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28

도대체 대만학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 3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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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먼저 있었던 1차 학회에서 그쪽의 온천이니 관광을 맡아주었으니 자신들의 프로젝트 연구비로 일본 손님들을 접대한다며 대만 대학 측에서는 버스까지 대절해서 교수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대동하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온천지가 있는 바닷가 해수욕장에 가서 학회를 빙자해서 연구비로 그들의 궁색한 여름휴가를 보내자는 이벤트가 학회의 마지막 하루에 담겨 있었다.

전날 함께 술을 마셨던 대만 대학원생은 말도 안 되는 수준임을 확인해 줄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계속해서 일본어 통역으로 그 이벤트에 또 따라와 있었다.


“박상은 일본인이 아니었군요.”

“어제 술 마시면서 서로 소개할 때 이미 다 얘기했는데 어제 많이 취했었나 보군.”

“아니요. 오늘 버스 타고 오면서 코상에게서 들어서 알았어요. 한국분이시라구요.”

“응.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박 씨가 없어.”

“그러네요, 듣고 보니.”


멍청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중국으로 다시 동민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일본 대표로 오신 거죠?”

“난 지금 그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맞으니까.”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요.”

“나에게 흥미가 새삼스럽게 생긴 거야?”


동민이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며 질문을 던졌다.


“아! 그게... 그러니까 아까 오면서 코상이 박상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줘서요. 굉장히 대단하신 분이라고....”


그녀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돼. 그녀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내가 모르지 않으니까.”

“네?”

“궁금해진 거지? 정말로 그렇게 이상한 사람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마치 더듬거리던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알아. 그렇게 당황한 티를 내면 저기 멀리서 도대체 어떻게 두 사람 관계가 꼬이는지 기대하며 보고 있던 코가 즐거워하잖아. 그러니까 어제처럼 남동생 역할로 즐겁게 얘기하자구.”

“네?”


그녀는 어제 그저 사람 좋은 얼굴로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던 사람이 이 사람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로 힐끗 보인 저 멀리에서 코가 자신들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확인했지만 그의 발표를 듣지 못했던 그녀에게 다른 중국 철학 연구실의 후배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동민이 일본 학생들 중에서는 군계일학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질의응답에서 있었던 그 날카로운 답변이 압권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코상과 원래 사이가 안 좋으세요?”

“응? 저런 친구와 내가 사이가 좋고 안 좋을 게 뭐 있나? 전혀 다른 사람일 뿐인데....”

“네?”


동민의 알 듯 모를 듯 묘한 답변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속이 검은 사람과는 속 얘기를 하지 않거든.”

“네?”


그게 자신을 의미하는 것인지 코를 은유하는 것인지조차 다시 묻기 애매한 상황이 쭉 이어졌다.

대만의 학회에서 벌어진 메인이벤트는 바로 마지막 날 아침에 열린 반성회였다. 일본인들이 주로 하는 형식이기는 했는데, 대개는 인솔 교수인 유하즈가 그것도 일본으로 돌아가 이번 학회를 정리하면서 뒤풀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 맞다 싶었는데, 렌코쿠와 같은 성씨를 가진 일본인 교수가 자신이 일본의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나마 대만의 국립대학에서 자리 잡았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이 아침에 그것도 자신의 다섯 살짜리 딸과 대만인 아내를 옆에 앉혀놓고 간단한 대만식 아침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열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전날 술판으로 폭탄 맞은 표정으로 끌려 나온 일본 노총각부대나 코까지 포함하여 그런 자리가 달가울 리 없었다. 마치 공산당의 자아비판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교수는 한 명씩 자신이 이 학회에서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를 말해보라고 했다.


어차피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대만인 아내가 알아들을 리 만무했지만 어느 정도는 일본어를 알아듣는다는 표정으로 그의 아내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이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이가 가장 먼저 그 불편한 자리의 공기를 읽었는지 투정을 부리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괴성에 가까운 호통을 치며 일본인 교수가 다섯 살 딸아이를 잡을 듯이 뭐라고 꾸짖었다.


“으아아아앙~!”


아이는 결국 대성통곡을 하고 넘어갈 듯이 울기 시작했고,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 있다는 듯이 그의 아내는 아이를 안고 자리를 피했다.


“아무리 아이라도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지. 암!”


자신의 교육방식을 본받기라도 하라는 듯이 그가 자랑스럽게 눈을 지그시 감아 보이며 말했다.


“자아, 누구까지 했지? 아! 박상! 박상의 이번 발표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들 대만 측에서 말이 많았나 보던데, 박상은 어땠는지 들어볼까? 그리고 박상 알고 있나? 나는 서울대에서 정치학과 1년을 다녔던 자네의 선배이기도 해.”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중퇴하셨다고.”


'중퇴'라는 말에 악센트가 찍힌 듯이 그의 얼굴이 일순 찌그러졌다.


“뭐 어찌 되었던 네덜란드에 가서 박사를 받아왔으니까. 박상은 말이야. 자네가 훌륭한 인재라는 건 분명히 알겠어. 응. 그건 누가 봐도 알 정도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어차피 서울대에서 박사를 받았고 일본에까지 와서 박사를 또 하나 하려고 하고 그렇게 돌아가서 서울대 교수를 하면 그뿐이겠지만 말이야. 지금 이곳에 같이 와서 어릿광대로 웃음거리나 되어 가는 그들을 보면서 조금 튀지 않고 적당히 묻혀 있었으면 안 되었나?”

“네?”


그의 황당한 지적에 동민의 반응이 본능적으로 날카로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토호쿠 대학의 교수에게 전공조차 제대로 일본에 알리지 못한 학자니 뭐니 하는 비아냥까지 들은 마당에 동네북도 아니고 그들의 시비가 영 거슬림에 마지않았다.


“서울대라는 얘기도 좀 꺼내지 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대단한 대학인지 다들 알고 있으니까.”


순간이었지만 어눌한 한국어로 그가 마치 밤새 준비했을 법한 멘트가 흘러나온 것은 일순간이었다. 내내 일본어로 대화중이었으니 다른 일본 학생들이 무슨 이야기인지 놓쳤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얘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잖아. 그렇게 하고 다니지 말라고.”


다시 자기 딴에 최대한 무게를 실은 묵직한 톤이라고 말했지만 그 내용자체가 어느 황당해서인지 동민은 도리어 말문이 막혔다.


“그래, 이번 학회를 통해서 우리가 뭘 고쳐가는 게 좋을지들 이제 말해볼까?”


동민이 채 뭔가 설명하거나 말할 틈도 없이 그는 다음 순서를 진행하는 지방무대의 사회자처럼 냉큼 타이밍을 흩트려놓았다.


“그러면 제가 먼저 해도 될까요?”


동민이 작정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지 뭐.”

“학회인지 세미나인지 발표회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준비과정부터 조금은 명확하게 주최 측에서 색깔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일본 측 학생들이 중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지 전공이 중국 문학이나 철학이라는 이유로 대만 학생들은 일본에 와서도 일본어로 발표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들의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정작 일본 학생들은 전공이니 수준도 되지 않는데 그것도 전공 논문 발표를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느꼈습니다. 차라리 언어교환을 시켜주거나 정기적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낫지, 이렇게 일회성으로 마치 서로 학회를 빙자한 관광이나 여행을 하려는 것처럼 하는 것은 저는 조금 맞지 않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으음.”


연구비로 자신의 가족까지 끌고 와 휴가를 즐겼던 일본인 교수입장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대목이었다.


“그래...”

“그리고...”


막 말을 막고 넘어가려는데 동민이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양국 전공자들의 우호증진을 위함이라고 하지만, 일본 대표 측에 중국인 유학생을 통역으로 그것도 연구비로 항공료와 체제비까지 지원해 주는 방식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자기 나름대로는 다섯 살 딸아이 교육까지 제대로 해야 한다고 거들먹거렸던 터라 동민의 입바른 소리를 다른 명목으로 틀어막기엔 이미 때가 늦어버렸음을 일본인 교수는 뒤늦게 깨달았다.


“대통령 회담도 아니고 일본 대학의 중국문학 철학 전공 연구실에 중국 유학생이 자신의 모국어인 중국어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다는 것만도 알려지면 일본의 창피가 될 만한 일인데, 이 학회를 빙자한 관광여행에 참여하겠다고 그 말도 안 되는 석사논문을 그것도 중국 본토의 논문들을 짜깁기 한 논문을 버젓이 축약해서 읽고서 통역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이후에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야. 나도 공감해.”


미리 말을 틀어막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지만 이미 말이 터져 나왔는데 그걸 부인하는 것은 이제까지 자신의 겉멋 들린 언행과는 불일치한다고 느꼈는지 그가 동민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정작 귓불까지 빨개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고 있던 코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화장실을 간다며 나가서는 다시는 자리에 돌아오지 못했다.

어색했던 반성회의 끝에 점심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다시 한번 붙은 것은 동민과 일본인 교수의 대만인 아내였다.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죠?”


동민이 딱 꼬집어 긴바라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자기 나라의 모국어를 학문으로 전공하지 않은 이가 그저 그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만에서 일본어 선생을 하거나 일본에서 중국어 선생을 하는 것은 학문을 하는 학자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운을 띄운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만약에 당신의 딸이 비싼 돈을 주고 영어 유치원을 보냈는데, 그 영어 유치원의 담당 선생님이 미국에서 마트 캐셔를 하던 사람인데 버젓이 대만에 와서 미국인이라는 국적만으로 영어선생님으로 둔갑했다면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건....”


빠르게 쏘아붙이듯 가정질문을 던지는 동민의 쐐기 답변에 그녀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동양에서는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해서 그런 일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영어 선생님을 하겠다고 돈벌이가 괜찮다면 동양에 살러 오는 개념 없는 서양 범죄자들이 즐비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긴바라 상이나 그런 분들은 공부를 하신 분이니...”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긴바라 상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긴바라 상을 비난하기 위해 꺼낸 이야기도 아니구요. 그저 제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전공한 학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언어를 전공한 언어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단지 그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당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이들이 그 언어를 가르치는 강사, 교수가 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학문적 기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전공의 사람들은 모국어임에도 뭐가 부족하다고 모국어를 학문적으로 그렇게 연구했을까요?”


그녀가 발끈한 것이 그녀의 남편이 결국 일본인이라는 상대적 어드밴티지를 인정받아 네덜란드에서도 그리고 대만에서 자리 잡을 때에도 도움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는 점을 동민이 인지하지 못할 리 없었다. 특히 여기저기 거들먹거릴만한 훈장을 만들겠다며 떡하니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가 제대로 적응도 하지 못하고 짤리듯이 중퇴하고 네덜란드로 행선지를 바꾼 일에 대해서도 모두 듣고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동민의 논리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당장 자신의 다섯 살 딸의 영어 교육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는 지적에 그녀는 머릿속이 텅 비는 것만 같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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