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29

도대체 대만학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 4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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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신의 딸을 지금 보내고 있는 유치원에서 행여 원어민 강사가 미국의 마트에서 캐셔일을 하던 무자격자 아줌마라고 한다면 원어민 선생님이라서 존중해야 한다는 둥 원어민이니 충분하지 않느냐는 둥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분야이고 전공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학원의 박사까지 받았으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따질 수 있었겠지만 그와 제대로 논쟁이 붙었을 때, 행여라도 제대로 그 분야의 전공을 갖춘 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이유(예컨대, 그 대학에서 원래 원어민이라는 이유로 강의를 강사시절부터 맡아왔다는 둥, 그렇기 때문에 이미 관계가 형성된 사이의 인물을 적당히 고용하는 것이 새롭게 훌륭한 전공자를 초빙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둥)를 대는 것만으로도 박살이 날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남편도 한 논리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한국인은 남편에게서 느껴지는 것 몇 배 이상의 차갑고 냉정하면서도 감히 뭐라 덤벼들어 무너뜨릴 자신감 자체를 흩트려버릴 만한 힘이 느껴졌다.


그렇게 어설픈 논쟁도 못 되는 일이 끝나고 나서 학회 뒤풀이를 빙자한 대만 교수들의 가족여행은 끝이 났다. 공식적인 마지막 밤이었던 타이베이에서의 밤에 특별히 대단한 식당이라면서 마지막 밤의 연회를 준비한 것에 동민을 제외한 대부분은 신이 났던 지 일정 바로 직접 가장 큰 시내의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을 구매하는 것을 공식일정의 마지막으로 삼으며 잔뜩 구매한 책을 들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흔한 <삼국지> 정판본을 들고서 나타난 코는 멀찍이서부터 동민의 시선을 감지하고서는 다시 걸음을 돌려 식당 로비를 나섰다. 자신이 이 책을 대만에서 샀다고 하면서 일본의 중국인에게 웃돈을 주고 팔려는 계획이 누설되었을 리는 없지만, 분명히 눈빛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뭔가 그가 다 알아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왜 그래요?”


함께 서점을 동행해 주었던 동경대 유학파 대만 여학생이 코의 표정에서 심상찮음을 느끼곤 물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냥 저는...”

“얼른 같이 들어가요.”

“그게 그러니까 책도 무겁고 몸도 조금 그래서 나는 그냥 먼저 숙소로 들어가 볼게요.”

“네? 그래도 여기 식당이 꽤 유명한 곳인데 우리 교수님들이 특별히 잡은 거예요.”


학생의 신분으로는 그나마 마음대로 먹으러 들어올 수 없는 식당임을 강조하는 그녀의 표정과는 무관하게 코는 계속해서 멀찌감치 있는 동민의 동선을 살폈다. 행여 자리가 완전히 분리되어 동민의 근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앉아서 그곳의 음식을 여유 있게 맛보고 싶은 맘도 아직 버리지 못한 터였기 때문이었다.


“저 한국 분 때문에 불편한 거예요?”


눈치 빠른 대만 여학생이 코의 정곡을 찔렀다.


“네? 아니요. 내가 왜 저 사람 때문에....”

“저한테는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요.”


마치 두 사람의 문제나 코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식으로 대만 여학생이 코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다시 말했다.


“저 사람은 내가 중국인인데 중국 문화론 연구실에 있는 걸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왜요? 저는 오히려 중국문학이나 철학 전공은 아니었지만 일본대학에 중국 학생들이 중국 관련 전공으로 진학했다는 사실에 놀라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될 것까지는...”

“그렇죠?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코는 자신이 중국어로 석사논문을 제출해서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라던가 이번 학회에 어떻게 해서든 포함되기 위해 그 석사논문을 짜깁기해서 논문 발표를 했다는 진실은 그녀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며 자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저 사람은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이래요.”

“네? 일본어나 중국어 전공이 아니었구요?”


다시 한번 대만 여학생이 코의 설명에 놀라 되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하고, 중국어까지....”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려다가 그녀가 코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게요. 저런 사람이 왜 동경대에 그냥 있을 것이니 우리 학교까지 왔는지...”

“그 얘긴 어제 대강 들었어요. 제가 동경대 있을 때 언뜻 봤던 것 같다고 했더니. 한국에서 학력 세탁을 하겠다고 모인 지방대 출신이나 삼류대 출신들이 모두 동경대에 몰려들어서 어떻게 학위라도 하나 받을까 싶어 기웃거리는 꼴이 너무도 싫어서 총장에게 다른 구 제국대학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없는 학교로 추천해 달라고 해서 학교를 바꿨다고 하더라구요.”

“대단한 사람이죠. 저런 사람의 눈에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요.”


코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기죽을 건 없어요. 저만해도 1년이 넘게 동경대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다녀왔지만 제 발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본인이 몇 없을 정도잖아요. 어차피 천재들의 세계는 우리들이 사는 세계와는 다르다구요.”

“천재요? 그렇네요. 그걸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를 걸 내가 괜히 이렇게 자격지심에 불안해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중국인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어로 논문까지 쓰고 그게 통과되어서 박사과정까지 들어가게 된 거잖아요.”

“네? 아, 네. 그렇죠.”


자신이 중국의 인터넷 자료들을 긁어모아 중국어로 버젓이 석사논문이랍시고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도 여전히 자신에게 인자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코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어차피 자신이 공부하고 학위를 바라는 것이 정치인이 되기 위해 훈장처럼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수준으로 대학에 남아서 학자나 교수를 지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럴듯한 학위만 받았다고 학위수여증 하나만 가져다 놓고 나중에 아이에게 중국 삼류 전문대 출신이 아니라 버젓이 구 제국대학의 박사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뿐인 것을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자신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는지 괜스레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했다.


한편, 그냥 빠지면 되는 학회 뒤풀이도 아니고 해외까지 와서 대만 대학원생들과 교수들이 준비한 마지막 환송연 같은 술자리를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동민은 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아! 말씀 들었어요. 일본 분이 아니시라면서요! 대단하세요. 우리는 모두 박상이 일본 분인줄 알았어요.”

“네. 한국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까 한국어를 쓸 일도 없고 일단은 일본 대표로 온 게 맞으니까요.”


신기한 동물원에 새로 들어온 동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80%가 여학생인 대만 대학원생들은 중국어로 소통하는 게 편안한 동민에게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토호쿠 대학의 교수는 일정을 핑계로 바닷가에서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빠져나갔고, 렌코쿠의 연구실 대표라고 하는 못난이 4인방은 그저 멀뚱멀뚱 자신들 앞에 놓인 진먼 고량주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총각들의 여성 품평이나 노다거리는 수준이었다.


“너희들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언제 나타났는지 대만대학의 일본인 교수가 그들의 틈을 비집고 앉으며 예의 날카로운 독설을 뿜어냈다.


“아! 선생님. 그게 아니라....”

“긴바라군에게 들었다고 생각해서 내가 아무런 말도 안 하려고 했는데, 여기 박상이 없으니 내가 짧게 몇 마디 하지. 너희는 정말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가? 저기 저 일본인이 일본에 유학 온 지 겨우 1년이 넘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본어가 전공도 아닌 자가 일본인으로 인식될 수준의 일본어를 하는 동안, 중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한다는 너희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창피하지도 않느냔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성향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직설적이고 독설을 내뱉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었지만, 지난번 대만의 학생들을 데리고 일본에 방문하는 인솔교수역할로 왔을 때도 6개월 후에 대만에 올 때는 철저히 중국어 공부를 업그레이드시켜 오라고 하는 당부 아닌 협박을 했을 정도였기에 설마 모든 발표가 다 끝나고 풀어진 마지막 날에까지 자신들을 이렇게 억압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였다.


“더 할 말은 없다. 너희가 정말로 공부를 직업으로 삼는 대학원생이라는 자각이 있는지 정말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충분히 반성하기를 바란다.”


우연히 화장실을 가겠다고 자리에 일어선 동민의 눈에 그들의 모습이 들어오고 지나면서 들려온 그 격양된 일본어를 들으면서도 동민은 그 일본인 교수의 성향이 충분히 파악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 콤플렉스는 일본의 대학에 자리를 못 잡은 것도 그것이었지만, 마치 자신만이 철저하게 학자적인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힘으로 대만의 최고 국립대 철학과 교수 자리까지 얻어냈다고 시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다.


문제는 그의 중국어 발음이나 그의 학문적 수준이 동민이 이번 대만 학회에 오기 전에 살펴본 바, 전혀 일급 수준이라고 인정해 주기에는 한참 아래였다는 점이었다. 대만학계의 수준이라는 것이, 막 중국이 세계에 자신의 나라를 개방하고 유학생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던 90년대 초반 직전까지 중국 본토에서 학문의 적통을 계승했던 1세대 학자들이 중국의 학문을 대표하던 시기에서 이미 그다음의 허접한 세대들로 수준이 저하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관련 학문 전공자들은 대만에 유학을 가는 일이 줄어들다 못해 이후에는 없어져버렸다. 그러한 점들을 감안하면 대만학계가 중국 본토에 조차 인정받지 못하면서 세계에서 중국의 학문 정통성을 강조하기에는 1세대 이후 2세대의 질적 저하가 그 갭을 결코 메우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일본인 교수가 네덜란드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에서의 학위를 금쪽같이 여기는, 게다가 일본인을 숭배하는 지경까지 보이는 대만에서 교수자리를 차지한 것이 대단하다고 인정할만한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콤플렉스는 아니나 다를까 한층 술이 올라 발음이 꼬인 그에게서 동민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봐! 너처럼 잘난 천재는 어차피 일본에서 적당히 박사 학위 하나 더 따서 서울대에 돌아가면 교수자리 내놓고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일본인들이 지금 니가 있는 연구실의 것들처럼 다들 비리비리 핫바지들만 있을 거라고 깔보지 마라.”


화장실을 나오는 동민의 어깨를 밀 듯 벽에 몰아세우며 진한 고량주 기운을 뿜으며 그가 말했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습니다. 술이 오늘 조금 과하신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하시지요.”

“서울대가 그렇게 대단해? 내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정치학과에서 내 뜻을 좀 펼치려고 했더니 뭐? 한국어 공부나 제대로 하고 오라고? 그것들이 그렇게 나를 짓밟았다. 서울대 것들이라고 동경대 것들이나 뭐가 달라? 결국 서울대도 구 제국대학 아닌가 말이다!”

“죄송합니다. 술이 너무 과하신 듯합니다. 저는 여기서 실례하겠습니다.”


더 대거리를 해주다가는 시비가 터질 것만 같다는 아슬아슬함에 난처한 표정의 동민이 어깨에 걸쳐져 있던 그의 손을 꽉 잡고 옆으로 내리며 자리를 피했다.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그가 등 뒤에 대고 뭐라고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동민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다시 원래의 술자리에 돌아가지 않았다. 마침 자리를 정리하며 여학생들이 나이 든 대만 교수들과 함께 자리를 일어서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에어컨에 돌지 않는 문 밖으로만 나와도 아직 밤이었지만 한낮 40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은 여간해서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패잔병처럼 자기들끼리 꿈틀거리듯 자리에서 일어난 렌코쿠 연구실의 노총각 4인방과 동민, 그리고 동민의 룸메이트였던 토호쿠 대학의 류자키까지 해서 숙소로 돌아온 것이 대만 학회의 마지막이었다.


아침 일찍 일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지만, 자신들의 남은 알량한 자존감까지 대만의 일본인 교수에게 박살이 난 노총각 4인방은 그나마 이번 학회여행으로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동민과 술자리를 가졌다.


“박상! 우리가 아까 들었던 그 상황은 그냥 모른 척해주세요, 나중에 사토 선생에게도요.”


나이가 가장 지긋한 흰머리 중국어 교사가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굳이 여기서 있었던 일을 가서 사토 선생에게 일일이 보고하거나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게다가 좋은 일도 아닌데 저렇게 술 먹고 너희들에게 행패에 가까운 폭언을 한 사람과의 일화를 얘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지.”

“고맙습니다.”

“그게 뭐 고마울 일인가? 아까 굉장히 기분 상했을 텐데 다들 잘 참았어. 자기가 일본의 대학에서 자리잡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풀려고 든 것뿐이니까 그렇게 신경 쓸 거 없어.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한 거니까.”

“참! 박상이 우리 선배 같네요. 하하!”

“그렇게 들렸으면 미안한데? 하하. 세계의 대학이나 학회를 다녀보면 저런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라 너무 신경 쓸 거 없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

“알아요. 이번에 느낀 거지만 늘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가장 늦게 문 닫고 가장 먼저 나오는 박상을 보면서 조금 오해도 있었는데, 정작 박상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자기 공부에 열심히라는 것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어요. 그저 우리가 박상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들이 아니어서...”

“됐어. 새삼스럽게 그런 얘기는 할 거 없잖아. 발표회는 잘했건 못했건 끝이 났고, 다들 이거 가지고 성적을 매기거나 이걸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생기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외국에 처음 놀러 왔다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도록 하자고. 공부는 또 돌아가서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 자리에 코만 없었다는 사실과 마지막 날 밤까지 그 어떤 문제가 있어 현지에서나 그 이후에서도 현지의 대학원생이나 교수들로부터 논쟁이 있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최소한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다음날 아침 일본으로 돌아오던 날부터 코가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지적당했던 상황에 대해 침소봉대(針小棒大)하며 이내 자신이 피해자였고 자신을 학대 수준으로 공격했던 사람이 동민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의 남편에게 말하고, 사토에게 그 부분을 토로했다는 점이 이 사건의 도화선을 당기게 된 것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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