있겠다. 두 사람이 상호적으로 관계를 통해서 ‘가족관계’를 맺고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면서 오해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그것 자체부터가 유아기적 퇴행을 겪은 똘아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고, 이것은 이혼이 아니라 정상적인 성인으로서의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똘아이들이 생각보다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이다. 나를 낳아준 DNA가 일치하는 부모와도 부대끼고, 똑같은 배에서 나왔다고 하는 형제나 자매와도 물고 뜯고 싸우며 의절하네마네하는 세상에, 전혀 다른 집안의 문화와 분위기에 묻혀 30여 년이 넘도록 각자 살다가 만나서 새롭게 가족을 이뤘으면서 그 두 사람의 관계가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어떤 오해도 일어나지 않고 사랑만으로 핑크핑크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도대체 존재할 수 있는가를 당신이 냉정히 자문해 보란 말이다.
불가피한(?) 사유로 이혼을 한 사람들의 경우, 그중에서도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성급하고 어리석은 선택과 분석을 반성하고 이혼의 절반이상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경우, 재혼에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정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사람들은 성급하게 재혼, 아니 새로운 사랑을 만들려고 들지 않는다.
자신이 한 실수나 싸질러 놓은 똥 같은 짓거리는 생각하지도 않고, 적당히 챙긴 재산분할로 이제 자신은 정말로 화려한 싱글이 되었다며, 동호회 모임이나 심지어 대놓고 소개팅을 찾으러 다니며 불금에 원나잇을 기대하며 클럽을 기웃거리기까지 하는 어리석은 짐승들은, 자신의 인생이 어떤 전환점을 맞게 될지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더 올바르게 일궈나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미래도 없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성인군자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임을 알기에 그렇게 꾸준하게 사람들에게 수양을 위한 덕목으로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레벨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인정이나 상대방에 대한 사과 따위가 아니라는 지적 소양이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어느 대학 출신이고, 학위를 어디까지 받았고의 가방끈의 지적소양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했어도 자기 깜냥을 알고 늘 배우려는 자세로 노력하는 이들은 행여 잘못된 선택을 해서(물론 그럴 가능성도 적기는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되었더라도 냉정한 현실파악부터 들어가서 자신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을 사리게 된다. 이 레벨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한 현실분석이 되는 단계에 해당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수정보완할지에 대한 부분은 더더욱 어렵다. 게다가 그것이 자신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조화롭게 융화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면서 그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거기에 더해, 행여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있게 되면, 현실적인 생활문제에 치여 냉정한 자기 분석이니 반성을 할 틈도 없이 등에 떠밀려 사회에 내동댕이쳐져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며 신세를 한탄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연애를 하다가 헤어져도 그 관계를 정리하고 새롭게 자신의 루틴으로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법적으로 부부였던 관계를 정리하고 그 곱지 못했던 전투의 참혹함 속을 헤어 나오는데 얼마나 더 많은 물리적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단순하게 부부만이라고 생각했던 관계 속에서 파생된 수많은 관계들과 인과관계에 대한 정리와 해명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이란 말인가?
헷갈리지 마라, 이 칼럼은 엄밀하게 말해 이혼을 한 이들을 위한 이후의 가이드가 아니다. 이혼이라는 헤어짐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당신의 인생에 덮쳐올 쓰나미급의 파고가 될 것이기에 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당신의 인생을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은 레벨로 올려놓을가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생각하고 다양한 변수들에 대해 불행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혼에 실패한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에서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그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점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당신이 결혼생활에서 그것을 이미 연습하고 준비하고 ‘함께’ 논의했다면 굳이 상황을 더더욱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일깨워주려 함이다.
여기서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이 지극히 내성적인 성향에 다른 사람에게 지레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는 사람의 유형은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자기반성형 인간과 확연히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절대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하는 법이 없는 사람과 잘못했다고 사과할 일을 만드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그런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차이로 다르다는 설명정도면 피부에 와닿는가? 후자의 경우는,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정말로 진심을 담아 상대방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의 의미를 전한다.
사과보다 핑계가, 그리고 변명이 익숙한 배우자와 살고 있다면, 먼저 당신이 그 상대방과 비슷해져 가지는 않았는지,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할 필요가 있다. 대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호관계가 늘 그렇듯이 부부 중에서도 누군가가 리더 역할을 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경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목소리만 크고 성격만 지랄 맞아서 지가 리더라고 우기는 경우, 그 부부가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그들에게서 나와 그런 가정에서 보고 배운 게 빤한 아이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더 발전해 나감에도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과 상관없이 사람이 더 퇴화하거나 오히려 잔머리나 굴리고 더 사악해져 가고 저능해져 가는 것은 인간 자체의 결함이고 고질적이자 태생적인 문제일 뿐이다.
당신이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아니, 이미 밟으려고 폼을 잡고 있더라도 지금이라도 이 글을 읽으며 정신이 퍼뜩 들어 대오각성(大悟覺醒)하고 제대로 된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부부의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일상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캐나다 토론토 대학으로 적을 옮겨 역동적인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조던 피터슨(Jordan Bernt Peterson) 교수의 말처럼, 당신은 당신의 방 정리부터 제대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매번 강의하면서 콜라를 입에 달고 뭔가 매너리즘에 빠졌던 그가 어떻게 제2의 인생을 펼치며 거듭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찬찬히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그가 말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사변적인 자신의 주변부터 확실하게 하는 실천이 당신을 바꾸고, 당신의 거지 같다 여겼던 결혼생활을 변화시켜 줄 것이다.
조던 피터슨의 강의나 책을 통해 한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말하는 방 청소는 은유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에 대한 표현임과 동시에 굉장한 은유적 표현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당신의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그 사소한 것들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바뀜으로 당신의 인생이 바뀌는 것이지, 상담사를 통해, 혹은 정신과 의사를 통해, 혹은 어디선가 백마 타고 달려와주는 이상형 왕자님을 통해 당신의 인생이 지금으로부터 180도 변화할 확률은 1도 없다.
당신이 헤어짐을 생각하게 만든 것도 당신이지만, 당신의 인생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짓게 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당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