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35

일본에서 외국인이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10


처음 학생상담실장이라는 오오하타에게 협박에 가까운 메일을 받고 나서 일본에 돌아온 동민은 생전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정신적인 공황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내와 부모님이 함께 했던 한국에서와는 달리 일본에 돌아와 연구실에도 나가지 못하는 입장에서 겪는 미지의 공포와 고립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심한 이상 조사위원회에 불려 나가기 전에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조금씩 이성을 찾아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그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한참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매일같이 다짐했다.


가장 먼저 동민이 알아본 대응 방식은, 일본의 공식적인 공익 법률구조 서비스센터였다.

변호사를 하고 있는 선배나 국제변호사 업무를 하고 있는 지인들을 통해 당장 궁금하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야 물어볼 수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법률서비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거나 그들의 법체계와 필드의 경험에 익숙한 이를 찾아야만 했다. 정작 변호사 자격증만 가지고 있는 허수아비라 할지라도 자신 변호를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조금 늦었지만 당연히 했어야만 하는 준비의 첫 번째 스텝이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찾아간 곳은 대학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관리청사내의 인권침해 상담 안내 창구였다. 그러나 창구에서부터 무슨 말인지를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는 두어 사람을 거쳐 겨우 만난 담당자라는 사람은 시청의 민원상담과장이라는 인물이었다.


“무슨 일인지 저에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동민은 간단히 정리한 이제까지의 상황과 오갔던 메일등의 증거 문서를 보여주며 이제까지 자신이 당했던 말도 안 되는 인권침해 사항을 찬찬히 하지만 매우 격양된 언어들로 설명해 나갔다. 그런데 과장이라는 그 나이가 지긋한 여자의 대답은 의외로 긴 설명을 한 줄로 요약해 버렸다. 상대가 그 시, 아니 그 도시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이자 구 제국대학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리고 그 대상이 그 대학의 오래된 대학교수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마자 이전까지만 해도 무엇이든 해결해 줄 듯하던 그 상냥한 미소의 얼굴이 차갑게 경직되어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설명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저는 인권침해 상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구요. 저희 사무실로 매주 월요일마다 법무국에서 전문가 분이 출장을 나오세요. 그러니까 월요일에 다시 나오시던가 아니면 직접 그분이 계신 사무실로 찾아가 보셔도 될 것 같은데요.”


30여분의 시간을 들여 이런저런 설명을 쭉 이어 내려간 동민의 입장에서는 기운이 쑥 빠지는 대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도대체 여태까지 뭘 알아보려고 듣는 것을 그렇게 한 거냐?’


화는 났지만 일본의 전형적인 껍데기 격식이란 격식은 다 갖춰가며 자신을 위로해 주는 듯한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아줌마에게 대놓고 뭐라고 할 수만도 없었다.


결국 동민은 다음날 다시 소개를 받은 ‘법무국 인권침해위원회’라고 하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특별히 상담실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여직원이 잠시 기다리라며 고즈넉한 취조실 같은 좁은 방으로 안내했다.


“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인권침해 상담을 하시겠다고 찾아오신 분 맞으시지요?”


잠시 후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남자는 나이가 언뜻 보아도 70은 훨씬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동민은 그의 모습을 접하자마자 그간의 불안함이 의구심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꼈다.


‘법무국이라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식 공무원일 텐데, 어느 나라든 공무원은 정년이 있을 텐데 이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도 직원으로 쓰나?.’


하지만 쓸 것을 주섬주섬 꺼내며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글을 써 내려가는 할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보고, 바로 이러지는 느릿거리는 그의 질문이 시작되자 그런 의구심을 계속 머릿속에 남겨둘 여유가 없었다.


“으음, 그렇군요. 어떻게 그런 황당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대학이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국립대학이라는 곳은 아주 질이 나쁘죠. 그런 부당한 권력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박상께서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할아버지 상담원은 나이 탓인지 헐거운 틀니 때문인지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기는 했지만 동민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얼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민에게 힘이 되어줄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동민이 용기를 내어 다시 그에게 물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조사위원회에 동석하거나 참고인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명백한 인권침해라면 법무성 쪽에서 대학 측에 정식 경고조치를 하거나 기타 조치 같은 것을 취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자 그전까지 온화하기 그지없던 할아버지 상담원의 얼굴이 곤란한 표정으로 일그러지며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우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중립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동석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다면 우리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법 테라스’라는 법률서비스 단체도 있고···”

‘그럼 그렇지.’


구체적인 도움요청에 그의 대답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보고 다시 동민은 현실의 벽을 체감했다.

결국 혼자서 조사위원회에 불려 나가 모든 대화내용을 녹음하고 나서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코가 누명을 씌웠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확인한 동민은 구체적으로 뭔가 대학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처나 렌코쿠의 억지스러운 누명을 뒤집을 대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 일을 해결해야 나가야 할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미지수였다. 그래서 다시 찾은 것이 시에서 운영한다는 법률상담센터였다.


예약전화를 미리 했는데, 한 달에 두 번씩 이루어진다는 변호사와의 법률상담은 상담시간도 20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설명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문건으로 사안을 파악하는 법조인들의 습성을 이미 알고 있던 동민이 간단히 상황을 정리한 프린트물을 내밀자 변호사가 대강 문건을 넘겨보고 나서는 바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비밀유지의무 위반이라는 건 법적으로 해당되지 않습니다. 학교 측의 상담실장이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 놀랄 겨를도 없이 상담시간을 의식하며 동민이 바로 물었다.


“그건 대강 짐작은 했지만, 역시 그랬군요. 그런데, 당사자인 대만학생의 고소도 아닌 제삼자인 코가 그렇게 멋대로 누명을 씌웠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정식조사가 진행되는 게 정상입니까?”


이미 이런 일에 대해서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변호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그 사람들이 다 한 통속이니까 자기네들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이쪽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하긴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동민도 생각했다. 그러나 동민이 설명하던 내용과 상관없이 코와 관련된 문건을 읽던 변호사가 뜬금없이 툭 내던지듯 물었다.


“증거물에 보니까 코라는 중국 여학생의 남편이 이 지역의 변호사라고 쓰여있는데, 이건 사실이 맞습니까?”

“모르겠습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그러자 변호사의 얼굴이 다시 정색을 띠며 말을 이었다.


“으음, 이 건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당신이 세크하라를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밝혀져야 할 것 같군요.”

“내가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은 세크하라건과 상관없이 학교의 대처방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현재 고소를 한 코상의 내용은 자신을 욕했다던가 자신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것인데 그런 것 때문에 내가 이런 불이익과 자퇴협박을 받는 것이 부당하는 걸 상담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만....”

“일단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담시간이 다 되어 더 상담해 주기 곤란하니 더 뭔가 원한다면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정식으로 상담료를 내고 상담을 받고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레 그렇게 쫓겨나듯 집으로 돌아온 동민은 그날 지역 뉴스에서 낮에 만났던 그 변호사 녀석이 서민들에게 보다 많은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는 얼른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11월 중에 부르겠다던 제2차 조사위원회는 약속된 11월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렌코쿠의 멋대로 취소된 학회출장비 때문에 사비를 들여 학회를 참석하고 돌아와 곧 12월을 맞이하게 된 동민은 그들의 시간 끌기에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그 사이 아내 지우는 정신적인 불안으로, 긴급수술을 받아 딸아이를 어렵사리 낳았다. 아내의 목숨과 딸아이가 위험했던 순간들이 모두 사토 렌코쿠의 협박 편지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동민은 정말로 사토 렌코쿠를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리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어 그 마음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 동민은 정말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던 끝에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적어가며 실행하려고 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 한참을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즈음 일본에서는 과도한 훈련과 동료들의 이지메로 자살을 한 스모 연습생의 뉴스로 전국이 난리법석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유서를 남겨 연습생인 자신에 대한 가혹한 이지메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과 다른 이들에게 알렸고, 그것은 그간 알면서도 덮은 채 아무런 일도 없다고 여겼던 일본인들에게 다시 한번 심각한 사회문제가 바로 자신들의 곁에 있음을 자각시키는 일종의 계기가 되었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동민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도 이 억울하고 기가 막힌 사연을 유서로 적어 자신이 죽어 결백을 보이지 않은 이상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오랜 옛날 유인촌이 주연으로 나왔던 <김의 전쟁>이라는 영화가 뜬금없이 떠올랐던 것도 어찌 보면 우연만은 아니었다.


그런 동민의 불안한 모습을 전화 수화기 너머로 감지했던 것인지, 아내 지우는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현해탄을 건너 남편의 곁으로 오겠다고 결정했다. 그런 며느리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갓난아기를 데리고 일본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동민의 부모도 함께 현해탄을 건너 아들의 곁에 있어주기로 결정하고 그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기로까지 생각하고 자살계획을 세웠던 동민은 가족들이 찾아온다는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법무국을 찾아 정식으로 인권침해 위원회에 이 사건을 고발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두 번째로 찾은 법무국 인권침해 위원회 사무실은 여전히 그에게 어떤 따뜻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다시 나온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상담원만이 친근한 척 동민을 맞아주었다.


“아! 오랜만입니다. 그 이후에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네. 용케 몇 달 전에 만났던 저를 기억하시네요.”


동민을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동민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후 학교 측의 조사위원회나 반응을 궁금해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중국 유학생이 그랬던 거랍니까?”

“저에게 무시당했다고 그러는 것과 제가 대만여학생에게 세크하라 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 등등인데 말도 안 되는 거짓 누명들뿐이더군요.”

“아, 네. 역시 그랬군요. 그래서 박상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앞으로?”

“정식으로 인권침해위원회에 고발을 해서 행정조치를 받게 하고 싶습니다.”

“네?”


할아버지 상담원이 당연한 듯 고발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동민의 표정에 놀란 듯이 다시 동민에게 물었다.


“우리 인권침해위원회에 이 사건을 정식으로 고발한다구요? 그렇다고 해도 사실 말하기 좀 그렇지만 대학을 상대로 고발을 해봐야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좋게 결과가 나와도 형식뿐인 ‘권고’ 일뿐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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