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서 대학도 못 가고, 담배 심부름이나 하다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창작자로, 아이콘이 되다.

by 발검무적

1922년,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엔드 가에서 루마니아계 유대계 미국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소년 시절, 미국은 대공항으로 그의 집안 역시 경제난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는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와 독서를 좋아했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1937년도에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작문 콘테스트에 응모하여 두 작품이나 가작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연기자에도 관심을 보여 연극학원에 다녔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계속 안 좋았기 때문에 좋아하던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1939년 친척의 소개로 타임리 코믹스(마블 코믹스의 전신)에 입사하여 사장인 마틴 굿맨의 편집 조수로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작가들의 담배 심부름이나 원고를 복사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깨너머로 만화가들이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만들어내는지, 그 스토리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는지의 모든 과정을 몸으로 익혀 나가며 만화작가로의 승진을 꿈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탁월한 스토리와 캐릭터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원작 작성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자리에 전격 발탁된다. 당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캡틴 아메리카>의 전쟁 전과 후까지의 이야기는 그가 각본을 전담한 작품이었다.

군인으로 근무할 당시

1942년에는 미국 육군 통신부대에 입대한다. 입대 당시 만화책의 각본을 담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보훈 교육용 영화의 각본을 쓰는 각본부에 소속되기도 하고, 훈련용 매뉴얼, 시사만화, 포스터 등을 만들었다. 제대 후 동료인 조 사이먼 외 몇 명으로부터 DC 코믹스에 오지 않겠냐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마블의 사장으로부터 ‘나를 대신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만 편집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라는 부탁을 받아 굿맨의 비즈니스 지휘 하에서 당시 유행하던 서부극, SF, 전쟁물, 멜로드라마 등의 다수의 작품을 양산해냈다.

1961년에는, 1950년도부터 이어지던 괴기 호러물이나 SF 코믹 등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위기에 봉창하여, 방향 전환을 시도해 도산을 각오하고 슈퍼 히어로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실적인 요소를 투입한 <판타스틱 포>를 창간하였고, 이것이 큰 인기를 끌게 되어 이후 수년간 마블 코믹스의 대표작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블 코믹스의 대표 만화작가이자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전 명예 회장. 어시스턴트부터 커리어를 시작하여 편집장, 그리고 사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만화작가인 동시에, 연이은 역사적 업적을 세워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우리가 필명 ‘스탠 리(Stan Lee)’로 알고 있는, 본명, 스탠리 마틴 리버(Stanley Martin Lieber)의 이야기이다.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데어데블 등의 유명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을 창조, 혹은 공동으로 창조한 사람으로, 팬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스탠 ‘더 맨’ 리, ‘바로 그분’ 되시겠다.

사실 스탠 리는 <판타스틱 포>를 창작하겠다고 결심하던 당시, 전직을 생각할 정도로 만화책 제작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만화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준비 중이던 <판타스틱 포>에도 제작조차 참가하지 않으려 기피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그럼 당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한번 써보는 게 어때요?”라고 권해, 어차피 그만둘 마음으로 편하게 자신이 진정 원하던 방식대로 쓴 이야기가 회사를 기사회생시키고 대성공까지 거두게 된다.

이후 제작하는 작품의 수가 많아지면서 작업 방식을 자신이 대략적인 스토리를 아티스트에게 넘기면 아티스트가 이에 맞춰서 작화를 전부 완성해 보내고, 리가 대화문이나 내레이션을 넣어서 완성하는 식으로 제작했다.


이러한 제작 방식 때문에 리가 작품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작은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는데,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만화계에서 대부급에 해당하는 만화가들은 모두 작업실을 두고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품을 양산했다. 그 말인즉은, 창작 작가의 아이디어와 캐릭터 창조, 스토리 라인을 만든 이후의 작업은, 말그대로 양산 작업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만화계의 정설이다.

리가 만화계에 끼친 그 만의 영향력은 그 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특히, 그는 팬들과 제작진의 관계를 밀접화하는 데 공헌하는 아이디어를 낸다.


자신이 참여한 작품의 표지에 스토리 작가와 펜슬러뿐 아니라, 컬러링과 활자 담당의 이름까지 포함했으며, 만화책 말미에 차기작에 대한 예고나 제작진에 대한 소식 등을 싣는 독특한 편집 방식을 최초로 시도했다. 이는 독자들이 제작진을 ‘자신들의 친구’로 생각하도록 의도적 장치였다. 이 방식은 이후 일본과 한국 등 전 세계 만화계에서 그대로 답습된다.

이런 독자들과의 소통을 만화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까지 끌어오기도 했는데, <판타스틱 포> 초창기에 ‘수 스톰’이 쓸모없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이를 <판타스틱 포>의 다른 멤버들이 반박하는 모습으로 작품에 반영하여 그렸고, 이후 수에게 포스 필드 능력이 생겨서 <판타스틱 포> 최강의 멤버로 변신하는 데 일조했다. 팬레터를 받는 방식도 ‘편집장에게’가 아니라 ‘스탠과 (작화가)에게’라는 방식으로 쓰는 것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의 고집과 실행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건도 있었다. 다시 미국의 만화 검열 규제의 주체였던 CCA에 맞섬으로써 만화계를 자유롭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낸 사건이었다.


어느 날, 미국 보건부에서 마블 코믹스 측에 마약의 해로움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온다. 스탠 리는 스파이더맨 코믹스에서 해리 오스본이 마약 때문에 폐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CCA의 규율에 따르면, 마약의 효과를 그리는 건 그것이 해로운 영향일지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허용되지 않았고, 그들은 실제로 스탠 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탠 리는 CCA보다 보건부의 행정기관으로서의 위치가 훨씬 더 높으니 무시하고 그냥 출판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준비되었던 원고는 CCA 인증 없이 바로 출판되었다. 만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그들의 숨통을 조이던 CCA는 스탠 리가 반항한 이 사건을 계기로 점차 그 힘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가 출연했던 까메오 씬들

그는 2000년부터 마블의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기 시작해서(실제 한국에서는 이 할아버지가 왜 영화의 카메오로 그렇게 나오는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이다.)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엔드 게임>까지 정정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아흔이라는 나이로, 자신의 전공분야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본즈와의 협업으로 <HEROMAN>과 <THE REFLECTION>의 원작을 담당하거나 일본 만화 <샤먼킹>의 작가와 공동으로 만화 <기교동자 울티모>를 제작하는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새로운 미래가 있다고 보며 지대한 관심과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의 자서전의 말미를,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을 바라봐 주는 여자가 있으면 그걸로 삶은 충분하다.’로 끝낼 만큼, 자타공인 애처가로 유명하였으나, 2017년 7월, 동갑내기이던 아내 조앤 리가 94세로 별세하며,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사랑하던 아내와 함께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후, 현지 시각 2018년 11월 12일 본인의 집에서 건강이 악화돼 응급 의료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발생한다. 긴급히 의료센터로 이송됐으나 이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96번째 생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마블 코믹스 및 영화 팬덤은, 영화에 카메오로 나올 때마다 나이에 비해 워낙 정정해 보여 충분히 몇 년은 더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적으로도 보도될 정도로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한국에서도 하루 종일 실검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이 비보를 접한 마블 코믹스의 작가들을 필두로, MCU의 제작진, 관련 배우들은 물론, 마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일론 머스크, NASA, DC 코믹스, 심지어 미합중국 육군에 이르기까지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사실 그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화 작가의 일에 회의감을 갖고 자신이 온 길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본래 대학을 진학하지 못해서 그렇지, 문학을 꿈꾸던 문학도였고, 진정한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저 아이들을 위한 만화 따위(?)의 스토리를 쓰는 자신이 스스로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시대적 상황은 오히려 역풍을 일으켜, 만화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만화책을 모아 불태우고, 검열에 들어가는 등 사회적인 압박도 점차 늘어갔다. 그래서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소설이나 다른 글을 써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렇게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 위기의 시간들을 겪고 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그가 창조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대변한다. 이후 스탠리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슈퍼맨을 필두로 했던 이전 히어로물의 주인공들과 달리,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면서도 성장해나간다는 점이 그가 바로 당신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당신이 문득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고, 이런 일을 하려고 내가 지금껏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며 살아왔는가 싶은 시기가 올 때가 있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던가하며 이제까지의 자신과 그 삶을 부정하고 후회할 때가 올 수도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고,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오늘 살펴본 것처럼, 마블을 대표하는 수장 자리까지 올랐던 그마저도 그러한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쪽을 택했고, 당신 역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그의 95년간이나 되는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과 함께한, 스탠 리 서거 1주기 기념으로 발행된 마블 포스터

힘겹고 어려웠지만, 자신이 차곡차곡 그간 해왔던 그 일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더해, 모두가 인정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그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 어떤 유명 소설가보다도 더 영향력 있는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당신이, 당신의 지금 서 있는 자리에 불만족스럽고 그게 자신의 자리가 아닌데 싶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지금 오늘 당장 주어진 일조차도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저 그렇게 투덜거리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이제까지 당신이 쌓아온, 당신만의 능력으로 바로 앞에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멋지게 성공시켜본 일이 언제였던가?


그저 먹고살기 위해, 회사에서 부속품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굴러오는 나사를 조이는 일 말고, 정말로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분명히 당신에게는 쌓여있다.


지금이라도 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갈 회사는 많다는, 안일한 생각에 추석 보너스라고 악착같이 다 챙기겠다고,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사직의사를 밝히고, 겨우 연봉 백 더 준다는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며, 고기서 고기인 회사를 알아보겠다고 상사 몰래 리쿠르트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에,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과 능력을 집중해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뭔가 확실한 결과물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완성시켜 볼 생각은 해봤느냔 말이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서, 맥주잔 기울이며 회사 상사나 안주삼을 인생이라면 당신의 인생은 그저 컨베이어 벨트에 찍혀 있는 회사 이름만 바뀔 뿐, 하는 일은 결코 대단하지도,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해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집중하고 영혼을 송두리째 들이부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들지 않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