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킬러, 쥬타 - 2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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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쥬타와의 공부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마츠모토는 그 느림의 정도를 더해갔다. 일본의 독특한 한자 읽기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한 수업이라며 사전을 가지러 간다고 왔다 갔다 시간을 죽였고, 처음부터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늘지 않는다면서 책에 나온 한자를 사전에서 하나하나 찾아서 그 자리에서 읽으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최대한 허비하고, 대충 시간을 때우는 갖가지 방법이 총동원되었다. 그 다양한 시트콤 같은 상황은 지도교수인 사토 렌코쿠에게 논문지도를 받을 때와 똑같이 행태로 재연되었다. 한 학기 간의 연구생을 하면서 쥬타를 바꿔달라고까지 동민이 결심하게 된 것은 몇 가지 사건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원인의 하나가 된 계기는, 논문 집필을 위해 기본이 되는 연구사에 대한 조사에서부터였다. 한국에서 논문의 테마를 잡고 기존 연구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데이터베이스였고 도서관이었다. 그것은 일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여 자료조사를 하는 것에 딴지 걸고 나선 것이었다.
“교토대학교 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서 자료들을 찾긴 했는데 논문들을 어디서 받을 수 있죠? 각 학회의 홈페이지에 가도 논문원문을 찾아볼 수가 없던데요.”
동민의 천진난만한 질문을 듣고 마츠모토가 비웃듯 실소를 터트렸다.
“왜요?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이 대학 도서관에는 자료가 없는 게 많아서 인터넷으로 찾았는데···”
“직접 도서관에 가서 찾던가, 직접 있는 도서관에 자료요청을 해서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논문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그것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 황당하기 그지없는 설명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은 동민이었다.
“박상은 저작권도 모릅니까? 일본은 한국과는 달라서 저작권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합니다. 그래서 직접 논문을 증정받거나 하지 않으면 학회지나 그 자료가 있는 도서관에 요청해서 돈을 지불하고 복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발생한 서구에서도 이미 인터넷에 논문을 발표하는 게 일반화된 지 몇 년인데 무슨 저작권이 문제가 돼서 인터넷에 논문을 올리지 않나요? 저작권이라는 건 그 논문을 멋대로 출판하거나 이용하는 걸 말하는 거 아닌가요?”
동민이 한국을 폄하하는 듯한 마츠모토의 말투에 기분이 상해 제대로 한마디 지적하고 나섰다. 콕 찝는 동민의 지적에 마츠모토는 따로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간 일본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편 논문 복사해서 교토대학이나 국회도서관에 요청할 때는 5-6만 원 정도 듭니다.”
“5-6만 원이요?”
최소한 자신의 연구를 위해 읽어야 하는 논문이 50여 편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동민에게 짧은 소논문 한편을 읽는데 5-6만 원이 든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동민이 다시 곰곰이 생각한 후 마츠모토에게 물었다.
“그러면 논문을 쓴 사람들이 대부분 대학에 있으니까 직접 연락을 취해서 논문을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논문을 쓴 사람에게 자신의 논문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학자 간의 의견을 교류하는 것은 나쁜 방법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마츠모토의 반응은 비아냥거림의 연속이었다.
“박상은 한국에서 그렇게 논문을 썼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최소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이 일본에는 없습니다.”
“왜 없죠? 그리고 마츠모토상도 중국 유학을 경험했을 텐데 마츠모토상은 중국에서 어떻게 자료조사를 하고 논문을 읽었습니까?”
동민이 의아함에 다시 질문을 던졌지만 마츠모토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냥 고개를 돌리며 연구실을 나가버렸다. 잠시 후 사토 렌코쿠가 나타났다.
“박군. 논문 자료를 읽고 싶다고 했다며?”
“예.”
동민은 왜 마츠모토가 나가서 사토 렌코쿠까지 끌고 왔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일본에서는 저작권에 대해 상당히 엄격하기 때문에 박군이 하려는 건 불가능하네. 혹시 내 논문이라도 괜찮다면 내 논문은 자네가 내 학생이니까 특별히 건네주도록 하지.”
겨우 동민이 받은 것은 사토 렌코쿠가 80년 후반부터 쓴 오래된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소논문들이었다. 물론 그것은 전공분야가 한참 동떨어져있는 논문이었다. 몇몇 동민이 쓰려고 하던 주제의 논문을 받은 것이 있다며 자신은 한 번도 읽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찾았다면서 건네주는 논문도 몇 부 있긴 했다.
결국 제대로 스터디가 진행되지도 못하고 눈먼 돈만 챙기려는 마츠모토가 얄미워서라도 동민은 더 이상 마츠모토를 쥬타로 삼기 싫었다. 사토 렌코쿠는 그대로 진행하라고 능글맞게 굴었지만 결국 동민은 그의 제안을 정식으로 정색을 하고는 거절했다. 그래서 아예 다른 지도교수의 밑에서 공부하는 ‘니시 노부야스’라는 학생을 지명했다. 이미 새 학기 시작 전에 밤새 술을 마시며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기투합을 했던 터였다.
니시는 박사과정 마지막 학년이었고 박사과정이 끝나는 대로 마츠모토와 똑같이 북경의 대학으로 2년간의 국비유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에 제출해야 할 공문서나 이런저런 문장들이 많았기에 주로 초창기의 스터디는 동민이 작성한 서류나 문서들을 가지고 문장을 원활하게 교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니시의 경우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마츠모토나 사토 렌코쿠는 비난했을 때와는 사뭇 그 태도가 달랐다. 동민이 함께 봐달라고 하는 논문이나 문장을 받아간 후 읽고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방에 쑤셔 넣고 있다가 일주일 후 같은 자리에서 꺼내는 것만이 다를 뿐 미리 읽고 온다거나 미리 손을 본다는 배려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처음에 쥬타에게 지급되는 돈이 크지도 않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작은 돈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동민과 니시가 이야기를 통해 인지하고 있던 바였다. 물론 니시가 전적으로 쥬타를 맡게 된 것이 돈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고 공부하는 시간 등을 왠지 모르게 할애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니시는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늦거나 자신의 조교업무를 핑계로 스터디 시간을 줄이던 니시가 한 달여가 지나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었다. 매번 미안하다는 말까지 해가며 비굴하게 쥬타와의 스터디를 거듭하는 것도 동민에게도 스트레스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던 중 문제가 터졌다.
본래 그와의 공부 방식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만나서 한 시간 반 정도 함께 원고를 읽으며 고치는 패턴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만나기로 한 자습실에 니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이 지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본 이메일에 니시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새벽 2시에 온 메일이었다. 도저히 자기 수업 준비로 여유가 없으니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수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니시의 입장에서는 밤에 늦게 자고 점심 나절까지 퍼 자는 이곳 학생들의 기본패턴에 익숙해진 지 이미 오래되었던 터라 잠들기 전에 그렇게 메일을 툭 보내놓고 포근한 잠자리에서 나오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지도교수의 조교업무라면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눈을 부비고 어쩔 수 없이 나와야만 했겠지만 동민과의 약속에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 대강 이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동민의 입장은 달랐다. 오전 10시의 약속에 당일 새벽 2시가 넘어 이메일을 보내놓고 전화를 해주지 않아 오전 시간을 모두 버리게 된 것도 기분이 나빴지만 상대의 스케줄을 묻지도 않고 대강 목요일이나 아무 요일 혹은 안 된다면 다음 주에 다시 하자는 식의 태도는 처음 연구실에서 밤새 함께 술을 마시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진솔한 성토를 나눈 사람으로서 취할 행동이 아니라고 여겼다. 과장된 표현이긴 했지만 동민은 니시에게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불쾌감이 더했던 것은 이후 시간이 여의치 않는다는 메일을 보냈음에도 그날의 무례나 실수에 대해 니시가 아무런 사과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냈다는 거였다. 그래서 동민은 나이가 어린 학생들과 언성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자위하는 것에서 따끔한 충고를 하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니시군! 쥬타를 하고 학교에서 돈을 받는다는 건 조교업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는데···”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니시가 그 말의 행간을 읽지 못할 리 만무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반을 공부하고 그 정도를 받는 것은 대단히 많은 돈도 못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니시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동민이 쐐기를 받았다.
“그래서 내가 계산을 해봤는데 시급으로 계산을 할 경우에야 적은 돈이 아니지만 특별한 준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아무런 준비도 주중에 하지 않는 것치고는 많은 거 아닐까? 원래 니시군도 주중에 한 시간 반의 스터디를 위해 단 1분조차 준비하지 않았잖아? 하루에 10분 정도만이라도 해준다면 나는 굳이 함께 만나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결국 원하는 건 내 글을 네이티브 스피커가 보고 교정해 주는 것이었다는 사실, 누구보다 잘 알잖아?”
“박상의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일단 시간이 없으니까 오늘은 그냥 가겠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니시가 그 자리를 빠져나가 버렸다.
문제는 그렇게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자연스럽게 스터디가 없어져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방학이라고 해서 쥬타의 의무가 없어지는 것도, 수당의 지급이 중단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일본학생들은 방학은 모든 공식적인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기며 돈만 챙겼고 동민 자신도 아내와 함께 한국의 학회참석으로 일본에 있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자연스럽게 그 해프닝은 무마되어지는가 싶었다.
그런데 사토 렌코쿠 교수가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민을 찾았다.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동민을 자리에 앉힌 렌코쿠는 다짜고짜 동민을 나무라고 나섰다.
“도대체 니시군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길래 도저히 자네의 쥬타를 할 수 없다고 얘기가 나오나? 그래서 말인데, 쥬타같은 거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나랑 하는 논문지도로 충분하지 않나? 그냥 쥬타는 없던 것으로 하지?”
“네?”
놀라는 동민의 얼굴을 보며, 렌코쿠는 쾌재를 불렀다. 처음으로 자신이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동민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던질 수 있게 된 사실만으로도 너무 짜릿했다.
사실 렌코쿠가 여름방학 동안 술자리를 통해 일본학생들이 동민의 뒷담화를 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술자리에서 학생들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했던 렌코쿠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늘 자신만만하고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예의를 깍듯이 지키면서도 자신에게 뭔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 같던 동민이 자신의 학생인지 자신이 학생인지 가끔은 헷갈릴 정도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동민이 없는 방학 동안 학생들의 반응을 근거로 이 건을 엮으면 동민의 기를 꺾고 혼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만 같았다. 오히려 동민이 일본으로 돌아오는 것이 기대되었던 렌코쿠였다.
동민은 어린 학생에게 자신이 당한 것을 렌코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이런 선방의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파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묻고 전후사정이나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나무라셔도 될 거 아닐까요?”
당황하는 듯하던 동민이 다시 냉정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보고 렌코쿠는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지도교수로서 체면이 자칫 가벼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쎄하게 몰려들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그런 얘기가 여러 명의 학생에게 들린다는 건 자네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결국 동민이 처음부터 있던 니시와의 대화내용을 설명하고 왜 시급 얘기까지 나왔는지에 대해 해명을 하고 나자 이번에는 렌코쿠가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꼬리를 내리고 지도학생에게 밀린다면 어렵사리 칼을 뽑은 체면이 다 구겨져버리고 말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강하게 말을 바꾸었다.
“어쨌거나 자꾸 학생들이 박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는 건 내 입장에서 듣기 안 좋으니까 쥬타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어때?”
“아니요. 타무라 군에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타무라 군은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도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타무라가 할까?”
“제가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동민은 연구실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타무라에게 부탁해 보기로 했다. 타무라는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연구실에 가장 오랜 시간 나와 공부하던 학생 중의 한 명이었고 나이에 비해 그나마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던 학생이었다.
“타무라 군! 내 쥬타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 많이 들었지?”
동민의 제안에 타무라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는 듯했다.
“네? 그냥···”
타무라는 어쨌거나 공부에 대한 시간만큼은 많이 투자하는 학생이니 차라리 교정을 맡기고 받는 식으로 하면 될 것이라고 동민은 생각했다.
“그냥 하루에 A4 한 장정도 교정해 주면 돼.”
비굴하리만큼 굽혀서 겨우겨우 타무라를 설득하고 렌코쿠에게 보고를 마친 동민은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며 이전 쥬타였던 니시와 처음 연구실에서 단둘이 술을 마시며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전에 저도 말레이시아랑 동남아에서 온 몇몇 학생의 쥬타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요. 대부분 자기가 찾아서 공부를 알려 달라던가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는 학생은 없었어요. 물론 일본어도 박상만큼은 고사하고 기본적으로 일본어가 안 되는 학생들이 많았구요. 그렇다고 영어로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만한 일본 학생이 없다는 건 박상도 잘 아시죠? 그래서 대강 쥬타들끼리 도는 얘기가 있어요. 적당히 보이지 않는 집단 따돌림형식으로 골탕을 먹이면 마음이 약한 유학생의 경우에는 자기가 알아서 돌아간다는 거죠. 저도 특별히 괴롭히거나 하는 이지메를 하지 않았지만 이전의 쥬타 학생들은 우연인지는 몰라도 3명 모두 중간에 귀국해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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