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자천을 두고 평하셨다. "군자답다,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을 취했겠는가?"
자천(子賤)이라는 인물을 칭찬하는 간단한(?) 내용이다. 이 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를 칭찬하고 있는 방식이다. 뜬금없이 그의 사람됨을 칭찬하면서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그런 것을 어디에서 배웠겠느냐고 말한다. 그를 칭찬하려는 것인지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던 노나라를 칭찬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통 할 수가 없는 말이다.
먼저 칭찬하고 있는 대상인, 子賤(자천)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자천(子賤)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였던 인물이다. 성은 복(宓)이고, 이름은 부제(不齊)이며, 子賤(자천)은 그의 자이다. 공자보다 49세이나 어린 나이였다.
말이 50살 차이이지, 제자가 막 대학에 입학한 아이라면, 스승이 70인 상황이다. 지금 같으면 이미 정년 퇴임해서 서로 마주칠 일도 없는 나이 차이이다. 그런데 그 어리고 어린 친구의 사람됨을 파악하고 공자는 그의 사람됨을 칭찬하되 그 방식으로 그가 덕을 배운 것은 모두 그의 주변에 군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달고 있다.
‘斯焉取斯’의 앞의 ‘斯’라는 글자는 이 사람(子賤)이고, 뒤의 斯는 이러한 덕이다. 자천은 아마도 어진 이를 존경하고 훌륭한 벗을 취하여 덕을 이룬 사람인 듯하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이미 그의 어짊을 찬탄하시고, 또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취하여 이러한 덕을 이루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로 인하여 노나라에 군자가 많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노나라에 군자가 많음을 나타내려 했다고? 대부들이 그리도 많이 참람되이 군다고 비난하던 그 노나라에? 의문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논어를 읽은 우리가 아는 천재 시인 소동파가 이 장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있어 우리의 의문을 씻어준다.
“사람의 선함을 칭찬할 적에 반드시 그 父兄과 師友를 근본 하여 말하는 것은 후덕함이 지극한 것이다.”
아! 이렇게 또 한 번 배우게 된다. 이 장의 초점은 칭찬의 대상인 자천(子賤)이 아니었다. 그를 그 까마득한 손자뻘의 새내기를 알아보고 칭찬하는 공자의 방식을 배우라는 의미의 장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죽기 직전에 한 말이 아닌, 한참 활동할 시기임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나이차를 보건대 10대였던 소년의 사람됨을 보고 평가한 말이다.
어른들이 바르게 행동하는 소년을 보고서 칭찬할 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아! 그 녀석, 참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구먼!”
“아! 그 녀석 누구에게 배웠는지 예의범절을 아주 제대로 배웠구먼!”
당신이 그간 숱하게 어른들의 말투로 들어 익숙했던 칭찬의 방식이, 바로 이 장의 공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10대의 소년이 뭘 얼마나 자기 수양을 해서 갈고닦아 인품이 훌륭하다고 칭찬하겠는가? 이는 그가 가진 품성을 올곧게 가르치고 키워준 부모와 스승의 공덕임을 칭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의한 것이다.
그렇게 그 소년이 20대를 지나 30대, 40대를 지나 50대의 학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가 갖추게 된 인격과 품성은 그가 혼자서 스스로 갈고닦은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가진 품성이 올바르면 올바른대로, 올바르지 못했다면 바르게 일러주고 가르쳐주신 부모님과 스승님이 있기 때문에 엇나가지 않고 바른 마음자세로 공부하고 수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의미이지만, 주자가 주변에 그렇게 보고 배울만한 것이 많았던 것이라고 해석한 것보다, 소동파가 칭찬의 방식에 정확하게 주목한 것은 그래서 동일한 이해인 듯하면서도 층위, 이른바 이해하는 자의 레벨을 보여준다.
한때, 개천에서 용 났다고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변혁을 부르짖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그 본질이 변질되고 결국은 지 배를 채우기 위한 추악한 모습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가정형편이 별로 좋지 않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없는, 미천한 가문 출신의 이들이 공부 실력 하나로 한국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 행시, 외시, 사시 등의 공인된 국가시험을 통해 고위 공직자나 판검사로 나서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교수로 올라가거나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가열찬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불가피하게 감옥도 다녀오고 정계에 투신하여 사회를 바꾸겠다고 여의도에 입성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진출하게 된 경우를 의미한다.
민자건(民子騫)의 노의순모(蘆衣順母) 고사를 묘사한 그림
집안이 한미하고, 돈이 없던 집안에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울만한 유일한 인재라면서 그렇게 떠받들어지며 위로 올라간 이들은 제법 적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막혔다고는 하지만, 그런 시대가 분명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아버지가 농사꾼이고 경비원이었고, 똥 치우는 사람이며, 쓰레기 청소원이었던 이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 그 부모에게 제대로 배워 자신이 그렇게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겸허히 아래를 향한 덕치를 보이는 모습을 나는 그다지 본 기억이 없다.
자기네들이 배곯았고, 그래서 배불리 먹고 싶었고, 없이 산다고 짓밟히는 모습이 싫어 그렇게 위로 올라간 자들이 결국 자신들에게 행패를 부린 그 모습을 다시 아랫사람들에게 하는 꼴만은 많이 보았던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 장의 가르침에 비추어보자면, 그들이 삐뚤어진 것은 그들이 공부를 좀 한다고, 집안에서 오냐오냐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렇게 돈과 명예를 얻은 것 같더라도 그 기본을 버리지 못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것은 결코 전통적인 부자가 아닌 졸부라서 받는 비난이 아니다.
언젠가 안암골의 대학 앞에 오래된 점포의 주인이 경제가 악화되면서 가게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방영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프로그램이 계속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 가게를 운영했던 사장이, 가게가 그렇게 오래도록 유지되는 동안, 소위 잘 나갈 때,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신이 번 돈의 일부를, 가난했던 학생들을 위한 용돈으로 지원해주고 싶어 학생들을 선정하여 주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게가 어려워져 그가 가게문을 닫고 쫓겨날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이 학생들을 통해 알려진 그즈음, 그에게 장학금의 형태로 용돈을 받아가며 대학을 다녔던 그들, 판검사가 되고 대기업의 과장급 이상이 되었던 그들에게 PD가 연락을 취하여 도움의 의사를 타진하는 모습이 TV영상을 탔다.
장학금의 형태로 당신이 용돈을 받았던 가게가 힘들어졌는데 이제는 여유로와진 당신들이 십시일반 이 사장이 쫓겨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생각이 없느냐고 에둘러 그들에게 완곡하게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용돈을 받은 사실이 언급되는 것만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바쁘니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도 아니고, 내가 그들을 직접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시골에서 온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냄새나는 녀석들이 많다고 막연히 알고 있던 그 학교출신의 녀석들은, 탐욕스런 법비가 되어 고마움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짐승이 되어 있었다.
아니, 짐승도 자신이 배고플 때 먹이를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은혜 갚은 까치의 이야기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漢나라 張壽殘碑句 중에서 ‘明德愼罰(덕을 밝혀 죄 주기를 신중히 하다.)’
저런 것들이, 큰돈 벌겠다고 돈 이리저리 쑤셔주는 정말 큰 도둑을 어찌 제대로 벌할 것이며, 불쌍한 이들과 나쁜 놈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중에 그것들이 행여 여의도로 발길을 돌려 한 표 더 얻겠다고 대로변에서 목이 쉬도록 ‘잘해보겠습니다!’를 외치다가 결국 배지 하나 달게 된 순간, 간절한 도움을 청하는 국민들이 붙잡는 손에 행여 더러운 것이라도 묻을 새라 자기 보좌관의 조인트를 까며 ‘저런 것들이 나에게까지 오지 못하게 해야지!’라며 욕지거리를 하는 꼴을, 우리가 꼭 봐야만 하겠는가?
사람이 짐승과 달리 사람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와 차이를 구분하는 행실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사람으로 대접해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도 아닌 것들에게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내 뜻을 대신하라는 표를 주고, 그것들이 떵떵거리고 고개를 쳐들고 살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