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30

유학생 킬러, 쥬타 -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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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타’라고 했다.

영어로 ‘튜터(Tutor)’를 뜻한다는 실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담당 쥬타가 정해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 제도는, 일본의 국립대학에서 외국에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처음 외국에서 일본에 와서 이것저것 낯선 상황과 공부에 관한 상황은 물론이고 생활의 측면에도 도움을 주라고 만든 제도였다.


동민 역시 ‘쥬타’라는 제도의 수혜자로 그 제도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학교 측에서 배려해 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쥬타’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물론이고 신청을 직접 하게 된 것도 모두 본인이 알아서 신청하게 된 것이고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도 한참의 시간과 정보 수집, 그리고 험난한 방해공작을 넘어야만 했던 과정이 있었다.


지도교수였던 사토 렌코쿠에게 처음 ‘쥬타’라는 제도가 일본의 국립대학에 있지 않냐고 물었을 때도 렌코쿠는 그런 것이 있다고 들었던 것도 같다며 대강 말을 흐렸고 결국 몇 번이나 이어진 질문 끝에서야 교무과에 가서 직접 알아보라며 최소한의 거짓말했다는 추궁을 피해나갔다.


그러나, 교무과에 들러 담당 시미즈에게 ‘쥬타’라는 말을 꺼내자 시미즈는 오히려 이상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박상의 분은 이미 신청되어 있는데요. 사토 렌코쿠 교수님이 아무런 말도 안 해주시던가요?”

“네?”


당황스러웠다.


“내 쥬타는 내게 무엇을 해주는 겁니까?”


바로 이어진 직접적인 질문에 오히려 교무과의 시미즈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연구실마다 다른데···, 저는 잘 모르니까 일단 지도교수님에게 가서 확인하고 물어보세요.”


공식적으로 국립대학에서 만든 제도이건만, 연구실에 따라 그 제도의 특성이 변한다니 이것은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교무과에 다녀왔습니다. 제 쥬타 신청이 이미 되어 있다는데요.”


동민의 말에 렌코쿠가 마치 처음 듣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 그래? 되어 있다고 그러나? 그랬나? 음···, 마츠모토 군 좀 불러주겠나?”


뜬금없이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듯 하던 렌코쿠가 마츠모토를 찾았다.


마츠모토.

연구실에서 가장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연구실의 최고참이었다. 최고참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동민보다 한참 어린 32살이었고, 학부 때부터 연구실에 소속되어 박사과정 3년까지 마치고 북경대학교로 정부장학금을 받아서 2년간 유학을 하고 온 인물이었다.


작은 키에 통통한 인상을 한 그는 처음부터 동민에게 상당히 경계심을 드러냈다. 동민이 연구원으로 상하이에 있는 복단대학에서 공부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그러한 경계심은 더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되곤 했다. 간혹 사토 렌코쿠가 굳이 동민에게 일본어로 말하는 것보다는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중국어로 말을 걸 때도 그는 그저 똥 씹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2년간 북경대학교 중문과에서 유학을 했던 그는 중국인과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상당히 곤란해하는 듯해 보였다.


동민이 처음 만났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북경대학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중국어가 상당한 실력이겠군요.'라고 친근하게 인사말을 걸었을 때부터 이미 둘의 불화는 시작되었을 런지도 몰랐다. 애시당초 중국 문화론 연구실에 대한 동민의 기존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일지도 몰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예상이나 상식적인 부분의 추론들도 상대가 그 당연한 상식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 예상하고 행동하고 말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마련이다.


동민의 상식선에서는, 중국문화론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교수와 10년 이상 공부한 대학원생들이 중국어로 논문을 쓰거나 중국어로 토론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어를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중국학자들과 의사소통하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수준까지 독학했던 동민의 크나큰 불찰이었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기본이 왜 안 되어 있습니까,라고 시비를 건 꼴이 되고 만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민의 첫 쥬타로 이미 신청되어 있던 인물은 다른 이도 아닌, 그 마츠모토였던 것이다.

머리를 반삭발 수준으로 빡빡 밀고 수줍은 듯 사람들과 많이 떠들지 않는 듯한 지극히 내향적이던 마츠모토는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로 지나칠 정도로 동그란 안경을 쓴 도라에몽의 친구 캐릭터 같은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얼핏 보면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일단 연구실 내에서의 그의 위치는 그를 그저 가볍게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현재 연구실을 나간 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윗 기수의 선배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오 영희가 이름도 없는 대학 졸업장을 만들어 석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이것저것 알려준 사람이 마츠모토였다고 들었을 때 동민은 나름대로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고개를 숙여 정중히 첫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하지만 2년여의 북경생활이 마츠모토의 몸만을 뚱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몸소 깨닫게 되었다. 마츠모토는 의외의 복병이었다.


“맛군! 박군의 쥬타로 맛군이 정해져 있는 거 알지?”


아까까지만 해도 쥬타에 대한 제도조차도 분명히 잘 모르겠다고 하던 렌코쿠가 이미 얘기가 끝났다는 듯이 마츠모토에게 물었다.


“예.”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마츠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로 동민에게는 읽혔다.


“박군을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좀 알려줘. 그리고 박군! 원래 쥬타라는 게···, 그냥 형식적인 거야. 뭘 어떻게 해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르는 게 있을 때 전담해서 물어볼 수 있는 대상을 정해놓은 정도랄까? 뭐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너무 큰 기대 같은 건 하지 말고···. 맛군은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나마 일본에 온 지 한참이 지난 뒤에 여기저기서 들었던 쥬타에 대한 얘기와 너무 다른 사토 렌코쿠의 설명을 들으며 동민은 기분이 심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결국 자신의 밥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결심을 공고히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기는 것으로 속을 삭히기로 했다.


“마츠모토상! 쥬타가 원래 유학생에게 공부하는 데 있어 생기는 문제나 이것저것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는데 다른가요?”


렌코쿠의 연구실을 나오는 마츠모토를 붙잡고 동민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혹시 뭔가 어려운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일단 그렇게 일단락이 지어지고 헤어지긴 했지만 동민은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영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동민은 영희를 붙잡고 쥬타에 대해 다시 한번 명확히 물었다. 그러자 영희는 이번 건수다 싶었다는 표정으로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친절하게 굴었다.


“쥬타요? 아! 그거 있었구나. 생활에도 도움을 주고 공부도 가르쳐주는 거 맞아요. 저도 지금 다른 연구실에 온 한국 여자애의 쥬타를 하고 있는데 박 동민 씨도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지정할 수도 있어요.”


술집에 가서 여자를 정해서 파트너로 삼는 것도 아니고 말끝마다 자신의 이름을 꼬박꼬박 찍어대듯 부르는 영희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도 거슬렸다. 왜 영희가 자신에게 친절을 보이며 굳이 쥬타를 자청했는가는 바로 이어져 나온 영희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토선생이 마츠모토상을 내 쥬타로 이미 결정했다던데요?”

“네? 벌써 정한 거였어요? 그럼 그렇지. 괜히 좋아했네.”

“네?”


영희의 뜻 모를 혼잣말에 동민이 다시 물었다.


“아니요. 쥬타를 하면 한 학기에 20만 원 정도 학교에서 지원비가 나오거든요. 대부분 연구실에서 유학생을 위한 쥬타라고는 하지만 쥬타가 뭘 해주는 경우는 아주 적거든요. 그냥 학교에 뭐가 있는지 길안내를 한다던지 그런 질문들을 받아주는 거지 자신의 시간을 내어 가면서 뒤치다꺼리를 해 준다 거니 그런 건 아니거든요.”


동민의 쥬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방금 전의 상냥한 설명과는 전혀 다른 설명이 이어졌다. 영희에 대해 조금 더 제대로 파악하는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연구실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던가 술자리 모임에서 회비를 걷는 총무를 자청하고 나서 자신이 맘에 드는 학생들에게 돈을 다시 돌려주는 행동을 하면서 남는 돈을 챙기는 등의 행동을 하나하나 확인할 때마다 동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국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상황 정리가 된 것은 쥬타 얘기가 나오고 나서도 열흘쯤 지나서였다. 그 설명도 렌코쿠가 아주 간단하게 선언하듯 정리해 주었다.


“쥬타에게 학교에서 돈도 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동민이 렌코쿠를 떠보는 질문에 렌코쿠가 자신이 몰래 마츠모토에게 눈먼 돈을 챙겨주려던 행동을 실토한 것이었다.


“그거 얼마 되지도 않잖아? 어차피 아무도 안 하려고 그래. 그래서 맛군으로 미리 정해뒀었고, 맛군한데 박군을 특별하게 챙겨주라고 얘기를 다 해뒀었는데···. 박군한테도 내가 미리 다 얘기하지 않았었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문장도 봐달라고 하고 공부를 하는 방식이 보통이라고 하던데요. 마츠모토 군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될까요?”


렌코쿠는 동민이 그렇게 하나하나 확인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제도나 혜택 등등을 모두 다 챙기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정식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인 연구생일 때부터 ‘공부공부’ 하면서 2년 내에 논문을 내고 학위를 취득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다. 말이야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이 외국인은 고사하고 일본학생조차 단 한 명도 이제까지 없었을뿐더러 이곳의 분위기에 신선한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현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동민을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여기고 좋은 자극을 받기는커녕 자신들의 자괴감의 원천으로 삼아 아예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경계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동민의 스타일을 보건대 상당히 저돌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었고, 저돌적으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의 학생을 다뤄본 적이 이전 단 한 번도 없었던 자신을 비롯한 일본 교수들과 연구실의 학생들이 신선한 자극을 받기보다는 자꾸만 게으르고 부족했던 자신들과 비교되는 느낌을 받아 뭔지 모르게 불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학자이전 인간으로서 당연한 기분이었다.


일본의 구 제국대학을 비롯한 국립대학의 문학부는 박사과정을 3년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규과정의 수업을 모두 들을 의무는 없었다. 본래 박사과정의 수업이 없어지게 된 배경은 양질의 논문을 집필하도록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과잉배려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정해져 있던 커리큘럼마저 없어져 버리자,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수준저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특히 이곳 지방 국립대학에 부임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사토 렌코쿠 자신도 이곳의 게으른 흐름에 무젖은 지 오래였다. 굳이 수업을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고 학생들의 지도를 가열차게 해 줄 필요성도 느껴보지 못한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을 때 핑계를 댈 수 있는 것이 학생들의 열성이 부족하다는 것 한마디면 되었기에 자신에게 따가운 눈총이 향할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동민의 등장으로 자신의 이제까지 편하기 그지없던 생활이 빡빡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게다가 동민은 이미 한국의 일류대학에서 박사를 마치고 연구자로서의 기본능력을 갖추고 온 인물이었다. 억지로 전공도 다른데 자신의 밑에 두고서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자신의 계산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까지 자문을 해보았지만 머리가 아파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이제까지의 렌코쿠 스타일이었다.


“맛군도 곧 박사논문을 써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이나 그런 일을 봐줄 수 있을까?”


넌지시 딴지를 걸어 어렵다는 표현을 일본식 복선으로 깔아 둬야 했다. 일전에 마츠모토에게 가능하면 손대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넘기라고 코치까지 해둔 터라 동민이 마츠모토에게 공부하는 것을 쥬타로서 도와달라고 달려들면 자신에게 원망이 돌아올 것이 귀찮기 때문이었다.


“제가 부탁해 보겠습니다. 2년 내에 논문을 완성하려면 지금보다 좀 더 노력해야 할 테니까요.”


티 없이 밝은 얼굴로 공부를 하겠다는 제자에게 지도교수라는 사람이 뭐라고 토를 달겠는가. 쓴웃음이 입가를 돌았다.


그렇게 마츠모토를 프레스 하듯 시작된 쥬타와의 공부는 만만치가 않았다. 마츠모토가 그다지 녹녹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지도교수의 논문지도도 그랬지만 공부를 도와준다는 개념에서 상대의 논문이나 문장을 보기 위해서는 일단 내용파악을 위해서라도 먼저 원고를 받아서 읽어보고 고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동민은 생각했다. 자신이 S대학교에서 외국학생들의 논문을 고쳐주거나 지도해 줄 경우에도 그 자리에서 논문을 받아서 함께 읽어가면서 고쳐준다는 것은 수준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성의도 없는 행위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논문지도에 임하는 사토 렌코쿠가 그 행태를 보여주더니 그의 수제자 마츠모토도 똑같은 패턴은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일주일에 한 번, 한 번에 한 시간 반 정도. 그리고 교재는 제가 정해서 그때그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믿고 처음 만난 약속장소에서 동민은 어이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마츠모토가 제시간에 나타난 것까지는 좋았지만 멋지게 렌코쿠의 연구실 열쇠까지 가지고 와서 문을 열고는 ‘교재를 뭘로 할지 한번 찾아볼까요?’라며 서가를 둘러보기 시작한 것 때문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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