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仁한 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仁이란, 남이 판단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by 발검무적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맹무백(孟武伯)이 “자로(子路)는 仁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알지 못하겠다.”하고 대답하셨다. 다시 묻자 공자께서는 “由(子路)는 千乘의 나라에 그 軍政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求(冉有)는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求(冉有)는 천호(戶)의 큰 읍과 백승(卿大夫)의 집안에 宰가 되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赤은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赤은 (예복을 입고) 띠를 띠고서 조정에 서서 빈객을 맞아 대화를 나누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공자와 그 제자들

이 장은, 맹무백(孟武伯)이 공자에게 제자 세 사람에 대해, 과연 그들이 仁이라는 덕목을 갖췄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내용이다. 크게 어려울 것은....?

없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유의해서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제자들이 仁한 지의 여부를 묻는 맹무백(孟武伯)이, 그리 생각의 깊이를 갖춘 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공자의 대답만으로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동일한 세 번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공자는 첫 대답으로 “알지 못하겠다.”라고 짧고 명확하게 대답하여, 질문을 던진 맹무백(孟武伯)이 스스로 깨달으라며 힌트를 대놓고 주었다.


그런데 그는 깨닫기는커녕, ‘왜 대답을 안 해주지?’라는 표정으로 공자를 빤히 계속 쳐다본다. 그래서 공자의 대답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문을 던진 맹무백(孟武伯)에게 공자가 즉답하여 어떤 깨달음을 주려 하였는지 당신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는가?

보이지 않았다면, 계속되는 공자의 대답 속에 숨겨진 두 가지 힌트에 주목하자.


세 제자에 대해 仁한 지 여부를 물었는데, 그저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고, 상세히, 그것도 너무 자세한 부분까지 피력하여 라임까지 맞춰가며 그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설명해준다. 대강,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매우 구체적으로 분야와 어느 정도 수준까지인 지를 피력한 부분이 첫 번째 힌트이다.


두 번째 힌트는, 그렇게까지 상세히 대답해놓고, 마지막 문장을 라임을 딱딱 맞춰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仁한지는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부분이다.

자로(子路)에 대한 부분에 달린 주자의 해설을 보면, 조금 더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자로(子路)가 仁에 있어 하루나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이르는 자이니, 혹은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하여 그 유무를 기필할 수 없으므로, “알지 못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마지막에 라임 맞춰 반복되는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不知其仁)’ 바로 이 장의 눈깔자 되시겠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仁’이라는 덕성은 결국 스스로 달성해야 하는 것이자 자신만이 그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뿐, 그것을 갖추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


그러한 점에서 두 번째는, ‘仁’이라는 덕성을 갖추었는지 자체를 말로 규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가 조금 더 형이상학적으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다른 장에서 공자가 자신에 대한 부분을 언급함에도 섣불리 자신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언급에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설명을 첫 번째 대답인 ‘알지 못하겠다.’로 대신해주었으니 맹무백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풀어서 설명해준 것이 위 장의 구조를 이룬 것이다. 이해를 못해서 자로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알려주었는데도 다른 제자들에 대해 또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 같았다는 점에서 공자는 몇 번이고 얘기해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맹무백이 답답했을 것이고, 계속 자기가 묻는 대답에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맹무백은 그 나름대로 답답했을 것이다. 이것이 이해한 자와 이해하지 못한 자의 선문답 같은 블랙코미디를 연출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 효에 대해 물었던 그 맹무백이다.

맹무백(孟武伯)이 어떤 자였길래 이리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엄한 헛발질을 계속했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맹손씨 가문의 제10대 종주로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이자 맹경자(孟敬子)의 아버지였다. <춘추>에서는 ‘중손체(仲孫彘)’라고 부른다. 그가 대부가 되기 전, 맹유자(孟孺子) 설(泄)이라 불리던 시절, 그의 고약한 성정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는 맹 씨 가문의 식읍이었던 성읍(成邑)에서 말을 기르려고 시도했다. 그러자더니 성읍을 책임지고 있던 공 손숙(公孫宿)이 ‘맹의자 어르신은 성읍의 곤란한 입장을 생각하시어 말을 기르지는 않으셨습니다.’하고 간언하였다.


성읍은 비록 맹 씨 가문의 식읍이었지만 그 위치가 제나라에 가까워 거기서 말을 기른다는 것은, 제나라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되는 시빗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공손숙의 반대에 직면하자 맹의자는 괘씸하다며 성읍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아랫사람들이 잘못된 명령에 대해 주저했던 탓인지 성읍에 진입하지 못하였고 결국 되돌아가고 말았다. 나중에 성읍의 일을 맡은 사람이 심부름을 하러 맹씨가를 방문하였다가 맹유자에게 잡혀 채찍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 해 가을에 맹의자가 죽자 성읍의 사람들이 조문을 갔으나, 맹무백은 그들을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성읍의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거리에서 윗옷을 벗고 관도 쓰지 않고 곡을 하면서 명하는 대로 듣겠다고 간청하였지만, 결국 허락하지 않아 사람들이 두려워서 성읍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의 눈치만을 살펴야만 했다.


결국, 이듬해인 애공 15년에 성읍 사람들은 노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로 넘어가버린다.

맹무백이 성읍을 쳤으나 이기지도 못했다.


이 일화는 맹무백의 성정이 매우 거칠고 단순 무식하며 잔혹하기까지 했음을 매우 잘 보여준다. 이런 인물이니 공자에게 저리도 무식하게 자기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한 반복 질문을 쏟아내고 공자가 자기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투덜거렸던 것이다.

왜 공자가, 직접 보이지는 않았으나 맹무백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해석하는지, 그 근거를 살펴보자. 세 제자에 대한 그들만의 장점의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스승으로서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우리는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자로에 대한 평가에서 그저 국가의 재정이라 뭉뚱그려 말하지 않고, 군의 재정이라고 말한 것은 공자가 얼마나 디테일에 강한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군의 재정은 나라 전체의 재정과는 달리, 어디가 긴급하고 어디가 그렇지 않은지를 실시간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총괄업무에 해당한다.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직함에 대한 신뢰가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돈을 맡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거기에 전세의 판단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면, 어느 장군과는 인맥이 있고, 누구와는 친하기 때문에 등등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공정해야 한다는 모든 것을 시사한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특징을 판단해내는 능력은 물론, 그것을 추천하는 방식에까지 공자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염구의 초상

구(求)는 노나라 사람으로 성이 염(冉), 자가 자유(子有)이며 求(구)는 그의 이름.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세 아래였다. 이후에 공부하게 될 <논어> ‘옹야(雍也) 편’에도 나오지만, 상당히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스승 공자는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염구(冉求)의 특성에 맞는 교육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공자가 자로(子路)가 했던 ‘도(道)에 관해 배우면 즉시 실천해야 하느냐?’에 대한 가르침을 줄 때, 적극적이고 과감했던 자로에게 한 설명과 염구(冉求)해준 설명이 전혀 다른 것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자들의 성향을 일일이 파악하고 분석하고 있는 상태의 스승이 아니라면 결코 쉽게 구사할 수 없는 고급 교수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염구(冉求)의 그런 소심한 성격은 결국 염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자의 제자로서 파문당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 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공자는 염구의 능력을 인정하여 전체적인 나라의 살림과 정치를 도맡으면서 정치운영의 능력이 꼭 필요했던 재상의 재질이라고 판단했다. 그랬기 때문에 공자는 그를 노(魯) 나라의 실권자였던 계씨(季氏)에게 추천하게 된다.

염구의 초상

그러나 그렇게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된 후부터, 염구는 자신의 소극적인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권문세가인 계씨(季氏)의 입맛에 맞는 행동만 한다. 그는 권력을 전횡하여 부정을 일삼고 부패에 찌든 계씨(季氏) 편에 서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공자가 그렇게 강조했던 가르침을 저버리고 그저 눈치만 보며 자기 안위만을 도모하는 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뒤에 공부하게 될 ‘선진편’에서 끝내 스승 공자는 그런 염구(冉求)에 대해 '머리 숫자만 채우고 있는 신하'라고 평가절하하며 그를 '우리의 무리'가 아니라면서 자신의 문하(門下)에서 쫓아내 버렸다. 이렇게 해서, 염구(冉求)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파문(破門)을 당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물론 이 장을 언급하면서 미래를 본 것은 아니었으나, 공자의 일관된 가르침이 얼마나 정확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제자가 어떤 부분에 탁월한지는 내가 분명히 알고 추천해줄 수 있으나 그가 仁한지는 모르겠다고 했던 말의 부정적 사례를 염구는 몸소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언급되는 제자 적(赤)은 처음 언급되었으니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 그는 노나라 사람으로 성이 공서(公西), 자가 자화(子華)이며 赤(적)은 그의 이름이다.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42세 아래였다. 이 정도 나이차이면 당시 기준으로 손자뻘에 해당한다. <논어>에서 언급되는 그의 활동할 당시의 나이는 무려 20대이다.


서른도 되기 전에, 스승 공자가 그에 대해 적지 않게 언급했다는 것은, 이 장에서 그의 특징으로 대별되는 부분에서 매우 빼어난 자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관례를 두르고 조정에 서서 의례를 주관하였다는데, 특히 빈객과 주인의 의례에 능통하였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 그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번거로운 의례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탁월한 외교적 능력을 갖췄던 것으로 스승에게 허여 받은 인물이었다, 그것도 20대에 말이다.

선거 때마다 국민들에게 자신을 선택해달라며 외치는 자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스스로가 자격을 갖춘 자라고 말한다. 자신만이 그럴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렇게 그렇게 사익을 추구하고 불노 소득을 나눠가진 그들은 안다, 그가 어떤 자인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모든 국민들이 다 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그들이 지은 죄로 벌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도 정신 못 차리고 독립투사 행세를 하며 그들은 정치 보복이 어쩌고 강아지만이 알아들을 소리로 짖는다.


그들은 그들만이 자신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모든 국민들이 그들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썩어빠진 정치인만, 곪아 터진 기업가들만 그런 것 같은가?

자기 돈이 아니라며 탕비실의 간식을 사다 놓는 여직원이 간식비를 삥땅 치는 것도 모자라서 탕비실의 라면에서부터 초콜릿까지 박스째 집으로 날랐다는 이유로 업무상 횡령으로 처벌받는 일이 아주 드문 일이던가?


공무원이라고 비품 요청을 하면서 집에다가 스테이플러서부터 시작해서 하다못해 형광펜부터 포스트잇까지 챙겨서 아들이 학교에 학용품으로 가져갔는데, ‘기재부’라는 마크가 버젓이 찍혀 있다는 코미디가 아주 희귀한 일이던가?


지방 국립대에서 대학 근처 맛집에 가면, 요상한 폼으로 자기 돈으로는 절대 사 먹지 않을 비싼 메뉴들을 턱턱 시켜먹고서는 이미 프로젝트용 법인카드로 한꺼번에 결제하였으니 장부에 먹은 금액을 조금씩 까나가자며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는 교수라는 것들이 한두 명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훌륭한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는 그들은 알 지언정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하물며, 그들이 仁한지는 내가 정말로 알 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허나, 그들의 그 후안무치한 행동들과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좀먹고 있는지는 내 확실하게 알겠다.

아울러, 그들과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자란 그들의 자식들의 끝이 결코 좋지 않을 것임도 내 분명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