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능력치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자신이다.

작은 성취에 안주하려는 이들에 대한 뜨끔한 본보기.

by 발검무적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자께서 칠조개에게 벼슬을 하게 권하시자,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漆雕開(칠조개)의 초상

스승인 공자가 덕행이 훌륭하다고 여겨 이제 벼슬길에 나갈 만하다고 판단하여 벼슬길을 권하였다. 그런데 제자 칠조개가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고 사양하였고, 공자가 그 대답에 기뻐하였다고 쓰였다. 자칫, 공자가 자신의 제자를 테스트하였다는 둥, 그 유혹 테스트에 넘어가지 않아 기뻐했다는 둥, 그런 식의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단, 새로이 등장한 공자의 제자 漆雕開(칠조개)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노나라 사람으로 성이 칠조(漆雕)이고, 이름은 계(啓)였다. 칠 씨가 아니니, 잘못 새겨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자는 자개(子開), 혹은 자약(子若)으로, 공자보다는 11세 아래였다고 전한다.


이 문장의 눈깔자는 ‘信’이라는 글자이다. 그저 ‘믿을 신’의 의미가 아닌, ‘참으로 그러함을 알아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는 것’을 이른다. 벼슬을 할 때도 되었다고 허여해주는 스승의 권장에, 제자 칠조개는 스스로 말하기를, “아직 자신할 수 없어, 사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칠조개의 동상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 공자의 감정표현을 쓸 때, 說(기쁠 열; 말씀 설로 새기는 단계는 초보단계이니 공부해둘 것) 자를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공자가 정말로 감탄하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형용사에 다름 아니다.


앞서 설명한 했던 것처럼, 슬쩍 제자를 테스트하려는 변태 선생님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기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실마리를 정자(明道)의 해설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칠조개(漆雕開)는 이미 大意를 보았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기뻐하신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은 도를 봄이 분명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이와 같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듯하면서도 모호한 설명이다. 도를 보는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고개를 갸웃하는 제자들이 제법 있었는지, 사 씨(謝良佐)가 조금 상세한 해설을 해주고 있어 도움이 된다.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칠조개(漆雕開)의 학문은 상고할 곳이 없다. 그러나 성인께서 그로 하여금 벼슬을 하게 하셨으니, 반드시 그의 재질이 벼슬할 만하였을 것이다. 마음의 은미함에 이르러서는 터럭 하나라도 스스로 얻은 바(스스로 만족한 바)가 없다면 그것을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데 무방(무해) 하니, 이것은 성인도 하시지 못하는 것인데, 칠조개가 스스로 그것을 안 것이다. 그 재질이 벼슬할 만한데도 그 그릇이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으니, 후일의 성취하는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夫子께서 이 때문에 기뻐하신 것이다.

아! 모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해졌다. 역시나 성인 공자는 대인이었다. 기뻐했던 이유가, 자신의 생각과 그릇을 제자가 뛰어넘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그대로 감탄한 것, 그것이었다. 칠조개가 단순히 겸손을 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가 놓고 있는 스스로의 기준 자체가 달랐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자의 위 해석에서 옛사람들은 도를 보는 것이 분명하였다고 한 것이다. 즉, 자신이 자신의 깜냥을 헤아리는 것이 정확하여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여길 때에는 결코 출사하지 않은 것이다. 뒤에 공부하게 될 선진편에서 공자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남을 망치는 짓을 함부로 하게 될까’ 스스로 두려워서인 것이다.


‘작은 성취’라고 한 언급한 것은, 쉽게 다른 사람을 허여(인정)해주지 않는 스승이, 이제는 벼슬길에 나갈 만하다고 허여한 것을 이른다. 하지만, 칠조개 본인이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자신의 능력이 남을 다스릴만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사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소심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과는 더더욱 차원이 다른 말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함부로 나댔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되나가나 나설 수 있다. 특히, 그렇게 공부가 안되고 수양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간으로서의 동물적 본성이 앞서는 터라, 이익을 위해서나 명성을 위해 나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게 되고 수양을 하게 되면, 무엇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가이드라인이 서 있음이 보이고, 그것을 넘어섰을 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무엇보다 자멸할 수 있다는 가장 큰 문제점을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위 주석에서 칠조개처럼 사양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다(무방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즉, 설사 스스로 부족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다스리겠다고 나대지 않으면 최소한 해를 끼치는 일은 벌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단계에 이르게 되면, 도대체 어느 정도에 올라야만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벼슬길에 나가도 되는지를 자기 스스로가 가장 잘, 먼저 파악하게 된다.


이 장에서 제자의 대답에 오히려 감탄하고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된 스승 공자가 기쁨을 얻게 된 것은, 제자 칠조개가, 자신이 평가한 출사(出仕; 벼슬길에 나서는 일)의 기준보다 훨씬 더 위에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직접 가르쳤던 스승이기에 제자에 대해 잘 파악했고, 그래서 출사(出仕)를 권했는데, 수양이 깊어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는 단계였던 칠조개는 스스로에 대한 엄정한 파악은 물론이고, 출사(出仕)할 수 있는 이에 대한 기준이 이미 훨씬 상향 조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스승 된 입장에서 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 그대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전범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저마다 출사의 변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치에 투신하는 이유 중에 어느 한 명도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투신하겠다고 언급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정치계에 데뷔하고 나서 그들이 배지를 달고 공고한 기득권이 된 5년 후, 10년 후 보여주는 작태는, 결국 자신의 부와 명예를 조금이라도 더 챙기겠다는 적나라한 모습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부를 하는 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를 가르친 스승도 아니고 그의 부모도 아니다. 바로 그 자신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학생은 자신이 충분히 공부를 했는지, 아닌지조차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봐야 하고, 시험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이 장에서 눈깔자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말이 있다. 벼슬을 표현하며 ‘남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 충분한 공부가 되었고 자격을 갖췄다는 것을 알기 위해, 스스로 생각했을 때, 털끝만큼의 부족함이라도 있으면 나서서는 안 된다고 칠조개는 설명하고 있다. 그 만의 설명이 아닌, 그가 오랜 공부와 수양을 통해 얻은 그 높은 경지의 한 장면인 것이다.

인성이 바닥인 자를 구별해내는 법은 아주 쉽다.

그는, 남에게는 한정 없이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살벌하다고 느낄 정도까지 가혹하며, 자기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 도무지 반성이라고는 하지 않는 자이다.


되나 가나 사람들을 잡던 칼잡이가 자신의 칼이 무딘지 어떠한지조차 알지 못한 채, 칼잡이 대장이 되더니 자신이 혹여 자신을 부리는 이들의 수장까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혹하여 자기 체중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정치판에 뛰어드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국가 기관들에서 썩은 곳을 찾아 바로잡는 일을 하라고 수장으로 맡겼더니 그 일을 구석구석 제대로 모두 살피지도 않고서 정작 자신이 속해있던 나랏일의 수장이 되겠다고 삼년상을 다 치르지도 않고서 애국가를 부르며 정치판에 뛰어든 전직 판사를 본다.


한때 한국의 케네디를 꿈꾸며 미국의 사립 경성제대에서 정치를 전공하고, 7막 7장으로 장안의 지가를 올린 라이언마저 배지 4년 달아보고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정치를 전공하여 공부조차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그의 허접한 과학고 출신의 후배가, 정작 지역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지역주민의 선택조차 받지 못해 놓고서는, 버젓이 늙고 썩어빠진 무리에 오래 기웃거리더니만 젊은 나이를 들이밀며 그들의 수장이라며 나대는 꼴을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한다.

학비만 비싼 사립대의 전형, 하버드

칼잡이 노릇하다가 조폭들에게 칼침 맞지 않으려고 고심끝에 택한 직업이 여의도 배지를 다는 일이라며 너스레를 떨던 촌놈 칼잡이가, 오랫동안 썩은 정치계에 몸 담았던 것도 경륜이랍시고 특정지역의 할배,할매를 꼬드겨 얻은 표심으로 나라의 수장이 되어보겠다고 비굴한 미소를 짓는 것을 우리는 본의 아니게 마주 대한다.


그들에게 칠조개의 기준을 내미는 것은 고사하고, 칠조개가 언급했던 남을 다스리는 일을 그들이 과연 해도 될만한 족속들인가에 대해 심각하면서도 심히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칠조개의 초상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은 알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그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지를.

그런데 방송 미디어에 나와 그들이 세치 혀를 놀리는 것을 보면, 그들은 그것조차 모르거나 알면서도 자기 최면을 강하게 매일 매시간 구사하여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강행군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정치인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같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인가?

아니. 내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이미 썩어빠진 자기 최면에, 그 양심에 송곳을 박아도 지가 죽는지도 모르는 저 하루살이들이 아니다.


당신들, 바로 그들에게 여의도 배지를 달아주고, 인지도라는 것을 안겨준 당신들을 일깨우고 바꾸고자 이렇게 글을 쓰고 매일 혈압 수치를 올려가며 갈라진 목소리로 일갈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장의 가르침으로부터, 그 지적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착각하는가?


뒤로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내뺄 생각부터 하는 당신이 가장 큰 문제라고 내가 매번 말하지 않던가!

당신이 얼마나 공부가 부족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뭐? 먹고 사느라 책 보고 공부하고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그럼 내 하나만 묻자.

당신이 그렇게 매일같이 바쁘게 뛰고 먹고사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더냐?

당신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품팔이 인생이라 하더라도, 그 인생이 단순히 위를 채워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라면, 굳이 지금처럼 그렇게 달달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내 질문에 답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당신이 당신의 하나뿐인 삶을 살면서 도대체 당신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당신의 삶을 고양해야 하며, 당신이 진정 당신의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 좋은 대학 가려고 하는 공부? 승진하려고 하는 시험공부?

그게 지금 내가 말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이 80회의 연재가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다시 시리즈의 첫 번째로 돌아가 정독하기를 조심스레 강권한다.

당신이 정말로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위에 언급한 사회를 오히려 혼란하게 만드는 것들로 인해 마음이 심란하다면, 그래서 잘못된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고 싶다면, 스스로 공부하고 그것을 보는 눈을 키우고, 행동할 수 있도록 자기 수양을 시작하라.

늦었지만, 늦었다고 하더라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라.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도 더할 나위 없이 나쁜 놈이지만, 알려고 시도해보지도 않고 알지 못하는 자는 그야말로 최악,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