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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20. 2024

결혼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5)

왜 그들은 결혼에 실패하였는가?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52


  백 가지 결혼생활이 있다면 백 가지 경우가 있다. 이혼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무리 그들을 대변하는 변호사에, 그들의 부모와 친구라 할지라도 두 남녀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두 당사자 말고는 알 수 없는 진실이 언제나 감춰져 있기에 백 가지 이혼에도 백 가지 사연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있는 사연과 역사와 상관없이 성급한 자기 객관화를 통한 오해로 결론을 내는 일을 아주 잘하는 경향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길고도 알 듯 모를듯한 말이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들은 여러 경우의 수를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쪽, 혹은 바람을 넣는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단정 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과 부합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실제로 그런 경우는 5%도 넘지 않는다.


  예컨대, 가장 흔한 이혼 사유중 하나인 배우자의 바람, 즉 불륜을 살펴보자. 

  카톡을 굳이 조사할 필요도 없이,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다른 상대와 단둘이 여행을 가거나 모텔, 혹은 차 안에서 찐한 애정행각을 벌이고서 블랙박스에 담긴 그 빼박 증거조차 깔끔하게 치우지 못해서 지저분하게 결혼생활을 끝장내는 짐승들이야 누차 강조한 바와 같이 애저녁에 그 결혼을 정리하고 갈라서는 게 맞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짐승들과 상관없이 정말로 작은 오해로 시작된 반목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결혼생활을 끝장내버리는 경우가 이혼 경험자들에게서는 적지 않게 발견된다.


  결혼이 아닌 연애를 하더라도, 분명히 의도한 게 아닌데 우연히 마주치게 된 오해를 살만한 장면들이나 상황들로 인해 머리끄덩이를 잡고 죽이네 살리네서부터 울고불고 술 퍼먹고 깨지고 하는 등의 코미디는 이미 당신들의 연애사에서도 충분히 증명된 바 있지 않은가?


  한국의 막장드라마의 공식에서 늘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혼사주지장애(결혼을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주스토리로 삼는 이야기 방식을 이르는 고전소설 용어)를 기본 플롯으로 하는 막장드라마에서는 늘 삼각관계 혹은 사각관계를 통해, 주인공들의 순탄한 연애와 결혼이 성공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뻔한 오해를 배치하여 시청하는 아줌마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곤 한다. 막장드라마라고는 하지만, 개연성이 충실한 탓인지 드라마 속의 상황들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당신의 연애에서 그랬듯이 당신의 결혼생활에서도 그런 드라마보다 더 유치할 것 같은 오해와 어긋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심지어 당신이 모르고 진실이라며 빈정상해서 속에 담고 그냥 넘어갔던 일들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이 당신의 오해였음이 밝혀져 당신을 허탈하게 실소하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이다.


  얼마 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글을 통해 소통하던 40대의 귀여운 아줌마의 사연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글제에 버젓이 ‘이혼’이라고 적은 그녀는, 자신이 최근 자신의 생일날에 겪은 일을 소개하고 있었다. 남편이 독일의 주재원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외국 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주재원 당시의 다소 풍족하고 여유로웠던 생활에 비해 한국의 월급쟁이 생활에 부대껴가던 그녀는 이제 마흔 중반을 넘어가며 갱년기 모드로 들어갈지 말지 애매한 상황인 듯 보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생일날 집 앞의 청계산에 등산을 하고 싶어 남편에게 미리 동행을 요청했는데, 남편은 미적미적거리다가 결국 그녀와 함께 등산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혼자서 청계산을 오르던 그녀는 자신의 생일날 그렇게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며 며칠 전부터 양해를 구했는데 함께하는 등산을 취소해 버린 남편이 너무도 밉고 서운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울컥해 버린 마음에 산을 올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생일날 남편과 함께 동네 근처 산을 오르는 것도 못할 정도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노라며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서러운 울음에 남편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해주려는데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어.”


  그 말에 그녀는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렸다고 했다.

  한 편의 웃픈 콩트 같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당신의 결혼생활에서도 숱하게 일어났고 일어날 일의 장르 중 하나이다. 그녀가 분통을 터트리며 전화를 하고 분출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진실일 수도 있었던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자신은 상대를 더 챙겨준다고 했던 행동이나 준비 과정 등등이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비수처럼 꽂히는 생채기를 내는 일은 빈번하다. 뒤에 더 강조하여 상술하겠지만, 이것은 사소하지만 끊임없는 소통이라는, 결혼생활에서, 아니 인간이 자신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존재라는 점에서 누구하고 든 갈등과 반목을 부러 만들지 않을 생각이라면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고 혼자서 다 먹고 싶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여 같이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것을 상대방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 먹어치운 빈 접시를 보고 서운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한심스러운 후회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과 똑같을 거라고 상정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일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생선의 맛있는 몸통을 맛없다며 안 먹고 모두 자식과 남편에게 발라주고 자신은 쪼그라든 머리만 먹으면서 그것이 제일 맛있다고 한 것이 배려였다는 것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그 입장이 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러 생색을 내고 과장을 할 것까지는 없다 손 치더라도, 내 지금 마음 상태가 어떤지 내가 왜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지 상대방이 관심법을 써가면서 매일같이 스토킹 하는 자세로 읽어내려고 해도 오차가 발생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하물며 자기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 혼자서 아무 말 없이 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그걸 몰라주냐며 눈치도 없냐는 둥 사랑이 식었다는 둥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둥 울고불고 난리굿을 쳐봐야 그런 사람만 바보라는 결론이 도달할 수밖에 없다.


  생전 하지 않던 생일선물에 고급속옷을 사러 들러 매장의 여직원에게 도움을 받는 모습을 우연히 매장 밖의 쇼윈도를 통해 보게 되는 순간, 어디 삼류 싼마이 드라마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상상하고 내연녀와 함께 속옷을 사주려고 들렀다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 자신의 다 구멍 난 속옷을 보며 흐느끼고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삽질을 하고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급발진을 한다고 한들 그 어리석고 우매한 오해를 누가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결혼을 하고서도 또 다른 짝이 가슴을 콩탁이게 한다며 짐승짓을 하는 것들을 잡을 때에도 이혼전문 변호사라는 것들이 절대 물어보지 말고, 티 내지 말고 여러 가지 증거들을 수집하라는 둥의 유튜브를 보고서 삼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에 몰입하는 짓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신뢰가 깨져버렸다면 헤어지면 되는 거고, 그럴 것이 아니라면 신뢰하는 마음을 버리지 말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소통하면 된다. 제대로 된 진실을 크로스 체크해서 확인할 용기조차 없으면서 그간 보고 들었던 그 많은 지저분한 소문들의 주인공을 굳이 자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의 부정이라고 의심할만한, 혹은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할 정도의 심각한,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며 급발진을 하기 위해 슬슬 시동을 걸게 되는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까지 냉철한 이성으로 컨트롤하라는 강권은 할 생각도, 마음도 없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당신이 신중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결정한 결혼생활, 그리고 당신이 인생의 동반자로 삼았던 배우자에 대해서 그저 일방적인 당신의 상상과 생각과 오버로 다 뒤집어엎는 것이 과연 앞뒤가 맞는 행위라고 생각하나?


  우발적인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더 심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정상참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의 인생이고 당신의 결혼생활이다. 당신의 경솔한 판단에 의해 더 힘들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은 성인이 당신이 오롯이 지게 된다.

  결정은 결코 흥분했을 때 내리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경도되었을 때의 대화란, 발화에 가깝다기보다는 감정의 쓰레기들을 분출하려는 배설에 가까운 것이기에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가 멈출 수 있어야 한다. 흥분한 사람에게 차분해지라는 것처럼 모순된 요구도 없다. 차분해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격정이 휘말려 이성적일 수 없다면, 일단 멈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길을 잃은 아이들에게 미아가 되지 않도록 처음 부모가 가르치는 교육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이 든 순간, 그 자리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유는, 아이가 길을 잃고 부모와 떨어져 당혹스럽겠지만, 아이가 할 수 없는 일이니 어른들이, 부모가 아이가 없어진 바로 그곳에서부터 찾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심오한 문제해결의 방법을 아이 때부터 가르쳐주는 철학적인 메시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아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다고 여겼을 때는, 그것을 도와줄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다른 어떤 행동을 해서 일을 더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그림을 그리다가 한 번의 붓놀림 실수가 있을 경우에는 선생님의 붓터치로 그 실수를 쉽게 커버할 수 있지만, 그 실수에 당혹스러워하며 그림을 살려보겠다고 개칠을 여기저기 하는 순간, 나중에 선생님이 아니라 화가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그 그림을 살려줄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상대방의 마음을 묻지 않고서 당신이 읽어낼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당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배우자를 영적 능력이 있는 무당이나 보살로 키우려는 하드 트레이닝이 아니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태도라 할 것이다.


  오해는, 오해를 사게 할 만한 행동에서 나오기보다는 그 원인행위에 대해 충분한 소통행위를 하지 않음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결혼은 결국 두 남녀만이 알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이다. 두 사람 간에 소통이 없이도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갈등과 반목 없이 오해를 사는 일이 없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나은 관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표현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제대로 된 소통이 없는 관계에서 발전된 애정이 싹틀 리가 있을 것이라는 허망한 기대를 하지 마라. 평생을 살았어도 서로 다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했던 그들은 그런 허무맹랑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결혼에 실패했단 말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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