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Dec 10. 2024

결혼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3)

왜 그들은 결혼에 실패하였는가?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50


결혼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힘이 지나치게 미약하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처럼, 자신은 그저 열심히 살았는데 바람을 피우거나 쓸데없는 사업을 벌인다고 능력도 안되면서 판을 벌려 여기저기 손을 벌려 돈까지 끌어오게 만들어놓고 망해버리고 마는 특이한 예외적인 경우는 제외하도록 한다.

모 연예인의 경우 자기 남편의 직업이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지요. 배우자가 대대적인 사기를 벌여 구속되어 감옥에 갈 죄인이 될 때까지도 그 사람이 밖에서 뭘 하는지 몰랐다고 버젓이 인터뷰하는 연예인도 있긴 하다. 그것이 산 사람은 살겠다는 선긋기의 일환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랬는지 진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부부라고 말하기 조금은 어렵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부부의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딱 하나의 정답이 있어 그것이 아니고서는 모두 오답일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일상생활을 모두 공유하는 부부가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힘든 일을 겪는지 등등을 업무보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흐름을 감정상으로 공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보공유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건지, 멋지게 내가 힘든 것에 대해서는 배우자가 알게 되더라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인데 굳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어리석은 멘트가 멋진 줄 알며 말하는 이들에게는 굳이 왜 결혼을 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결혼은, 함께 늘 맛있는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행복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도 기본적인 상식부터 다시 배우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 좋은 일들을 숨기고 좋은 일들만 보여주고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일상생활을 모두 함께 공유하는 가족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뿐더러 그렇게 혼자서 무슨 대단한 독립투사도 아닌데 비밀리에 어디서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 다른 사람들의 금품을 갈취해서 가족들의 배를 채우는지 알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부모에게 자식들이 모든 것을 못 본척하면서 그저 누리는 것에 집중하면 그 집안에 과연 제대로 돌아갈까?


그렇게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고 외재적인 상황을 핑계 댈 뿐, 자신의 잘못이나 자신이 부족한 점은 원인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은 업무상으로도 그렇지만, 단순한 업무가 아닌 일상생활을 모두 함께하는 부부가 감정적인 문제든 금전적인 문제든 외재적인 문제든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늘 망각하곤 한다.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시켜서, 장모가 처가살이를 강요하면서 나를 무시해서, 배우자가 자꾸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배우자가 능력이 없으면서 자꾸 소비만 늘려나가서 등등 그들은 자신이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나 자신의 판단에 의해 배우자를 선택하고 그 배우자와 남은 인생을 더 멋지게 꾸려나가겠다고 결정한 사실을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모든 문제가 자신의 밖에 있다고 투덜거리곤 한다.


남을 괴롭히거나 남에게 피를 묻혀서 그 돈을 집에 가져와 그 돈으로 호의호식할 때 그런 사람들은 결코 그 돈이 깨끗한 돈이 아니고 돈을 버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고 상황이 안 좋아지고 나면 마치 남보다 못한 타인처럼 자신은 그런 돈인 줄 몰랐다고 도통 말을 해주지 않아 그런 과정을 거쳐 가져온 나쁜 돈이었는지 몰랐었다고 같잖은 발뺌을 해버리곤 한다.


몰랐을 리가 있나? 모르고 싶은 거겠지. 부부란, 행복한 순간도 그렇지만 힘든 순간도 함께 하는 ‘전우’라고 설명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나 좋은 상황일 때는 내 사랑이고 뭔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다 그 웬수의 탓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절을 하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식이라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지탄을 받아 마땅할 텐데 하물며 함께 인생을 만들어나가자고 한 배우자에게 그런 문제가 있었던 걸 나는 몰랐으니 그저 손절하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배우자의 사업실패나 경제적인 사고가 터졌을 때 위장이혼을 하거나 정말로 손절하며 이혼을 하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는 비일비재하다. 


그런 사람들은 결혼뿐만 아니라 대개의 생활방식을 유년기 때부터 그렇게 형성되어 왔을 확률이 아주 높다. 자신이 성적이 낮아 공부를 못하는 것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이 너무 공부를 잘해서이고, 자신이 못생기고 뚱뚱한 것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워낙 다들 돈으로 다 고치고 관리하는데 자신이 변변한 가정에서 지원을 받지 못해서 그만큼 관리를 못해줘서 그렇다는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인 삶을 영위해 왔던 것이다.


물론 조금은 과장된 묘사를 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결혼이 무언가를 책임지는 성인으로서의 결정임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기괴한 행태를 보이곤 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자 할 때는 큰 목소리를 내지만 그들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는 것으로 사회에 기생한다.

문제는 그것이 대놓고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마치 사회생활을 잘하고 공부도 잘해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는 듯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선으로 가장되어 있다는 것인데, 아예 무책임하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여우짓을 하며 사는 기생충이라면 사회에서나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할 당시부터 그 밑바닥이 드러나서 손절을 당했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손쉽게 자신의 바닥이 드러나며 민낯을 드러내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이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해 가며 절대 공격받지 않겠다는 생존본능을 보이며 양식이 있는 소시민을 자처하며 뻔뻔하게 생활을 유지한다. 문제는 그들이 결혼을 했을 때, 그것이 생활이 되었을 때, 자신의 가면을 평상시 집안에서까지 쓰고 좋은 남편, 혹은 좋은 아내, 더 나아가 멋진 아빠와 엄마를 연기하는데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해서 어느 순간 그 민낯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것은 상대방이 결정적인 경제적인 사고를 쳐서 그 타격으로 인해 실질적인 손실이 발생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말로 배우자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사고를 치는 개념 없는 친구들이 점차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 행위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선택한 순간부터 그 사람이 결코 타인이 아니라 ‘우리’로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좌하고 이끌어주고 보듬어 더 나은 ‘우리’가 되도록 설득하고 설명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가져온 돈인지도 모르면서 공돈이 생긴 것처럼 맛있는 것 먹고 외제차를 턱턱 뽑아서 타고 다닐 때는 좋아라 하며 지내다가 갑자기 그것이 사기로 인해 취득한 재산이고 남의 피눈물을 뽑아 만든 것이며, 어쩌다가 대박이 났을 뿐, 사기단에게 걸려 더 큰 빚더미에 앉게 되는 서막이었음을 알게 되면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변해서 우리가 언제 우리였느냐며 자기 혼자서 살 궁리를 찾는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 동물적인 본능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사랑을 통해, 그리고 가족에게 보이는 아무런 이유 없는 배려와 희생 등이 머리로 생각해서 배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사실은 짐승도 본능적으로 어느 정도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짐승도 그러할진대, 당장 내가 해야 할 책임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내가 누릴 권리만 생각하고 내가 입을 손해를 생각하며 계산기를 두들겨 지금이라도 손절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이혼이 흉도 아니라며 스마트한 연기를 하는 이들이 대개 이혼을 몇 년쯤 쓰다가 버리는 스마트폰 교체처럼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서글프게도 이런 유형의 부류들은 점차 더 많아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점차 더 말초적이고 저급하며 동물적인 것에 가까운 것으로 추락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사회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의 지적도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공식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싸우거나 사고를 치고나 다툼이 있어도 그것을 ‘함께’ 이겨내는 ‘정상적인’ 성인이 그렇지 못한 동물 이하의 본능을 가진 존재들과 이제는 비율적으로 비슷해지거나 더 적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만약 헤어짐을 생각함에 있어, 자기 자신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진지하고 냉철하게 분석했다면, 내가 왜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닌 둘이서 하나가 되어 ‘우리’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겠다. 물론 매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당신 혼자만의 숙제처럼 해나가서는 안된다. 헤어지기 전까지 당신은 ‘우리’니까 말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85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