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재능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글줄깨나 읽었다며 착각하고 나대는 이들에 대한 충고

by 발검무적
子曰: “道不行, 乘桴浮於海, 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께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이때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 由(자로)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자로(子路)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자, 공자께서는, “由는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나으나, 사리를 헤아려 맞게 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등장한 적이 있는 공자의 제자 자로에 대한 평가가 나온 장이다. 자로는 뒤의 13편, 자로편에 또 언급될 정도로 공자의 지근거리에서 공자를 보좌했던 인물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자세히 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字)는 자로(子路)이며, 계로(季路)라고도 불렸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쓰수이현[泗水縣]인 노국(魯國) 변읍(卞邑) 출신이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10인을 뜻하는 ‘공문십철(孔門十哲)’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너무도 당연하게 ‘공문칠십이현(孔門七十二賢)’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자의 사당에 배향되어 있다.


왜 너무도 당연하냐구?

자로(子路)는 공자보다 9살이 어려, 공자를 수행했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다. 나이가 많은 맏형이라 우대를 받았느냐고? 공자를 아직도 그리 모르는가?


그들은 만남부터가 심상치 않은 인연이었다.

원래 자로(子路)는, 공자가 그리 비난해마지않던 노나라의 세 경대부(卿大夫) 가문인, 삼환(三桓) 가운데 하나인 계씨(系氏)의 읍재(邑宰)라는 벼슬자리에 있었다. 단순+무식+포악한 것으로 유명해서, 조금 배웠다며 입만 놀리는 이들을 직접 혼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여, 처음에는 공자를 업신여기고 포악하게 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운명적인 첫 만남 이후 공자의 인품에 K.O 되어 공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교화되자, 다른 제자들의 요청으로 공자의 문하로 받아들여진다.

효성 깊었던 그의 고사를 그린 그림

<사기>에서는 자로(子路)를 언급하며, ‘성격이 거칠고 용맹스러운 일과 힘쓰는 일을 좋아하고 의지가 강하며 정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그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을 칭찬하였으나, 성급하고 거친 성정은 늘 주의토록 하였다. 예컨대 공자는 자로를 ‘닳아빠진 솜옷을 걸치고 여우와 담비 가죽을 입은 사람과 함께 서 있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자’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을 잘 헤아려 사리에 맞게 하는 것이 없다.’며 단점을 고치도록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수탉의 깃으로 만든 관을 쓰고, 수퇘지 가죽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다녔다. 어떤 면에서는 제자라기보다 가장 친한 친구요 가장 엄격한 비판자였다는 견해도 있다. 자로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한 사람이었는데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단점을 지적해주는 이가 있으면 누구보다 반겼다고 한다. <논어>의 ‘안연편’에 보면, 그는 약속을 다음 날까지 미루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스승 공자와 결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자로가 위나라 대부 공회 밑에서 ‘읍재(邑宰)’라는 관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일찍이 위나라 왕 영공(靈公)에게는 ‘남자(南子)’라는 애첩이 있었다. 태자 과외(蕢聵)는 남자(南子)에게 죄를 짓고 살해당할까 두려워 다른 나라로 도망을 쳤다. 영공이 죽고 나서 남자(南子)는 자신의 아들 영(郢)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영은 이를 거절하고 망명한 태자 과외(蕢聵)의 아들 첩(輒)에게 양보하였다.


그가 바로 출공(出公)이다. 그런데 출공(出公)은 즉위한 지 12년이 지나도록 망명한 자신의 아버지 과외(蕢聵)를 불러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왕위를 내놓기 싫다는 본능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과외(蕢聵)가 영공(靈公)의 외손자인 대부(大夫) 공회(孔悝)에게 반란을 일으키자고 제의하였고, 공회(孔悝)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군사를 일으켜 출공(出公)을 내쫓게 된다. 이렇게 하여 과외(蕢聵)가 아들에게서 왕위를 찬탈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장공(莊公)이다.


아들을 축출하겠다는 이 아버지의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당시 주군이던 출공(出公)을 구하기 위해 수도로 달려오는 자로(子路)는 마침 중도에 있던 자고(子羔)를 만날 수 있었다. 자고(子羔) 역시 공자의 제자로 위나라 대부였는데, 그는 반대로 쿠데타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 길이었다.

“나라의 봉록을 먹는 자가 어찌 이런 환난을 보고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자로(子路)의 추상같은 비난을 듣고도 자고(子羔)는 저 하나 살겠다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자로(子路)가 할 수 없이 혼자서 성으로 달려가 과외(蕢聵)의 앞에서 단도직입으로 소리친다.


“주군께서는 어찌 반역자 공회(孔悝)와 함께 하시려 한단 말입니까? 청컨대 그를 제게 내어 주십시오, 이 손으로 그 죄인을 죽이고 말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공회(孔悝) 부추겨 반란을 일으킨 괴외(蕢聵)가 자로(子路)에게 공회(孔悝)를 내어줄 리 만무하였다. 괴외(蕢聵)는 휘하의 장수, 석걸(石乞)과 호염(壺黶)에게 자로(子路)를 죽이라 명한다. 많은 군사들이 자로(子路)를 에워싼 가운데 칼싸움이 벌어졌다. 자로(子路)는 혈혈단신 혼자서 적진에 뛰어들었기에, 애시당초 중과부적(衆寡不敵)인 싸움이었다.


어느 순간 상대 군사 중 한 명의 칼이 자로(子路)의 갓끈을 잘라 끊어놓았다.

“잠깐!”

마지막인 듯 준엄한 자세로 자로(子路)가 칼을 내리며 상대의 공격을 저지했다.

“아니, 뭐야?”

공격을 하던 군사들이 그의 경건하기까지 한 태도에 멈칫하였다.

“군자는 죽을 때에도 갓을 벗지 않는다!”


자로(子路)는 끊어진 갓끈을 다시 고쳐 맨 뒤에 반란군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게 된다.

평소, ‘자로(子路)가 용맹이 지나쳐 제명까지 못 살겠구나!’라고 한탄했던 공자의 말이 예언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자로(子路)는 죽은 뒤에도 시신이 소금에 절여 발효되어 젓갈로 담가지는, '해형(醢刑)'이라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다. 이 소식을 나중에 듣게 공자는 집 안에 있던 젓갈류를 모두 내다 버리고서, 그 후로 다시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한다.

달빛을 벗삼아 글을 읽던 자로

부러, 자로(子路)의 마지막 모습까지 공간을 할애하여 기술한 것은, 이 장에서의 가르침과 그의 인생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부분을 안 보고, 이 장만 보더라도 공자는, 제자 자로(子路)를 정말로 친구처럼 아꼈다는 생각이 든다.

자로(子路)가 스승의 칭찬에 순수하게 기쁨을 드러내자, 행여 그 칭찬의 행간까지 읽고서 스스로 갈무리하지 못할 제자를 생각하며 바로 스승은 그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준다.


방점은 숨겨진 행간과 보이지 않는 뒷부분에 있는데, 그것을 읽지 못하고 마냥 아이처럼 기뻐하는 제자에게 다시 뒷부분을 직접 드러내어 그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준 부분이다.

“由는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나으나, 사리를 헤아려 맞게 하는 것이 없다.”이 부분은 앞의 칭찬이, 그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장의 설명을 정자(伊川)는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바다를 항해하겠다는 탄식은 천하에 어진 임금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자로(子路)는 의리에 용감하였으므로 그가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 하신 것이니, 이는 모두 가정하여하신 말씀일 뿐이다. 그런데, 자로(子路)는 이것을 실제라고 생각하여 夫子께서 자기를 허여해 주심을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의 용맹을 찬미하시고, 그 사리를 헤아려 의에 맞게 하지 못함을 기롱하신 것이다.”

‘기롱했다’는 뜻은, 현재는 ‘실없는 말로 놀리다’라는 의미이나, 고문에서는 놀린다는 의미보다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여 ‘완곡하게 농담처럼 일러주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자가 칭찬을 하는 방식이다. 이전 편에서 공부했던 공자의 지적하는 방식은 가차 없는 정곡 찌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이 장에서 먼저 그의 용맹을 칭찬한다.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을 먼저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장점이 양날의 검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용맹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용처를 제대로 시의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방점으로 찍어주었다. 이른바, ‘공자식 케이스 바이 케이스 가르침’의 화려한 변용되시겠다.


정확하게 다시 풀어 설명하자면 ‘용기는 있으나 그 용기를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모르는구나.’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에게 깨달음을 주려한 것이다. 남보다 훨씬 뛰어난 그 용기를 어디에 써야 할지를 제대로 인지하고 사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러주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자로의 장렬한 죽음을 굳이 앞에서 기술했던 이유가 바로 이 장을 혹여 공자가 단순 무식한 자로를 말 그대로 놀린 것이라고 해석하는 무식한 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끼고 걱정하고 사랑하던 제자가 죽음을 당하고 굴욕적인 시신을 훼손당하는 처벌을 받은 것에, 젓갈류를 모두 내다버리고 입에도 담지 않았을 공자의 슬픔과 절망이 느껴진다면 그따위 엉터리 해석은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격한 운동을 좋아하던 젊은 날이 있어, 본의 아니게 '건달'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함께 운동하고 몸을 부대끼는 일이 많은 시절이 있었다. 깡패나 조폭이 아닌 ‘건달’이라 불리고 싶어하던 그들은 실전에서 살기 위한 수련이었기에 물론 나와 운동하는 목적이 많이 다르긴 했지만, 스파링과 대련이라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 있어, 몸이 부대끼고 엉켰던 탓에 아무래도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본래는 프로를 지망했던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그들이 그쪽 길로 빠지게 되긴 하였으나, 그저 게을리 몸만 불려 덩치가 된 양아치들과 다르게, 늘 단련하던 운동으로 자신을 수련하겠다고 도장에 나오는 태도만으로도 운동하던 그들의 순수함은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조직이 시키는 대로 상대를 담그고 살인으로 포승줄에 묶여 얌전한 모습으로 재판정에 앉아있던 이들을 미화하거나 비호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 글의 자로(子路)의 삶을 살펴보았던 것처럼, 최소한 그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비열하게 말을 바꾸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때그때 다른 스텐스를 취하는 법비출신 정치인들보다는 몇 백배 나은 모습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어리고 수양이 덜 되어, 욱하는 기질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의 그들의 분노를 다스려줄 방법을 알려줄 만한 스승을 만나지 못해 잘못된 길에 들어서기는 하였으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말을 바꾸고, 어제까지 동지라며 부둥켜안았던 형님 동생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예리한 칼을 폐부에 찔러 넣는 정치인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했다.

당신과는 전혀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당신이 평범한 중산층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싶겠지만, 정작 당신은 엄밀한 기준으로도 당신이 중산층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다 좋다. 백번 양보해서 당신이 중산층의 평범한 시민이라 치자.

학교에서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삥을 뜯으며 소위 일진놀이를 하며 지냈던 쓰레기 같은 녀석들의 눈앞에, 험악한 소매치기가 아가씨의 돈 가방을 날치기해서 앞에서 달려 나오고 있다면, 그들에게 칼을 들고 비키라며 엄포 놓는 그 소매치기를 잡아 세우겠는가?

평범한 서민들은 이 상황에서 그저 가던 길을 가며, 눈을 꾸욱 감고 불의를 못본 체 하나?

공자 문하의 제자들

똑같은 스승에게서 바른 가르침을 받고, 함께 배웠지만, 공부하는 과라며 자로(子路)를 깔보던 자고(子羔)는 저 혼자 살겠다고 줄행랑을 치며 사지에서 도망을 쳐 나오고 있었고, 자로(子路)는 도리어 그 사지로 달려들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그 상황에서 자로(子路)에 해당하는가? 자고(子羔)에 해당하는가?


우리는 삶에서,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작게는 오늘 점심을 뭘 먹을까부터, 크게는 내 안위와 내 목숨이 걸고 움직여야 할 때가 온단 말이다.


언제나 불의를 보면, 당연하게 꼬리를 내리고 자신의 일이 아닌 듯이 눈을 질끈 감는 당신이 정말로 중산층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노답이지 않겠는가?


갑자기 자신이 살던 건물에 불이 났는데, 자신과 상관도 없는 노약자들을 구하겠다고 연기를 마시고 불을 뚫어가며 사람을 구하다가 정작 자신은 건물에 갇혀 숨을 거둔 의인이, 평상시에 자신을 슈퍼 히어로라고 암시하며 살아서 그런 일을 벌였을까?


당신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평범한 중산층 시민들이 불의를 보고,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보편적인 상황이었다면, 과연, 법조비리를 버젓이 저지르는 저 법비들이, 그 사건마저도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당리당략을 구사하여 이용하려는 저 쓰레기 정치인들이, 그리도 쉽게 당신들이 낸 세금으로 배를 불려가며 저리 당당하게 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