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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8. 2021

자신을 이끌어준 멘토에게 해고당한다면...

그 멘토에게 정중하게 감사 식사자리를 마련한다?

1956년 1월 뉴욕의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시어슨'이라는

중소 금융회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다.

일반적인 다른 그리스 이민가정보다는 형편이 넉넉한 편이었지만 미국 주류 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었다고도 보기 애매한 상태였다.


아이비리그급은 아니었지만, 보스턴에 소재한 터프츠대에 진학해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보다 큰 꿈을 갖고 1980년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 과정에 입학한다.

그의 하버드대 동기들은 이후 어마어마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들이 된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 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

미디어 대기업 NBC 유니버설의 스티브 버크 CEO,

투자회사 바우포스트의 세스 칼먼 CEO 등등.

제이미 다이먼 (Jamie Dimon).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JP 모건'이라는 이름은 경제에 문외한인 이들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바로 그, 'JP 모건 체이스'의 21년째 CEO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터프츠대 재학 당시 다이먼은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했던 '시어슨'의 인턴으로 일했다.

그때 그는 시어슨의 경영 현황과 M·A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다이먼의 아버지는 이 보고서를 자신의 상사이자 시어슨의 CEO였던 샌디 웨일(Snady Weill)에게 보여준다. 시어슨의 CEO 자리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던 야심가 웨일은

신출내기 대학생이 쓴 보고서의 내용에 깜짝 놀랐고 다이먼을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이 야비하게 웃는 아저씨가 샌디 웨일이다.

1982년 하버드대 MBA 졸업장을 거머쥔 다이먼은 월가에서 직장을 알아보려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당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장이던 웨일을 찾아간다.

다이먼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쟁쟁한 금융회사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포기한다.

웨일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다이먼을 그 자리에서 바로 개인비서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1998년까지 16년간 피로 맺어진 부자관계보다 더 끈끈한 사회적 부자관계를

유지하며 웨일과 다이먼은 금융계의 성공신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 환상의 콤비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시작하여 커머셜 크레디트, 트래블러스그룹, 시티그룹을 차례로 일구는 신화를 창조한다.


하지만, '멘토와 멘티가 미국 금융계의 전설이 되었다.'는 해피엔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1998년 시티그룹의 회장이었던 웨일은 다이먼에게 자신의 딸을 인사 채용하도록 요구한다.

16년간 멘토와 멘티의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가족과도 같은 사이였다.

다이먼은 함량 미달이던 웨일의 딸을 인사 채용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물론 단순히 16년간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딸 인사 문제 하나로 틀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결론은 파국을 치달았다.

웨일이 다이먼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애증의 두 사람이 금융계의 전설로서 걸어온 길을 비교한 표

그렇게 잘 나가던 다이먼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다.

악의적인 소문은 월가에 파다했다.

한창 일해야 할 43살의 다이먼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갑작스러운 휴식기를 맞은 그는 먼저 권투를 배웠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위인전도 읽었다.

그렇게 1년의 자기반성과 충전의 시간을 보낸

다이먼의 행동은 모든 월가에 충격을 던졌다.

자신을 자른 샌디 웨일을 점심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잘 나가기만 하던 인생에서 실패를 통해

정말 인생이 무언인가에 대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한다.

다이먼은 그렇게 자신을 가다듬는데 1년을 충실하게 사용한다.

그리고 2000년 부실로 휘청대던 시카고의 작은 은행 '뱅크원'에서 처음으로 은행 최고경영자가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뱅크원과 JP모건의 합병을 진두지휘하고 베어스턴스, 워싱턴뮤추얼 등을 추가 합병하며 JP모건을 미국 최고 은행으로 만든 일등공신으로 추대된다.

인수합병(M·A)을 기반으로 덩치 불리기를 통해

월가의 ‘은행 포식자(Bank Eater)’로 불리며 해고된 지 10년 만에 월가 금융황제가 된다.


샌디 웨일은 어떻게 되었느냐구?

결국 자신이 시티그룹 단독 회장으로 올라갔다가 그룹을 말아먹는다.

 

반면, 다이먼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가 잇따라 무너질 때도 적자 없이 위기를 극복하며 능력을 발휘했다.

또 대통령, 재무장관,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연준) 의장,

정치인 등 월가를 압박하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서슴지 않으며 ‘월가의 대변자’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로이터통신은 다이먼이, 1907년 금융위기 당시 ‘월가의 구원투수’로 불렸던 JP모건의 창립자 존 피어몬트 모건이 살아 돌아온 인물이나 다름없다고 극찬했다.

올해 65세인 그가, 70세까지 CEO 임기를 보장받았다는 월가의 뉴스가 지난주 외신으로 날아들었다.


하버드 MBA는 학문을 하기 위한 코스가 아니다.

철저하게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공부하고 쌓은 인맥을 뒤로하고

다이먼은 바로 웨일의 개인비서로 16년이나 그의 오른팔 역할을 철저하게 해왔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시점의 어느 날 하루아침에 해고 통지를 받았다.

객관적인 상황도 상황이겠지만, 사회에 나와 16년 동안이나 자신의 멘토라고 여겼던 이에게 무능력하기 때문에 해고당하는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두르지 않았고, 분개하지 않았다.

그 분노를, 육체를 최상의 조건으로 만드는 권투를 배우는데 발산했고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을 위인들의 실패와 극복기를 읽으며 충실하게 다시 메꾸고 수양해나갔다.

그리고 다시 월가에 복귀하기 전,

자신을 잘랐던 원수 같은 멘토를 점심식사에 초대해서 정중하게 내게 인생을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것은 출사표를 던졌던 제갈량의 단호한 의지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부활의 서막을 그는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배신에 치를 떨었을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의 소중한 돈을 떼먹고 도망간 놈에서부터 당신의 노력을 훔쳐가 놓고 오히려 적반하장 격의 태도를 보였던 사람에 이르기까지 나쁜 놈들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는

짧지 않게 사는 동안 숱하게 들어보았다.

하지만, 16년간 끌어줬던 멘토에게 가혹하게 토사구팽 당한 다이먼의 그것보다 더 심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신이 당한 배신이

당신이 이용만 당하고 비난당했던 그 아픔이

다이먼의 이야기로 한숨에 희석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이먼이 그 황당한 해고를 당하고 나서

와신상담 자신의 부족함을 사유하고 메꾸기 위해

읽었던 위인들의 실패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대한

독서와 명상이

지금 당신에게도 필요함은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당신이 다시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휴식이자

당신의 몸과 정신을 다시 정점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난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약속 하마.


이전 13화 최강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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