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결혼에 실패하였는가?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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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고 하던 시대가 있긴 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이유를 핑계로 대며 억지로(?) 마지못해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이유와 성향 때문에 억지로 이혼을 하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보다 너무도 손쉽게 이혼을 생각하고 결정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여겨 결혼까지 결정해 버린 철딱서니 없는 이들이 의외로 많기에 그들의 결혼이 언제 깨져도 깨질 것이라는 예상은 그닥 어려운 예언 수준에도 끼지 못한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이 다들 결혼하는데 나도 빨리 얼른 누구든(?) 잡아서 결혼을 해야지.’라던가 ‘결혼을 하는데 이 정도 수준을 맞춰서 해야 하니까 남들만큼은 해야지’ 등등 자신이 주체가 아닌 늘 다른 사람이 비교의 대상으로 등장해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들은 여지없이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종지부를 찍게 된다.
심지어 그들은 ‘남들도 다 쉽게 이혼하는데, 나라고 못할 건 또 뭐 있나?’라는 식으로 트렌트(?)를 따라가듯이 자신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트렌트에 맞춰 재산을 갖아 많이 뜯어내준다는(실제로는 뜯어내는 비율만큼 그가 먹는다는 당연한 진실을 외면한 채) 변호사를 찾아가 그들의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고 나서 어슬렁거리며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인터넷의 이혼경험자들의 글이나 발에 채일정도로 많은 이혼자들 간의 동아리 모임이나 독서모임을 빙자한 새로운 짝짓기 모임에 고개를 들이밀고 어슬렁거린다.
앞에서도 한번 설명한 바 있지만, 당장 먹고살 걱정이 앞서서 새벽에 나가서 하루하루 벌고 그것으로 아이의 학교를 보내고 빚을 갚아가며 살아가는 현실의 벽에 처한 사람들은 이혼은 사치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서 그들의 세치 혀에 놀아나서 있지도 않았던 일까지 끄집어내서 자신을 피해자로 모는 문서를 다 작성해서는 변호사도 아닌 사무장이 적당히 원래의 포맷에 맞추어 서류를 작성해서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뽑아낸 듯한 소장과 답변을 가지고 기계적으로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코딱지만 한 재산을 쪼개고(양분이 아닌 양측 변호사에게 갈 돈까지 합쳐 4등분이라고 해야 맞겠다) 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지금 헤어짐을 선택하려고 이 시리즈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은 배가 불렀거나 배에 기름이 차서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고 이후에 잘못된 선택으로 지옥문이 열릴 것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애송이라고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수만 사람이 있자면 수만 인생이 있는 법. 저마다의 고달픈 인생, 그리고 결혼생활을 누가 누구라서 비난할 것이며, 이혼을 생각하거나 했다고 해서 누가 그를 싸잡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경우와 상황에 따라 판단은 달라지는 것이고, 무엇보다 결혼은 두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한 것이기에 아무리 사회적 상식이 어떻고 인간의 도리가 어떻게 하든 간에 두 사람 간의 동의가 있고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낮에는 그렇게 정숙하기 그지없고 근엄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두 커플이 밤에 두 사람의 침실에서 부부생활을 얼마나 난삽하고 화려 찬란한 새로운 시도를 하든 간에 두 사람이 좋아서 동의하에 그것을 즐기는 것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의 결혼생활을 비난하거나 이상하다고 폄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해진 기준이나 정답 따위는 없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단, 그보다 더 강하고 심한 두 사람 간의 동의, 다시 말해 어느 한쪽만의 주장이나 즐거움, 만족을 위한 결정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어렵다고들 하는 거다.
다시 자신의 기준은 없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려 결혼에 실패한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들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 함은, 상대방, 즉 배우자의 시선은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것보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배려나 배우자에 대한 걱정 따위는 3순위이거나 4순위에 해당한다.
철없는 20대 연애시절에는 그것이 애교나 순수함으로 변명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청혼할 때 근사한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로 청혼을 한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준비는 해줘야 한다는 둥, 결혼식을 하기 전에 당연히(?) 근사한 약혼식은 해야 한다는 둥, 결혼 전에 같이 자는 경우에 싸구려 모텔이 아닌 근사한 호텔이나 호텔에 준하는 모텔이 아니면 함께 하지 않겠다는 둥.
이 모든 주장의 배경을 헤집고 들어가 근원을 찾아보면, 이러한 것들이 정작 자신이 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철없는 20대도 상대적으로 30대나 40대의 기준에서 본 것이니 20대가 과연 아무런 개념 없이 철없어도 되는 나이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분명히 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혹은 학생시절부터 알바 시급에서부터 월급에 이르기까지 꼬박꼬박 경제계획을 세우고 적금을 들고 청약까지 들어가며 결혼과 미래를 준비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결혼은 결국 투자고 마케팅이라며 버는 족족 명품을 사는 것에서부터 피부관리실에 다시고 성형수술을 해가면서 흥청망청 자신을 꾸며야 그 수준에 맞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며 매주 불금마다 클럽에 가서 온몸을 흔들어대는 정신 나간 청춘도 있다.(말이 청춘이지 서른이 넘어서까지 골드미스 미스터 어쩌고 해 가며 그렇게 사는 친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결혼은 현실이라며 자신처럼 흥청망청 모아둔 돈 하나 없이 자기를 위해 쓰고 투자한답시고 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려는 자는 없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과 똑같이 흥청망청 쓰고 사느라 모아놓은 돈은 하나도 없이 마이너스 통장에 빚만 잔뜩 있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싫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아가는 모순덩어리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개념 없는 요즘 세대를 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념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착실하게 설계하는 실속파 MZ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런 개념 없는 청춘들이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그렇게 살다가 만나는 배우자가 그들의 유형과 크게 다른, 그들이 원하는 알부자 스타일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결혼생활, 심지어 아이가 태어나서까지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놈의 SNS에 올릴 사진에 중독된 정신없는 사회적 현상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기가 사는 집과는 무관하게 외제차를 굴리고 다녀야 하고, 아이의 유모차는 웬만한 명품백의 가격에 육박하는 것을 사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영유(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고, 외식을 할 때도 넷플릭스에 나왔던 셰프가 운영하는 곳에 한 달 예약을 기다려서라도 사진을 찍고 와야 하는 것이다.
내가 꼴불견의 극치 사례를 든 것이긴 하지만, SNS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알맹이보다 허장성세(虛張聲勢)로라도 자신을 화려한 공작인 듯 보여주고 싶어 하는 심리는 가진 사람들은 대개 결혼에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화려한 이혼 배지를 달고 화려한 싱글이라고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셀레브들과 동질화를 기대한 그들은 이혼의 현실을 하루하루 느끼며 평범하지만 행복을 둘이 함께 완성해 가는 가족을 보면서 또다시 묘한 이질감과 함께 질시를 느끼게 된다.
헤어짐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기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파티복에 편안한 옷이란 있을 수 없다.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코르셋으로 허리를 쥐어짜야 하고, 연미복의 복부 부분 단추를 채우기 위해서는 늘 배에 힘을 주고 있어야만 한다. 가장 편한 옷은 잠잘 때 있는 잠옷이지만 잠옷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는 자들은 없다. 그렇게 화려한 스크린에 등장하는 선남선녀 같은 스타들도 평상시 집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아이를 픽업하러 다니면서 풀메이크업에 화려한 명품을 걸치고 다니지는 않는다.
이유는 하나이다. 그들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으로 돈을 버는 프로들일뿐, 그들이 아무 때나 늘 명품을 두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고 의식하며 살아가다가는 숨이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챙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남을 의식하나? 당신이 이혼을 하게 되면 당신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왔던 부모님의 지인분들이 당신을 흉볼 것이며 당신의 부모님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여 이제 더 이상 친구들 모임에 나가는 것이 불편해질 것이며 등등 그따위 생각을 배려랍시고 하기 전에, 당신이 가장 행복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놓지 말고 노력하는 것은 어떤가?
당신의 부모님이 정작 원하는 것은 당신의 이혼여부가 아니라, 당신이 정말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왜 당신만 모르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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