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17

사키에의 세크하라 사건 -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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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히키코모리의 실체를 눈앞에서 보이기에는 동민도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게다가 나이도 마흔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 같은 외모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것은 그 외모에 놀람이 가시기도 직전이었다. 중국 문학파트의 여학생들의 평균 나이에 비해 그녀는 거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사과를 팔겠다고 꾸민 마녀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어린 그녀들을 밀치면서까지 그 마녀 할머니가 주동적으로 동민에게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박동민입니다.”

“아주 많은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와서 처음 보는 것 같지가 않군요.”


그녀의 태도가 의도적으로 시비조를 일관한다는 것을 감지해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여자에게 몇 마디 하지 않고서 다짜고짜 거는 싸움을 받아주기도 그랬다. 동민은 그대로 그녀를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옆에 있던 사람들과 대화의 화제를 자연스럽게 넘겼다.


“사키에 짱은 박상에 대해서 잘 아네?”


다른 학생들이 동민에 대한 궁금증을 사키에에게 묻고 있는 중이었다.


“사키에 짱~! 잘 얘기해 줘야지 이상한 얘기만 하지 말아 줘.”

“내 맘인걸요? 그래도 오빠니까 박상이 이해해야 돼요.”


나이 많은 히키코모리를 가운데 두고 다들 그녀의 존재를 투명인간 취급하듯 엇나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듯해 보였다. 동민의 술잔이 빌 때마다 술을 따라주는 것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키에의 독점 아닌 독점이었다.


“3차로 자리를 옮기죠.”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확히 N분의 1로 계산을 마치고 어디로 이동할지를 얘기하는 동안에도 사키에와 동민이 둘이서 농담을 하며 투닥거리는 장난을 하고 있던 터였다. 사키에는 내내 다른 친구들에게 동민이 결혼하고 나이가 꽤 든 자신보다 오빠라는 점을 내내 강조하며 자신이 어린 동생이라며 깔깔거렸다. 동민이 귀엽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에 군밤을 쥐어 받는 듯하다가 머리를 쓰다듬자 사키에가 고양이 흉내를 내며 다들 웃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괴한 괴성이 울렸다.


“만지지 마!”


다들 흠칫 놀라 괴성이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150도 채 되지 않는 키가 절반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으로 뒤덮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아까 만났던 히키코모리였다. 다들 흠칫 놀라 그녀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괴성을 지르고서는 그녀는 또 쑥 하고 그 사이를 지나가버렸다.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의 원래 캐릭터를 잘 알고들 있던 탓인지 아무런 제지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동민은 내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상한 여자의 모습에 기분이 확 잡쳐버렸다.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인에게 그런 이상한 취급을 당한 것만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 기분을 읽었는지 사키에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다가와 속삭였다.


“원래 조금 오버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에요. 자기가 내 보호자역할 같다고 생각하고 자기 기분대로 하는 거니까 오빠는 신경 쓰지 마세요.”

“됐어요. 나는 여기서 먼저 들어갑니다.”


그렇게 동민은 인사를 끝내고 썩 좋지 않은 인상을 안긴 연구실 첫 모임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터진 것은 바로 다음날, 토요일이었다.

전날의 기분전환도 할 겸, 공부를 하려고 연구실에 가장 일찍 나갔던 동민을 마츠모토가 잡았다.


“잘 만났네요. 아까 유하즈 선생님이 박상을 찾으시던데, 지금 아래층 강사대기실에 가보세요. 선생님이 아직도 계실 테니까···”


유하즈 교수가 자신을 찾을 일이 무엇인지 의아하긴 했지만 일단 바로 가방을 내려두고 강사대기실이라는 곳을 갔다. 토요일이라 학교건물 자체가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다.


“아~! 박상! 어서 오세요.”


소심함의 극단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 유하즈 교수였다. 조교수에서 정교수로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이였는데, 학부학생들의 관리를 맡고 있어 학부제로 이루어지는 문학부의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미소로 일관하는 전략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는지···”


동민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음. 좀 민감한 문제 이긴 한데요. 세크하라라고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세크하라요?”


동민은 처음 듣는 일본어도 아닌 것이 영어도 아닌 묘한 발음의 단어에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세크슈알 하라스만토,라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발음으로 유하즈가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동민이 쉽게 이해되지가 않았다. 한 30초 가만히 혼잣말을 하던 동민이 말했다. 일본식의 영어에는 익숙해지기 어렵다고 늘 투덜거리던 동민에게는 신기한 용어였다.


“네? 아, 섹슈얼 하라스먼트(Sexual Harassment) 말이군요. 그걸 일본에서는 세크하라라고 합니까?”

“네. 현재 일본에서는 그 세크하라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는 세크하라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치를 합니다.”

“아 네. 한국 역시 그렇습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S대학에서도 조교의 성희롱사건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다시 유하즈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얘기하기 좀 곤란하긴 한데···, 어제 어느 학생으로부터의 상담이 있었습니다. 박상이 세크하라를 한 것 같다는···”

“뭐라구요?”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안 좋았던 쪽은 자신이었건만,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는 세크하라라니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싶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세크하라 했다는 겁니까?”


동민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항의하자 유하즈가 움찔하며 동민에게 차분해지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 박상이 사키에상에게 그런 행동을 취한 것 같다는···”

“네? 사키에 상이요?”


동민은 금세 그 문제의 발단이 나이 많은 여자 히키코모리의 음모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다시 냉정을 찾은 동민이 유하즈에게 역으로 물었다.


“원래 섹슈얼 하라스먼트라는 것은 당사자가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안인데 당사자가 불쾌했다고 제가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러던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일단 그 얘기를 논하기 이전에 사키에 상의 지도교수에게서도 이런 문제가 우려된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제보요?”


동민은 갈수록 가관이라는 표정으로 유하즈를 멍하니 보았다.


“사키에 상은 결혼을 했고, 박상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약혼자가 있는 사람인데 이런 오해나 제보가 자꾸 나오는 것이 안 좋다는 결론에서 그냥 뭔가 있으니까 경고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직 문화도 다르고 그런데 조심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입장에서 얘기한 것뿐입니다. 오해는 말아주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쓸데없는 잡음으로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강사대기실을 빠져나와 연구실에 돌아오면서도 동민은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분을 삭일 수가 없어서 사키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크하라라면서 지금 유하즈 교수한테 불려 갔다가 왔는데 시간 있으면 얘기 좀 할까?”

“그래요. 지금 준비하고 나갈게요. 학교죠? 아 학교는 안 되겠네요. 구청사 정문에서 보지 않겠어요? 네. 그러면 30분 있다가 봐요.”


한달음에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 구 청사의 정문에서 조금 서 있자니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키에의 모습이 보였다. 날이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두 사람은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 연못가의 벤치를 찾아 앉았다.


“내가 세크하라를 했다고?”

“아니에요. 미안해요. 박상. 박상한테 미리 말해둘까 했는데 어제 나온 얘기가 이렇게 하루도 안 돼서 이렇게까지 바로 선생님들에게 연락 갈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럼 사키에 짱은 알고 있었나?”


동민이 짜증 나는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그건 아니지만, 어제 박상이 그냥 가고 3차에 가서 모리가네상이 유하즈 선생에게 결국 자기 기분대로 술김에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그 히키코모리의 이름이 모리가네인가?”

“네.”

“사키에 짱의 지도교수한테도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하던데···”

“그것도 이해가 가네요. 전에 우리 연구실에서 술자리가 있었는데 박상이 신장이 안 좋으면 지압을 하는 게 좋다고 가르쳐줬는데 신기하게 몸이 훨씬 좋아졌다고 자랑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와전되었나 봐요.”

“그게 말이 되나? 당사자는 그런 의사가 없는데 제삼자들이 먼저 설치고 나서서 자기네들이 멋대로 한 사람을 몰아세우고 바보를 만드는 일이?”

“박상도 이제 더 일본에서 지내보면 알게 되겠지만 일본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제삼자들이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소문을 만들어내서 그 사람을 이지메하는 것이 일종의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자리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저도 그런 일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여긴 아군이라고 하는 내 편이 없다고 보면 돼요. 언제나 내가 없으면 내 흠집을 잡으려고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내고 하니까요. 그래서 혹시라도 또 문제가 될까 봐 학교에서 보는 게 신경이 쓰여서 여기서 보자고 한 거였어요.”

“무슨 연예인이라고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인가?”


동민이 비아냥거리듯 실소를 터뜨렸지만 웃을 일만도 아니었다. 일본학생이 이 정도라고 말할 정도면 자신이 쓴 일본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었다며 수줍은 듯이 내밀었던 사키에의 지도교수가 질투심의 화신이라고 했던 농담이나 제대로 된 논문발표를 학회에 내보지 못했다는 유하즈 교수 등등이 학생들의 소문에 부화뇌동해서 자신을 공격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심리를 왠지 그대로 투영한 사례를 실제로 확인한 것만 같았다. 그들에게 있어 동민의 존재는 뭔가 흠집을 내어 자신들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거나 두려워하게끔 만드는 뭔가 계기가 필요했던 거였다.


“알았어. 이제 사키에 짱과 편하게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네.”

“꼭 그런 건 아닌데···. 미안해요, 박상. 저 때문에···하지만 사실 우리 연구실 전체를 포함해서 박상에 대해서 질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우리 지도교수도 그렇고 교수들이나 학생들 사이에서 박상이 너무 잘난 척을 한다는 식으로 얘기가 돌아서 다들 별로 안 좋은 얘기들을 하고 다니는 것 같아요.”

“걱정해 줘서 고맙긴 한데,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들이라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야. 난 공부할 게 남아서 먼저 갈게.”


동민은 도서관에 돌아와 이런저런 정리를 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파오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남의 나라에, 그것도 이른바 소심의 극치에 집단 따돌림을 대표하는 나라에 와서 공부하며 어느 정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누명을 쓰고 가만히 꼬리를 내리는 것만 같아서 그 소문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지도교수인 사토 렌코쿠에게 다른 이들을 통해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입으로 확실하게 얘기를 해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주 월요일, 마침 원래 잡혀 있던 논문지도시간이었다. 틈만 나면 공부가 아닌 사적인 수다를 떨고 싶어 하는 사토 렌코쿠에게는 동민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키득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당사자는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오히려 누명이라고 얘기를 해주는데 제삼자들이 이야기를 꾸며서 그따위로 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특히나 교수라는 사람이 당사자에 대해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런 굴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전후사정을 모두 설명하고 난 동민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렌코쿠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 사키에 상이 연구실에 있는지 보고 불러주겠나?”

“예? 사키에상을 다시 불러 이런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건 결례 아닙니까? 제가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선생님이 듣고 오해를 하실까 봐서 연구실의 몇몇 교수를 포함해서 잘못된 행동을 주임교수인 선생님이 바로 잡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알았으니까 지금 사키에상을 불러서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거 아닌가?”

“네?”

“박군의 입장을 옹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러니까 내가 일단 사키에상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조치하도록 알아서 하겠네. 불러다 주겠나?”


더 이상 렌코쿠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도교수이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니 일단은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키에에게 모든 얘기를 렌코쿠 교수에게 했다고 동민이 전하자 사키에의 얼굴이 심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동민은 그때까지만 해도 사키에의 그런 반응이 언뜻 납득이 가질 않았다.


‘왜 저렇게 싫어하지? 사토 교수와 무슨 일이 있었나?’


나중에 렌코쿠의 연구실에 불려 갔다가 나온 사키에는 심하게 얼굴이 어둡고 심지어 침울해져 보이기까지 했다. 이내 그녀는 그대로 가방을 챙겨 집으로 먼저 가겠다며 연구실을 나가버렸다. 동민은 다시 렌코쿠의 연구실을 찾았다.


렌코쿠는 여자문제가 얽힌 신변잡기만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여겼다. 특히나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동민의 논문지도보다야 이런 루머를 하나하나 본인을 불러 듣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었다.


“응. 마침 잘 왔네. 다 들었는데 자네의 설명이 사실이더군. 그렇지만 유하즈 교수의 입장도 입장이니까 앞으로 좀 더 조심하도록 해. 자네가 실수하거나 문제를 일으키길 원하는 적들이 많다는 얘기니까···”

“아니, 선생님. 아까는 확실히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문제를 바로잡으시겠다고···”

“아아! 오늘은 너무 시간을 많이 썼네. 다음 주 논문지도는 내가 일이 있어서 안 되니까 또 시간이 언제 될지는 나중에 연락하도록 하지. 그럼 오늘은 교수회의가 있어서 이만!”


그렇게 도망치듯 나가버리는 사토 렌코쿠를 보면서 동민은 그나마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이 깔끔하게 되었다고 인정받았으니 쓸데없는 오해로 지도교수에게 찍히는 일만큼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위안하기로 했다. 어두운 얼굴로 연구실을 나서던 사키에의 표정이 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도대체 렌코쿠 교수가 어디까지 사키에에게 이런저런 질문으로 곤욕스럽게 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더군다나 이 사건을 가지고 내내 사토 렌코쿠가 동민을 놀리는 소재로 사용할 것이라고는 동민은 물론이고 사키에도 그 당시에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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