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대가 좋았던 이들도 있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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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족이 없이 혼자서 ‘조사위원회’라는 명분 하에 불려 가서 되지도 않는 질문을 받았을 때가 그러하였고, 그 이후 협박장을 받고 노트북을 반납할 때가 그러했다. 그리고 바로 부른다던 조사위원회의 말만 믿고 기다리던 두어 달의 시간들도 고문처럼 너무 길고 길었다.
그렇게 피폐해져가는 동민에게 가족이 오기 직전, 동민은 또 다른 적이 바로 턱밑에 살고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매일 같은 지옥 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중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가 겨우 눈을 부칠만 하면 다시 아침이었다. 그렇게 대강 김 빠진 오트밀로 배를 채우고 학교 도서관으로 나가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펼쳐서는 억지로 꾸역꾸역 논문을 써 내려가는 하루하루였다. 눈이 많이 내려 자전거를 타기도 위험했던 그날도 천천히 눈을 헤치며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혀엉~!”
어디서 큰 소리로 ‘형’이라는 한국어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잘못 들었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잰걸음을 재촉했다.
“혀엉~!”
다시 한번 차가운 공기를 한국인의 목소리가 갈랐다. 주위를 돌아보는데 자신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그림자 하나가 육교 쪽에서 뛰어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재성야?”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나누는 실제 사람과 나누는 한국어 대화였다. 한국어로 떠들 시간도 기회도 거의 없던 차에 오랜만에 만난 재성과의 대화는 그나마 동민의 마음을 조금 풀어줄 것만 같았다.
마침 재성은 그 대학에서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소망했던 대로 한국에서 대학은커녕 공고를 나와서 군대를 다녀온 후 아무런 미래도 없던 그에게 대학생이라는, 그것도 일본의 국립대학 대학생이라는 칭호가 붙게 된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공부도 못하고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수준미달의 놈팽이라며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은 일본인들에게 정식 수업도 아닌 과외이긴 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명색이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곧 있을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아무도 입학하지 않아 결원이 나기 시작한 지 수년을 넘긴 중국문화론 연구실의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에게는 고민할 것도 없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곳 문학부의 학부 졸업으로는 한국에 돌아가 일본어 강사도 할 수가 없다는 현실을 부산의 본가에 다녀온 재작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도 그 결정을 확정 짓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 입학을 했을 당시만 해도 이곳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보장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현실은 멀리서 동경할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현실을 눈에 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나가는 횟수나 기간도 자연스럽게 줄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인건비가 괜찮은 이곳, 일본에서 당분간 이 생활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 사귀게 된 일본인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그에게 있어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이제 내일모레면 서른이 되는 자신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이제 높아진 눈을 만족시켜 줄 일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차라리 일본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을 연장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최선이라는 자위의 결론을 내게 된 것이었다.
동민이 처음 연구실에 배정받아 박사과정생으로 왔을 때, S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재성은 자신도 그런 사람과 같은 연구실에서 선배와 후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그에게 개인과외까지 부탁을 해가며 한두 달 전공 관련 공부도 배워보겠다고 노력했더랬다. 하지만 그 한두 달간의 시간은 그에게 자신이 이제까지 노력했던 한계가, 그간 자신이 자위하며 대단하다고 자부했던 일본 국립대학의 수준과 한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는 쓰라린 경험이 되고 말았다.
동민에게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한 권이상의 책을 읽고 그것을 정리하고 ‘고전’이라고 하는 책은 이미 다 읽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학문을 하려고 하는 자의 기초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그저 자신을 무시하며 그저 으름장을 놓으려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넘겨보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더라도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알량하고 얄팍한 기본지식의 한계가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어렵게 과외라는 명목하게 부탁했던 공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먼저 알바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흐지부지 도망 다니다가 끝을 맺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
재성이 슬쩍 운을 띄우며 동민의 안색을 살폈다. 사실 동민은 재성이 가지고 있는 묘한 열등감에 대해 이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생긴 공격의식에 대해서도 재성 자신은 늘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그럴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반감들이 도드라져 오히려 동민을 거북하게 했다.
“왜? 연구실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었니?”
“다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형이 대만학회에서 여학생을 건드려서, 그게 문제가 돼서 연구실에도 출입하지 못한다고 알고들 있어요.”
“그래? 누가 그런 말을 하디? 렌코쿠가 그러디?”
동민이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사토 렌코쿠의 이름을 언급했다.
“사토 선생도 아니고 이젠 렌코쿠예요?”
그래도 지도교수인데 호칭을 막 대하지 말라는 식으로 재성이 꼬집듯 말했다.
“하여간 렌코쿠가 거짓말 지어내고 사람한테 누명 뒤집어씌우는 데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니까?”
“그럼 그게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재성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동민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너도 그렇지만 나 싫어하는 애들이 좋아라 했겠네? 코도 너한테 뭐라고 하디?”
“코상은 그냥, ‘박상 큰일이네. 걱정이네.’ 뭐 이러던데요? 코상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리고 저 형 싫어하지 않아요.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래?”
동민이 손사래를 치는 재성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하지만 재성이 동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실 재성이 싫어한 것은 동민의 캐릭터나 동민이라는 사람 자체는 분명히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동민이 은연중에 보이는 일본 국립대학을 향한, 그들이 속한 문학부를 향한, 중국문화론 연구실의 수준저하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에 기인한 반발이 가장 큰 것이었을 뿐, 그것이 동민을 싫어한다고는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해 어렵게 어렵게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면서 겨우 유지하고 있는 학생신분에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수준이나 학교, 연구실의 수준이 한국의 그것에 비해서 한참 떨어진다는 말을 들을 때면 자신이 비하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서 듣기 싫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이 늘 논리적 분석에 근거한 사실이라는 점이 더욱 재성의 자격지심을 건드렸고, 그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 반발이 재성이 동민을 거슬려하는 본능적인 이유라면 이유였다.
“코가 대만학회에서 나한테 협박과 공갈을 받았다고 거짓고발을 해서 내가 지금 그 누명을 쓰고 이러고 있는 게 이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 얘기는 코나 곤도나 렌코쿠도 말 안 했겠지?”
“네?”
한 마디로 정리한 사건의 전말.
재성이 여기저기서 들었던 사건의 전후와는 판연히 달랐다. 물론 재성도 알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기는 했겠지만 동민을 가까이서 접해본 결과, 그가 여자를 밝힌다거나 여자에게 손을 댈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클럽의 웨이터로 일해봤던 자신의 눈썰미에서도 택도 없는 거짓말인 것은 짐작했더랬다. 게다가 누가 공개적인 학회에 가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는가를 상식적으로 생각만 해도 일본 학생들이 뒤에서 한 사람을 이지메하고 그를 매도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을 감안하건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보지 않아도 직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동민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귀결들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오히려 얄밉게 느껴질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형은 언제나 똑같네요.”
벌써 연구실로 들어가야 할 갈림길인데 둘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재성은 동민의 자초지종이 궁금했고,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서 이대로 또 헤어져서 카더라 통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감질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민은 한통속의 녀석일지라도 한참 조카뻘인 녀석에게 그런 식으로 자신이 인식된다는 것자체만으로도 불쾌해져 이 참에 재성의 가벼운 입을 통해서라도 최소한 진실을 알려서 마음의 누명을 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뭐가 똑같애?”
“형이 연구실에 온 지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연구실 사람들하고 시끄러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요?”
재성은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통해서 동민의 안하무인격의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가 결국 모든 문제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며 멋지게 지적하고 싶었다.
“처음이 아니라... 흐음. 결국 이런 일이 자주 생겼던 게 결국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어떻게 형은 늘 100% 형은 잘못이 없고, 다 일본 학생들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죠? 형이 그 사람들한테 빌미를 제공했으니까 그런 일이 생겼다고는 한 번도 생각 안 해요?”
“그래서?”
동민은 그의 감정적인 도발에 반박할 꺼리가 없지도 않았지만 이참에 도대체 재성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빤한 생각이 한 번쯤은 그의 입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그렇잖아요? 그 사람들도 일본의 국립대학에서 10년 이상 공부하고 박사과정이면 형이랑 똑같은 수준이거나 교수들은 더 높다면 높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명이 같은 소리로 형한테 뭐라고 한다면 그건 형도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닐까요?”
동민은 자신도 모르게 경직된 얼굴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을 올리며 재성의 지적에 맞서고 있는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공부해도 헛공부를 하면 실력이라는 건 결코 늘지 않아. 중국어 전공이라는 것들이 10년이나 공부해서 중국인들 앞에서 중국어로 자기 논문을 발표조차 못하는데, 같은 수준이 뭐가 어쩌고 어째? 난 중국어가 전공도 아닐뿐더러 걔들이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에 대해 이리저리 다 책임질 필요도 없는 사람이야. 걔들이야 자기들하고 비교되고 자기들이 무시당하니까 당연히 싫겠지. 네가 자격지심을 가지고 지금 울컥해서 나한테 대드는 것처럼 말야. 그렇다고 내가 걔들 욕을 하고 다녔냐? 나도 지금 이 연구실에 속해 있으니까 같이 열심히 공부하자고 하는 건데, 좀 더 열심히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뒤에서 사람 욕이나 하고 없는 루머 만들어 내는 게 정상인 공부하는 사람이 할 짓이냐?”
“왜 형은 늘 자신만 피해자라고 말하죠? 형이 잘못한 건 없어요? 저는 대만학회에 같이 가서 그 상황들을 모두 보고 듣지 않아서 잘 모르긴 하지만 대만학회에서도 뭔가 그럴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물고 늘어지지 일본 사람들이 아예 없는 얘길 하진 않잖아요?”
“그래? 그러면 넌 렌코쿠의 말처럼 장말 타무라가 정신병이 있어서 멀쩡히 박사 3년 차까지 공부하다가 자퇴했다고 생각하냐?”
“여기서 왜 타무라상 얘긴 꺼내고 그러세요?”
타무라는 재성이 중국문화론 연구실로 오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은인과도 같은 인물이 아니던가. 학부를 막 입학했던 재성의 하숙집 룸메이트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폼나는 일인지 실제로 보여준 인물이 바로 타무라였다. 그가 사토 렌코쿠의 이지메를 견디지 못하고 박사 3년 차까지 공부를 하다가 자퇴한 것은 렌코쿠와 동민을 포함한 몇몇 인물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렌코쿠는 공공연하게 다른 학생들의 앞에서 그런 타무라를 정신병자로 몰아버렸다. 재성은 근거 없는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사실 지도교수로 곤도 조교수를 지정한 했던 것도 모두 렌코쿠의 그런 가벼운 행동거지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렌코쿠가 자기 나라 학생도 자기 비리가 드러날까 봐 압력 넣어서 내쫓는 판인데 나야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상황은 너도 직저버 보고 들어서 잘 알지 않냐?”
“그만두라고 그래요? 사토 선생님이?”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임신한 집사람한테까지 협박메일을 보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협박은 설마요. 저는 형이 하는 말도 반만 믿어요. 과장이 심하잖아요, 무슨 협박을 했겠어요? 일본의 국립대학 교수가?”
재성은 자신이 속해 있는 연구실이 폄하되는 것에는 내심 조건반사처럼 듣기 싫은 티를 바로 드러냈다. 이제 대학원 진학까지 결정된 마당에 실력 없는 이들로 가득한 복마전이라는 동민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것은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지향하고자 했던, 올라가고자 했던 지반이 모두 흔들리고 만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그런 결말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너한테 하랴?”
동민의 표정으로 보건대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몰라도 적당히 과장과 허풍이 섞여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재성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직접 얘기는 해보셨어요? 형이 너무 자신만만해하고 그러니까 자기한테 머리를 완전히 숙이지 않았다고 여기는지는 몰라요. 무조건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사정이라도 해보셨어요?”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인간한테 무릎까지 꿇고 잘못을 비냐?”
“당연히 그래야죠. 형이 학생이잖아요. 지도교수가 사토 선생님인데...”
재성의 너무도 당연하다며 한 조언에 동민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동민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던 것은 재성도 마찬가지였다.
“야! 아무리 그래도 시시비비도 상관없이 내가 학생이라서 지도교수에게 무조건 빌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나요? 형이 S대에서 선생이었는지 교수님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 형이 여기서 장학금을 받아가면서 학비의 부담이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일본 측의 국립대학에서 배려를 해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고, 지금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다 이쪽에서 배려를 해주니까 그럴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재성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사토 렌코쿠가 보낸 협박 편지의 대변인과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넌 한국 사람이라는 애가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냐?”
“아니면 그냥 형도 속 편하게 조용히 문제를 덮고 돌아가는 건 생각해 보셨어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올 뻔한 것을 참은 동민이 어렵게 말을 받았다.
“지금 나보고 도망가라는 거냐? 꼬리 내리고? 너만 해도 내가 이렇게 사라지면 ‘그럼 그렇지’하면서 좋아라 할 거 뻔한데 내가 잘못한 것도 하나 없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불명예스럽게 여기서 꼬리를 말고 사라지라고? 그게 말이 되냐?”
“아니에요. 전 절대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냥 무슨 사정이 있어서 공부를 그만뒀나 보다 그러지.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그냥 그 사람 없으면 끝이에요. 요즘 연구실에는 사람들도 안 나오고 완전 휑해요. 다들 자기 살기 바쁜데 뭐 때문에 그러겠어요?”
“됐다. 그만하자. 렌코쿠에 대해서는 내 변호사도 그렇고 법률적인 조치도 다 준비됐고 협박에 대한 형사고발도 할 예정이고 연구비 횡령에 대한 증거도 다 잡았고···”
“예?”
놀라는 재성의 등을 두들기며 동민이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기며 말했다.
“그러면 렌코쿠가 짤리는 그때 내 말이 옳은지 틀린 지 그때 가서 확인해라.”
“아이참! 형! 그렇게까지 막 나가지 마시고 그냥 좋게 좋게 해결하세요.”
재성이 붙잡으며 말을 걸려는 것을 뒤로하고 동민이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지으며 전의를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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