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36

일본에서 외국인이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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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맘을 먹고 이제 정식으로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발걸음이 채 내딛기도 전에 주춤거림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권고라구요? 그것도 형식뿐인?”

“네. 그렇습니다. 인권침해 신고가 들어와 고발이 되면, 당사자를 조사하고 그것이 인권침해라는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조치라던가, 혹시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압력을 풀라던가, 뭐 지금 박상의 경우라면 등교금지 조치를 해제하라고 하는 경고차원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물론 강제력이 있는 법적 제재는 아니구요.”

“법무국은 국가기관 아닙니까? 어떻게 인권침해라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경고밖에 못한다는 겁니까?”

“현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검찰이나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을 정식으로 수사할 권하고, 그들이 잘못이라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권리는 없습니다.”


정작 계속해서 불의에 굴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며 용기를 북돋워주던 할아버지는 그 전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로 오히려 동민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뭐 합니다만, 대학, 그것도 국립대학 측을 상대로 싸운다는 생각을 보통 일반인들은 하지도 못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원만하게 해결하는 건데··· 굳이 인권침해 고발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게다가 당장이라도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까지 받고 있는 마당에 무슨 원만한 해결입니까? 권고라도 좋으니까 국립대학의 간부 교수라면 경력에 흠이 가는 것이 싫어서라도 곤란해할 테니 저는 신고하고 정식으로 고발하겠습니다.”

“에?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겠습니까? 그러려면 일단 학교 측에 총장에게라도 정식 학교의 입장을 추궁하는 내용증명이라고 필요합니다만, 이대로 고발신고를 받아들이기는 제 쪽에서도 곤란합니다.”


점점 할아버지 상담원의 자세가 소극적에서 적극적인 거부로 완곡한 변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만, 인권침해 위원회의 회장이 있겠지요?”


동민이 짜증스러운 표정에서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차갑게 물었다. 할아버지 상담원이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왜 갑자기 회장은? 회장은 법무성에 있긴 한데···”

“그러면 회장이 아니더라도 이곳의 책임자는 여기에서 일하고 있을 거 아닙니까?”


동민의 표정이 단호한 것을 보고는 그가 움찔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할아버지 상담원이 방을 나간 지 한참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4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아니나 다를까 뭔가 적을 만한 펜과 낡아빠진 다이어리를 가지고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사사키라고 합니다.”


명함을 내미는 남자는 그야말로 깐깐한 공무원처럼 생긴 남자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동민이라고 합니다.”

“아, 일본어 실력이 상당하시군요. 일본인이신줄 알았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곳, 인권침해위원회의 책임자십니까?”


동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사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전형적인 일본인처럼 한발 빼는 듯한 말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책임자는 아니구요. 저는 여기 담당자입니다. 사실 아까 만난 상담원은 인권침해위원회에 오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을 맡기기 위해 우리가 아르바이트로 쓰는 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 박상처럼 진짜로 고발을 하겠다고 하는 분은 백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하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상담원을 배치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상은 그런 분들과는 다른 것 같군요. 대강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만 다시 한번만 저에게 간략하게 이 사건에 대해 핵심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짧게 한다고 해도 장장 30여분을 넘는 그간의 정황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 진을 빼는 작업을 또다시 반복해야 한단 말인가? 동민은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키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는 설명과 오가는 질문 속에서 동민은 거의 지쳐갔다. 사사키는 메모를 하면서 같은 질문은 반복하여 동민의 진을 모조리 빼버렸다.


“으음, 이 정도만으로 과연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굳이 꼭 국립대학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맞서야만 하시겠습니까?”


진이 다 빠질 정도의 설명에 대해 뜬금없는 딴지 같은 질문에 동민은 아주 차갑고 차분한 어투로 대꾸해 주었다.


“그 질문은 공무원으로서. 고발하는 사람에 대해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의도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일단 여쭤본 것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정식고발하시는 것으로 알고 사건을 접수하겠습니다. 그런데 고발하셔서 저희 측에서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최대조치는 권고입니다. 그 점은 알고 계십니까?”

“아까 알바 상담원이라는 분에게 자세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립대학 교수가 인권침해 위원회의 조사로 인권침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곤란해지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동민의 의사가 확고하다는 점에 사사키는 내내 곤란한 표정이 역력했다. 실제로 법무성의 인권침해 위원회가 설립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도쿄도 아닌 이런 지역에서 실제로 고발이 들어와 조사를 나갔던 것은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이유로 아르바이트 퇴직 직원까지 써가면서 적당히 상담이나 들어주는 행태로 진행했던 것인데 정말로 조사를 들어가게 되면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정말 난감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정열적으로 강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이 한국인은 대강의 프로필도 그렇고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며 확인한 논리 정연한 말투나 확연한 이미지만으로도 그냥 무시하거나 넘겼다가는 자신마저 문제를 삼을 수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강해졌다. 정확히 그의 본능이 말하는 대로 표현하자면, 이 한국인은 피하고 싶은 상대였고 이 사건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


법무국 인권침해위원회 사무실을 나오면서 동민은 아무 느낌도 없이 그저 눈가가 퀭해왔다. 이제까지 새삼 억울하다는 느낌이나 무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이제 와서 뜬금없이 코끝이 찡해오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었건만 괜스레 그 모습을 들키기 싫어 급하게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소리를 지르며 실컷 울다가 지쳐 쓰러져 까무러치는 느낌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법무국의 사사키에게 몇 번이나 전화와 이메일로 황당한 연락이 올 때마다 동민은 다시금 이를 악물고 자전거를 달려 법무국 사무실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한 번은 실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항목이 없지 않냐고 반박하는 그에게 ‘왜 처음에는 모두 인권침해에 해당하니 맞서 싸우라고 해놓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항의했고 또 한 번은 학교 측에서 비밀유지의무를 강요하고 있는데 이대로 조사를 진행하면 곤란해지지 않겠느냐고 하는 어이없는 질문에, ‘인권은 헌법과 관련된 것이고 헌법은 최상위법인데 학교 학칙의 상위 법률에 의거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 아니냐!’라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이후에도 사사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며 앓는 소리를 해댔고 인권침해에 해당되는 사안이 너무 적다고 조사의 범위를 최소화하려고 힘썼다. 그때마다 동민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고 어렵사리 법무국에서는 사토 렌코쿠의 협박행위와 근거 없는 등교금지명령에 대해 정식조사를 하겠다고 마지못해 결정통지서를 보내왔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인권침해 고발마저도 한 달여의 시간을 끌고 끈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사키는 최소한의 최소한 조사랍시고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석 달이 더 넘게 걸릴 수 있다는 대답을 끝으로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아마도 석 달간은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확답을 받았다고 여겼을 터였다.


그리고 그즈음 지우와 아기 그리고 동민의 부모님이 현해탄을 건너 동민을 지켜주겠다며 그의 곁으로 왔다.

‘가족’이라는 것이 갖는 힘은 실로 크고 위대했다. 동민은 이제까지 혼자서 일본에 돌아와 두어 달간 생활하면서 느꼈던 빈자리를 채워주는 가족의 사랑에 정신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육체적으로도 차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지만 부모님과 아내의 조언 속에 동민은 생각만 해오던 문부과학성에 직접 연락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2007년의 해를 마무리하는 가족 온천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12월 28일, 동민은 법무국의 사사키를 통해 문부과학성에도 고발을 하겠다고 정식 연락을 취했다. 사사키는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업무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다. 혹시라도 문부과학성에 연락이 닿아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자신은 굳이 인권침해조사를 위해 대학이나 대학교수들과의 껄끄러운 만남을 갖고 조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될 터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사키는 자신이 자진하여 동민에게 문부과학성의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해 동민에게 연결해 주는 친절을 보여주었다.


“박 동민상 되십니까? 법무성의 사사키상에게 연락을 받은 문부과학성의 유학생지원과의 모리모토라고 합니다.”


자신을 모리모토라고 소개한 젊은 여자가 동민에게 무슨 문제냐며 예의 그 건조한 질문을 던져왔다.


“국립대학의 간부 교수라고 하는 사람이 학생을 집단으로 이지메하고 학생들에게 이지메 하라고 조장하고 있지도 않은 누명을 씌워서 자퇴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문부과학성의 연구비를 청구하여 그 돈은 개인적인 포켓머니로 사용하고 있는데 한 번도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연구비 횡령에 대한 영수증이나 증거자료도 내가 가지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겠습니까?”


그저 간단히 유학생의 불만정도라고 여겼던 모리모토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동민의 설명이 점점 거대한 눈덩이처럼 큰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느끼고는 이 상황 자체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대강 징징거리는 외국 유학생들의 불만을 적당히 학교 측에 해결하라고 경고조치를 날린 적은 다수 있었지만 동민과의 대화가 계속 진행될수록 이건 자신 혼자서 해결하거나 책임을 질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동민 역시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여러 일본의 공무원들이 보여준 수순을 밟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박상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내일부터 신정 연휴에 들어가고 현재 문부과학성 건물이 이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저희 사무실도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립대학의 경우 완전히 우리 문부과학성의 지시를 받던 시기를 넘겨, 이제 법인화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측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사안에 대해 알아보고 신정 연휴가 끝나고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이 쪽 담당도 아니기 때문에 담당자를 통해서 연락을 드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저희 문부과학성이 이사를 하고 나서이기 때문에 연휴가 끝나고 바로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능적으로 자신이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는 모리모토의 행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기에 그녀를 탓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게 된 동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우연히 확인한 이메일에 학교 측에서 공식적인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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