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대만학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 2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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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동민과 비슷한 연배였지만 동민은 동민 나름대로 일본의 문화에 맞춰준다고 그에게 깍듯이 선배대접을 해주었다. 잠시긴 했지만 그가 오래된 살림살이를 정리한다며 그 수많은 오래된 80년대 문고판 소설책 쓰레기 더미를 치우겠다고 했을 때도 그 모든 책들을 받으러 그의 집까지 갔던 것은 그의 후배들 중 어느 누구도 아닌 동민이었다.
긴바라역시 동민이 어떤 프로필을 가진 이었는지 충분히 들은 바 있었고, 직간접적으로 확인한 것이 있었기에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키고는 있었지만, 그 묘한 거리사이에 서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날카롭고 서슬 퍼런 날을 여전히 꺼내놓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한번 불꽃이 튀지 않을까 서로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긴바라가 대만으로 떠나오고 나서 마주칠 일이 없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조우하게 될 줄은 서로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학회인지 발표회인지 모를 형태의 논문발표는 그야말로 난장판일색이었다. 대만을 대표하는 국립대의 서늘한 건물이 일본 식민지 시대의 그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했을지 모르지만 동민에게는 뭔가 모를 엄중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블랙코미디 같은 구석에 어이없는 헛웃음만이 자꾸 터져 나왔다.
대만의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그냥 편하게 준비했던 소논문을 읽어 내려가기만 하고 자기들끼리만 대화할 뿐이고, 어차피 제대로 중국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 대학원생들은 마치 심각한 표정으로 전혀 다른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있는 웃픈 촌극이 벌어지는 것을 가운데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국어로 준비한 소논문을 중국어로 읽어 내려가는 일본 대학원생들의 웃지 못할 중국어 발음을 들으며 키득거리다가 빵빵 터지는 중국 대학원생들을 보면서 여전히 땀을 삐질거리며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더듬거리며 띄어 읽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국문화론 연구실 멤버들의 발표는 그야말로 현지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그들의 예전 군기반장 긴바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발표 끝나고 이따 뒤풀이 가기 전에 모두 이 건물 화장실 뒤로 모여.”
이를 악물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긴바라가 말했다.
이미 중학교 중국어 교사까지 된 흰머리의 OB 멤버까지 잔뜩 졸아붙은 얼굴로 ‘하이’를 덧붙였다. 군대를 구경하지도 못한 일본인들의 군기 잡기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동민에게 긴바라가 예의 얼굴의 인상을 풀며 말했다.
“물론, 박 상은 편하게 먼저 가셔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네.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결국 다음날 이어진 동민의 발표 때 터지고 말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동민 역시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원생들이 동민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알게 된 것은 여정이 모두 끝난 마지막 날의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그렇다는 것은 발표할 때나 해당 일에는 일본팀과 일본인이면서 대만여자와 결혼해서 그곳의 철학과 교수자리를 꿰차고 앉은 일본교수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일본애들 전부 다 중국어가 개판인 건 아닌가 보네.”
동민의 중국어 논문 읽기가 시작되자 이전까지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던 대만 대학원생들의 표정이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읽기에 빠져들며 들어보니 그의 논문 주제가 자신들이 이해하던 관점에서 한 단계 진보한 것임을 확인하고는 이제까지 보았던 어설프기 그지없는 삼류 코미디언 같았던 일본 학생들과는 다른 수준의 발표자도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토호쿠 대학에서 왔던 교수의 중국어 논문 발표도 역시 그와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일본인이었고, 인솔교수라 자청한 유하즈부터 다른 일본 대학원생들이나 급조된 OB멤버까지 그저 대만 대학원생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동민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의 시간에 대만의 한 대학원생이 동민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빠른 중국어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며 날카로운 질문이랍시고 해서는 안될 질문을 던지고 만 것이었다.
“발표하신 내용이 상당히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어서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에 대한 부분이 상당 부분 빠져 있는데 중국문학과 철학계에서 김성탄의 평점비평은 그야말로 명말청초 비평의 정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상당한 연구가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이 팔고문과 연결된다는 그런 연구는 없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그것을 조선후기의 그것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하신 부분은 너무 범위가 확장되는 대로 전반적으로 그 모든 부분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동민이 그 치기 어린 도발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동민은 반대로 이 따분한 장난 같은 발표회에서 자신도 똑같이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소모품으로 전락해서 일본대표로 인식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솔직한 이야기를 답변에 녹여 대답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일본의 자료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한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은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현재 기존의 논문을 인터넷에서 데이터 베이스 화하여 찾는 시스템 자체가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여기 자리를 함께하신 토호쿠 대학의 문학부에서 두어 편 논문을 발표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 관점이 오늘 제가 발표한 논문과는 워낙 거리가 있고, 특히나 팔고문과의 연관성을 비교 분석하는 자료 등은 결코 찾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본토의 자료를 참고하기는 했지만, 대만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무했고, 중국 본토에서는 팔고문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많았지만 김성탄의 평점비평으로 이어지는 글쓰기 방식의 맥락이 맞닿아 있다는 연구 관점은 역시 찾지 못했습니다.”
일본 대표들의 중국 유치원아이들 책 읽기 발표식의 논문발표가 끝나면 매번 형식적으로 이어지는 질의응답에 마치 대단한 통역을 할 것 같았던 코는 학문적인 용어만 나오면 그저 일본어로는 대강 뭉개고 통역을 하는 바람에 대만에서 살고 있는 일본 교수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지만, 정작 중국어로 질문이 나왔을 때 일본어로 통역하려던 코를 간발의 차로 뭉개고 중국어로 바로 대답하는 동민의 모습이 코는 그저 대강 일본어로 같은 연구실의 찌질이들에게 속삭이든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할 뿐 전문적인 학술용어는 제대로 발음조차 하지 못했다.
문제는 어제 화장실 뒤에 후배들을 끌고 가 이게 무슨 일본의 개망신이냐며, 너희가 얼마나 안일하게 중국어 공부를 했길래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렇게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냐고 소리 질렀던 긴바라였다. 길게 설명하는 동민의 중국어 중에서도 그의 신경을 확 거슬리게 만든 한 마디는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자료를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였다.
‘대일본제국에 유학을 온 주제에 감히 제대로 된 자료조차 없다고?’
말은 안 했지만, 동민의 중국어를 알아들은 토호쿠 대학의 교수 역시 그 부분에서 귀가 꿈틀 하며 그 거슬림을 고스란히 드러내 반응했다.
중국 대학원생들이나 자신의 논문내용에 대해 중국어로 알아들은 이들과의 질의응답에 집중한다고 생각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그 두 콤플렉스 덩어리의 인물들의 반응이 일본 본토에 있는 렌코쿠에게 어떻게 보고되었을지에 대해서 동민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늘 그렇지만, 학회를 빙자하여 해외로 놀러 간 이들은 대학원생이나 교수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발표 일정이 끝나고 나면 학회일정과는 별도로 밤마다 호텔방에서 뒤풀이를 벌였다. 결혼을 한 사람은 동민과 코, 둘 뿐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코는 대만의 친척을 찾아보네 어쩌네 하면서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밤에는 숙소에 돌아와 얌전히 지내는 척을 해야 했고, 거리를 두고자 동민을 토호쿠에서 온 대학원생과 한 방에 맺어놓았기에 딱히 할 것이 없었던 이들은, 중국문화론의 일본 대표 대학원생들과 밤마다 즐거운 술자리를 방에서 열었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여 술자리를 갖게 된 계기는 대만 대학원생 중에서 일본 도쿄대로 1년이나 유학을 다녀왔다는 여자 대학원생의 자연스러운 습격 때문이었다. 1년이 넘게 도쿄에 교환프로그램으로 공부하고 왔다는 여자 대학원생은 지지리도 일본어를 하지 못했다. 일본어 수준도 수준이었지만 발음 자체가 정말로 들어주지 민망할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녀를 비아냥거리기 일쑤였겠지만, 여자친구조차 없는 모쏠들이던 일본의 노총각 대학원생들에게는 그녀가 더듬거리며 일본어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오늘 낮게 대만 대학원생들 앞에서 보인 코미디가 저런 수준이었겠구나 싶은 동병상련을 떠올리며 마냥 귀엽고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만 같았기에 술반입이 안된다는 숙소에 버젓이 술까지 가지고 들어와 술판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수준 낮은 일본어 탓이었는지 술이 좀 들어가자마자 중국어로 떠들어대던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의 절반 이상은 동민이었다. 동민도 그들이 낮에 얼마나 주눅이 들어 있었는지 알고 있었고, 일본의 연구실에서는 자신들이 문화상으로는 선배라고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두던 이들이 형님이라며 친하게 구는데 굳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술잔이 순배를 돌면서 동민도 기분 좋게 어리숙한 대만의 여자 대학원생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농담도 스스럼없이 건넸다. 그러던 중에 돌연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일본 학생들의 목이 거북처럼 쑥 들어가며 모든 동작이 멈췄다.
“누구지? 우리 혹시 문제가 되는 거 아냐?”
“다 큰 녀석이 쫄기는...누구시죠?”
동민이 먼저 문쪽으로 다가가 문을 살짝 열었다.
“아, 이 방이 맞구만.”
손에 술을 들고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들이밀며 두리번거렸다.
“아! 선생님!”
토호쿠 대학의 교수였다.
문을 연 것이 동민이라는 점이 마뜩잖았던 것을 티라도 내고 싶었는지 자신을 알아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본 학생들을 보며 그는 무시하듯 동민을 스쳐지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히 문을 닫고는 동민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런 자리가 있으면 나도 불렀어야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가 술병을 탁자에 올리며 웃어 보였다.
“오늘 다들 수고 많았어.”
일본 학생들과 술잔이 돌고 도는 사이 동민은 자연스레 아까 이야기를 하던 대만 여자 대학원생과 다시 술잔을 마주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이! 거기 자네는 우리 학교에서 김성탄 관련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나?”
오늘이 가기 전에, 낮에 발표장에서 동민이 언급했던 부분을 내내 마음에 걸려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터였다.
“하아?”
동민이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그에게 되묻듯 치어다보았다.
같은 대학도 아니고 같은 전공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번 면식이 있어 교수 대접을 해줬는데 대놓고 ‘키미(자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동민에게는 상당히 거슬렸다. 아마도 약간의 술기운 탓도 있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연구라고 그렇게까지 새로운 관점이니 전혀 처음 나온 것처럼 말하느냔 말이다.”
계속 하대하는 말투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동민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제 전공이 원래 그쪽이라서요.”
“자네의 전공이 뭔지 내가 알게 뭔가? 자네가 일본의 학회에 제대로 된 논문을 발표해서 주목받아본 적이라도 있었나?”
거기까지 나갔을 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에 속에서 방금 마신 50도짜리 고량주가 다시 울컥하고 화기(火氣)를 뿜어댔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가 말하는데 자네의 허락 같은 것을 받고 말해야 하나? 그리고 말야. 그 옆의 어눌한 일본어를 하는 친구와는 무슨 관계인가?”
“아! 제 남동생입니다. 하하!”
뭔가 더 날카로운 상황을 만들며 대립했다가는 자신도 진지하게 화를 내게 될 것 같아 시비를 거는 일본인 교수에게 동민은 반농담을 섞어가며 그녀를 소개했다.
“이곳의 대만 대학원생인데, 도쿄대에서 1년이 넘게 유학을 했다는군요.”
의뭉스럽게 현지 대학원생에게 말을 넘기자 교수는 더 이상 시비를 거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에 흥미를 잃은 듯 벌떡 일어나며 먼저 자리를 떴다.
“박상. 우리 교수님 생각보다 무서운 분이에요.”
그의 연구실 소속이자 대만 룸메이트였던 류자키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자네에게나 그렇지, 나에겐 그다지 무서울 필요도, 그런 영향력도 없는 사람이야.”
동민이 싱긋 웃어 보이며 그날의 어색한 술자리는 자리를 파했다.
사진 설명 : 중 최대의 친일 괴뢰군이었던 왕징웨이의 화평건국군(和平建國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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