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외국인이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3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12
박 동민님
나는 본학 해러스먼트(harassment) 사안 조사위원회 위원 야마다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메일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된 것은, 평성 19년 9월 7일에 해러스먼트(harassment)의 불평 상담이 들어와서 본학 해러스먼트(harassment) 방지대책실(실장 와키타 이사·부학장)에 조사위원회(위원장 와키타 이사·부학장)를 설치해, 사실 관계를 조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곤혹스럽다고 생각합니다만, 본 조사위원회로서는, 이번 불평 상담 해결에 임하고, 박 동민님으로부터도 청취 조사를 실시하고 싶기 때문에, 협력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취 조사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몇 개의 일시에 의해 실시하고 싶기 때문에, 바쁘신 중에 상당히 죄송스럽습니다만, 형편이 어떻게 되는지 다시 연락해 주시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덧붙여 사실 확인을 실시하는 장소는, 사무국 본관 2F응접실을 예정하고 있습니다(안내 그림 참조).청취 조사는, 나(야마다) 이외, 하야시 변호사, 사이 위원의 3명으로 대응하겠습니다.
또, 저희들과 같이 박 동민님도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조사위원회로부터 출석 요청이 있던 것 등, 부디 발설하지 않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형편을( ) 안에○X을 기입해 회답해 주십시오.
(1) 평성 20년1월 17일(목)오후 1시부터(1시간 정도)( )
(2) 평성 20년1월 18일(금)오전 10시부터(1시간 정도)( )
해러스먼트(harassment) 사안 조사위원회
위원 야마다
이메일을 본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까 문부과학성에 연락했던 게 바로 대학 측에 연락이 간 거네요.”
“설마···?”
동민이 지우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10월 초 조사위원회 이후, 11월에 부른다던 이들이 시간을 끌다가 12월 말에 겨우 연락을 취해 그것도 1월 중순 이후에 조사날짜를 잡아서 보내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우의 예상도 일리가 있긴 있었다. 대학은 물론이고 모든 기관이 휴가를 시작하는 바로 그날, 굳이 알릴 이유도 없었으며 미리 계획된 것이라면 1월 중순 이후로 날짜를 잡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민은 이렇게 된 바에야 해를 보내기 전에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해둘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동민은 바로 집을 나와 총장실로 향했다. 이전부터 생각은 해왔지만 이제 감행할 때라고 본능이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치대 교수이자 상담실장인 오오하타와 사토 렌코쿠가 한통속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한 터였기에 학교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총장이라면 이 비리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위치에 똥물이 튈까 두려워서라도 그들을 응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총장실을 기습한 동민은 다시 한번 차가운 일본인의 책임회피 행태를 맛보아야만 했다.
“어떻게 오셨지요?”
“문학연구과 대학원 박사과정 2년 차 박동민이라고 합니다. 총장님과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만···”
여직원이 너무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총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미리 약속을 잡으셔야 하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러 온 게 아닙니다. 약속을 잡아주십시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간부 교수의 연구비 횡령 그리고 권력을 이용한 협박과 압력에 대한 것인데요.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당신에게 해야 할까요?”
“네?”
여직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교수의 연구비 횡령 비리를 말하는 동민의 태도에 놀랐는지 여직원이 움찔하며 뒤의 다른 직원을 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뒤에 앉아 있던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여자가 거들먹거리며 나섰다.
“총장님은 함부로 면담을 할 수 없습니다. 약속을 잡고 안 잡고 가 아니라 규칙상 아무 학생이나 이렇게 쉽게 면담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저희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학생?”
동민의 눈썹이 한쪽 실룩거리며 움직였다. 순간 날카로워진 동민의 표정에 살기가 느껴졌는지 나이 많은 여자가 본능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동민이 잔뜩 날이 선 표정으로 데스크에 몸을 바싹 다가섰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잘 들어요! 난 이 학교의 학생이고 학교의 큰 비리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다니고 있는 대학의 총장을 그 학교의 학생이 면담할 수 없다는 게 어느 나라 어느 대학의 원칙이라는 것이죠? 그걸 지금 총장의 비서실에 있는 직원이라는 사람이 입에 담을 말이요?”
여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비서실장님에게 보고하고 가능한 한 빨리 박상에게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고분고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라면 비서실장이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믿고 동민이 물러섰다.
“한 시간 안입니다. 한 시간 내로 비서실장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연결해 주십시오. 그럼 이만.”
동민의 핸드폰으로 정말로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지우의 말처럼 일본인들은 당장 족치지 않으면 뭔가 답을 내놓지 않는 묘한 국민기질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증명해 보이는 듯했다.
“여보세요. 저는 비서실의 스가와라라고 합니다. 박상이십니까? 총장님과 면담을 요청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예. 그렇습니다만. 언제가 좋겠습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 어떤 건 때문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총장님이 바쁘셔서 어떤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대강이라도 비서실장이 제가 보고를 드려야 면담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동민은 생각했다. 그래서 비서실장이라면 이 일에 대한 실상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밝혀줘서 위에 보고하도록 해야겠다고 동민도 생각했다.
“지도교수를 포함해서 학생상담실장이라는 치대 교수까지 작당해서 세크하라라는 누명을 씌우고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등교금지조치명령까지 내리며 나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식 면담을 해야 할 사안이 되겠습니까?”
“에? 우리 대학 학생상담실장까지요?”
“네. 다른 학교 학생상담실장에 대해 언급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스가와라가 잠시 움찔하고 대화가 중단되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었는지 그가 일부러 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이후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고 전화를 다시 해도 그쪽에서 받지 않았다.
다음날 동민이 총장실을 다시 쳐들어가자 ‘스가와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주변을 살피며 흥분한 동민을 회의실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어제는 전화가 갑자기 끊겨서는 안 되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스가와라의 선제공격에 동민은 어이가 없었다.
“당신이 끊고 전화도 안 되고 이후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연락을 했습니다. 당신이 전화를 받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습니다.”
동민이 불끈 열받은 표정으로 언성이 높아졌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지금 이곳에 오기 전에 소프트뱅크 고객 상담센터에 통화기록을 요청해서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당신의 전화와 내 전화를 전화국에 요청해서 통화기록을 확인해 볼까요?”
동민의 태도에 스가와라의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며 붉어졌다.
“음, 일단 어제의 얘기를 계속하도록 하죠. 일단 말씀하신 내용은 알겠습니다만 역시 총장님과 면담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만 하는 이야기이지만, 총장님도 교수의 한 명으로서 임명된 입장이기 때문에 국립대가 법인화된 이후 총장이 자기 명령만으로 다른 교수를 처벌하거나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그러니까 나보고 말도 안 되는 린치를 당하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총장님이 면담을 하는 순간, 박상의 사건에 대해 모른 척할 수가 없게 되고, 뭔가 해야만 하는데 그러기에는 대학행정상 말하기 곤란한 난점이 있다는 겁니다. 이 점을 좀 알아주십시오.”
할 말이 많았지만 어이가 없어 뭐라 반문해야 할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떻게 소위 국립대학의 총장이라는 사람의 비서실장을 맡았다는 작자가 이런 말로 원천 봉쇄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동민이 만나왔던 모든 일본인들의 행태를 종합해 볼 때 그들의 패턴이 어디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그 당연한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언짢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봅시다. 비밀유지의무를 운운하며 등교금지조치를 멋대로 취하는 교수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을 물으시라는 거라면···”
“그럼 당신이 개인이지 학교를 대표합니까? 왜 바로 대답을 못합니까?”
“물론 제 상식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이건 어떻겠습니까? 학생상담실의 창구를 이용하는 것은···?”
“당신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습니까? 학생상담실장이 비리의 핵심 주축인데 무슨 학생상담실을 이용해?”
동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스가와라가 다시 회의실 밖의 눈치를 봤다. 아마도 총장실이 바로 옆에 있으니 총장이나 주변에 왔다 갔다 하는 높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그들의 말을 들을까 두려워서였다.
“일단 이 사안에 대해 총장에게 보고는 했습니까?”
“아, 저에게 그런 곤란한 질문은 좀 삼가 주십시오.”
스가와라가 정말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럼 총장에게 정식으로 보고라도 해주십시오. 나 역시 개인적으로 그에게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렇게 총장실 습격사건은 일단락이 되는 듯했다. 총장에게 간단히 메일을 쓰고 동민은 다음 날 정도에는 연락이 올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가와라 비서실장에게서는 벌써 그를 실망시킬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박 동민님
안녕하세요. 총장 비서실의 스가와라입니다.
몇 번이나 전화를 했습니다만, 연결되지 않아서 이렇게, 메일로 실례하겠습니다.
어제, 요망하셨던 총장님과의 면담 희망에 대한 회답입니다만, 박상의 요망에 응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역시, 학생 지원과의 창구를 이용하여, 수속을 밟아주시길 바랍니다.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총장 비서실
스가와라
더 이상 비서실장을 족쳐봐야 나올 것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끌며 동민의 움직임을 막으려는 그들의 행동은 성공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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