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늘 남과 비교하며 우울해하는가?

돈과 명예 모두 가졌던 자공이 스승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

by 발검무적
子貢問曰: "賜也何如?" 子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자공이 “저(賜)는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너는 그릇이다.”하셨다. “어떤 그릇입니까?”하고 다시 묻자, “瑚·璉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앞서 스승 공자가 어린 자천(子賤)을 허여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눈치챈 자공이, 자신과 비교하여 자신에 대해서는 그승이 뭐라 평할지를 알고 싶어, 물어보는 대목이다.


그릇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미 자공은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앞서 위정편에서 ‘君子不器’라는 말을 통해 ‘器(그릇)’이 군자의 목표가 아님을, 그것이 군자가 되지 못한 이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공부한 바 있다. 조금 복습 겸 상기해보자면, 그릇은 한 가지에만 유용하게 쓰일 뿐이며, 두루 통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자는 덕이 구비되어 어디에든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에 군자는 그릇처럼 쓰임이 국한되지 않음을 말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잔뜩 기대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청하였더니 ‘그릇’이라니. 자공이 한숨이 나올 만도 하였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자공이 다시 묻는다, 어떤 그릇이냐고.


참으로 자공다운 질문공세였다. 어린 자천에 대한 평가에 쪼로로 달려가 자신과 비교하며 물은 것도 어리석다 할 판에, 그릇이라 일러주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무슨 그릇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스승이 제자의 마음을 읽고서 상처 받지 말라고 제사에서 귀하게 쓰이는 그릇인, 호와 련이라고 대답해준다.

이 사이다 없는 고구마 시식회 같은 장을 본 주자의 해설부터 살펴보자.

器(그릇)은 쓰임이 있는 완성된 재질이다. 夏나라에서는 瑚라 하고, 商나라에서는 璉이라 하였고, 周나라에서는 보궤(簠簋)라 하였으니, 모두 종묘에서 서직(黍稷)을 담는 그릇인데, 옥으로 장식하였으니, 그릇 중에 귀중하고 화려한 것이다. 자공(子貢)은 공자께서 자천(子賤)을 군자라 허여하심을 보았다. 이 때문에 ‘저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이와 같이 답하셨으니, 그렇다면 자공(子貢)은 비록 不器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또한 그릇의 귀한 것일 것이다.

주자도 행간을 읽고서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에 자공의 마음을 애써 감싸안는 해석으로 그가 비록 그릇으로 한정되는 한계를 보이긴 하였지만, 그릇 중에도 대체 불가능한 귀한 그릇으로 스승에게 평가되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이후의 문헌에서는 '瑚璉'이라는 의미가 '훌륭한 인재'라는 의미로 전성되어 사용된다.

자공의 초상

사실 자공은 사람들을 스스로 평가하고 자신을 포함하여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공자의 대표적인 72 제자 중에서도 행여 자공이 많이 부족한 인물이었는가 오해할까 싶어, 자공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강 이렇다.

그는, 정치·외교·통상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특히, 경제적 능력이 탁월하지 못했던 스승과 그 무리의 재정적 지원을 도맡았던 현실감각이 뛰어났던 인물이 바로 자공이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가 원수가 되어 전쟁을 하게 만든 것도 자공이었고, 위기의 노나라를 구해낸 것도 자공의 외교능력 덕분이었다.


큰 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뛰어난 현실감각을 지녔던 자공은 공자에게서 지나간 것을 일러주면 다가올 것을 읽어냈다는 인정을 받았던 공문십철의 한 사람이다.


다만, 논어에서 그가 스승 공자와 함께 언급되는 부분이나 곧이어 살펴보게 될 사람을 평가하는 부분에 있어 금전적인 것이나 표면적인 것에 초연했던 스승과는 대조적으로 실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자의 아쉬움을 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스승 공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안회와 비교되는 내용이 <논어>에 나오는 것으로 자공의 성향을 다시 한번 재확인할 수 있다.

자공이 늘 다른 이들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실리적인 분석으로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공자가, 넌지시 가르침을 줄 요량으로 그에게 일찍 죽은 안회와 비교를 해보라고 질문을 던진다.


까칠하고 날카로운 스승의 앞이니 그는 ‘안회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인물이었으나 저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밖에 모르는 수준입니다.’라고 대답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데서야 자공은 왜 스승이 자신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졌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비유를 통해 대답한 것이다. 이 부분은 몇 장 뒤에 바로 나오니, 그 때 왜 자공이 이 어려운 스승의 테스트를 통과하여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 설명하기로 하겠다.

자공이 계속해서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다른 이를 평가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어찌 보면 어느 수준 이상에 오른 자의 습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승 공자가 일깨움을 주기 위해 택한 가장 사랑하는 아픈 손가락 요절한 안회의 삶은 어떠했는가? 안회는 여러분이 많이 들어봤던 비교 따위는 자기 사전에 올리지도 않고서 그저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한 단어로 이름을 날리고 추앙받던 바로 그 인물이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출발한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겠으나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가진 것만을 볼 때는 없던 것이 생겼으니 행복하다. 그런데 비교의 대상이 생기게 되면 나보다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기운이 빠진다.


옥탑방을 탈출하고 지하방을 탈출해서 겨우 전세를 마련했을 때는 온 세상이 내 것이라도 된 것 같은데, 내 아이와 집주인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서 아이가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니냐는 말을 물어오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렇게 어렵게 조그만 임대 아파트를 내 집이라고 마련해서 내 집 마련을 했다고 행복해했는데, 앞 단지에 일반 분양했다는 아파트 쪽으로 난 길로 가려던 내 아이가 왜 일반분양 아파트 쪽으로 난 길은 갈 수 없는 거냐고 묻는 순간, 다시 좌절하게 된다.


공부 열심히 했다고 학비를 면제받아가며 유학을 갔더니, 학비 면제에 기숙사 지원해주고 생활비까지 받는 장학금을 받고 온 녀석과 같이 공부하려니 비참해지기 그지없다.


사람인데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신이 그리 열심히 사는 이유가, 행복해지겠다고 사는 것이지, 끝없이 비교하며 다람쥐 첵 바퀴 달리다가 심장파열로 죽으려고 사는 것, 아니지 않은가?


비교는 끝이 없다. 어찌 끝이 있겠는가? 자공이 어리석어서 생각이 짧아서 비교를 통해 사람을 분석하고 자신을 평가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자공 역시 머리로는 알지만, 사람인지라 그것을 비교하고 또 비교하며 때론 그 분개하는 마음으로 노력했을 것이고, 때론 아무것도 하기 싫어 기운 빠져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 공자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서 ‘소확행’따위를 입에 담으라는 말이 아니다.

어느 경지에 오르고 나면, 내가 최선을 다했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행복조차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당신이 노력해서 당신이 얻은 것을 당신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가장 인정받고 싶은 이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렇게 사는 삶이 뭐 그리 찬란하며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비교해서 나아지는 삶이고 수양이 공고해지는 것이었다면 공자께서 먼저 비교하고 또 비교하라 일러주시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그것이 공부하는 자가 추구하고 나아갈 바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굳이 지위만 높고 저급한 자들을 통해서가 아닌, 똑똑하고 현명했으며 능력을 갖췄던 제자 자공을 통해 이 장에서 일러주시고자 한 바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새겨보기를 바란다.

비교를 하며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삶이 과연 당신이 원하던 삶이었는지를 말이다.

무엇보다 왜 당신이 그렇게까지 비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