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어떤 제자였던가?

정말 포기한 자에게는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는다.

by 발검무적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가 없다. 내 재여(宰予)에 대하여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에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다시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宰予 때문에 이 버릇을 고치게 되었노라.”
재여의 초상

“너한테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랴?”

이것만큼 치욕스러운 꾸지람이 있을까? 주자는 이 살벌한 꾸짖음에 대해 ‘그 뜻과 기운이 흐리고 게을러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라고 상당히 완곡하게 풀어주었지만, 웬만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공자가 이 정도 표현을 사용하였다면, 이는 정말로 많이 화가 났거나 이 일을 통해 모든 제자들의 본보기로 삼겠다고 작정했을 경우가 아니고서는 보기 드문, 듣기 힘든 꾸짖음에 해당한다.

그렇게 심한 한 방이 있었음에도 그대로 끝내지 않고, 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까지 강조하고 대못을 박으며 확인사살을 한다. 그래서 연이은 핵폭탄이 있었을 리 없었을 거라며 후대의 학자 호씨(胡寅)는 이 두 가지 말씀을 같은 날 하시지는 않았을 거라고 주석까지 달았다. 주자는 이 확인사살에 대해 이렇게 해설을 붙이고 있다.

“재여(宰予)는 말은 잘하였으나 행실이 말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재여(宰予)의 일로 인하여 나의 이러한 잘못을 고쳤다고 말씀하셨으니, 거듭 깨우치신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스승이 불같이 화를 내셨는지에 대해 범씨(范祖禹)는 이렇게 해석한다.

“군자가 학문에 대하여 날로 부지런히 힘써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 그러면서도 행여 따라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는데 재여(宰予)는 낮잠을 잤으니, 스스로 포기함이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를 책망하신 것이다.”

범씨의 주석에서 방점은 ‘스스로 포기함’에 있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만큼은 공부하는 이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대세이고 상식이었다.

꾸짖음이 심해 같은 날 연이어 나온 꾸지람이 아니었을 거라고까지 주석을 달았던 호씨(胡寅)는 이 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설명한다.

“재여(宰予)는 의지로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고, 편안히 나태하였다. 이는 안락하려는 기운이 우세하고, 경계하는 뜻이 태만해진 것이다. 옛 성현은 일찍이 게으름과 편안히 지내는 것을 두렵게 여기고, 부지런히 힘쓰며 쉬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힘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는 바로 공자께서 재여(宰予)를 깊이 꾸짖으신 이유이다. ‘말을 듣고 다시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는 것은, 성인이 이 일을 기다린 뒤에 그렇게 되신 것도 아니며, 또한 이로 말미암아 배우는 자들을 모두 의심하신 것도 아니다. 다만 이를 인하여 교훈을 세워 제자들을 깨우쳐서 말을 삼가고 행실을 힘쓰게 하려고 하신 것일 뿐이다.”

가만히 이 정리된 글을 보면, 스승 공자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도 있을 듯하다.

요즘 말로 꼴통 행동을 하여 스승에게 엄청난 꾸지람을 듣는 듯 하지만, 앞서 잠시 공부하며 언급했던 대로, 재여(宰予)는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한 사람으로, 자공과 더불어 언변에 능한 인재로 손꼽혔던 인물이었다.


스승 공자보다 29살이 어렸던 그는, <논어>에 언급된 것만 보자면, 정말로 최악의 제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번 스승에게 혼이 나고 또 났다.

그런데, 20여 년간 대학에서 머리 큰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인성이 바닥인 녀석이나 위의 공자의 말처럼 도저히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녀석은, 혼내지 않게 된다. 하물며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사람을 읽어내는 것에 전문가였던 공자가 재여(宰予)를 그렇게 매번 꾸짖었다는 것은 그 의미를 되새겨 봄직하다.


실제로 재여(宰予)가 그렇게 꼴통이고 변변치 못한 낙오생이었다면, 다른 동문들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제나라에서 벼슬하여 임치(臨淄 : 지금의 산둥성 쯔보시(淄博市) 린쯔구(臨淄區))의 대부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관료로서의 능력이나 언변은 뛰어났다고 역사적 기록에서는 전하고 있다. 그리고 늘 꾸짖는 것 같아 보이지만, 스승 공자는 그렇게 꾸짖은 후에는 항상 다시 따뜻하게 대하며 재여를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 늘 달려 나오는 언변, 그의 언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초나라를 방문했을 때 초나라 국왕이 마차를 스승 공자에게 선물로 주려하자 재여가 그것을 만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희 스승의 도는, 이를 정치에 행하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고, 행할 수 없다면 적어도 스스로의 삶을 바르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오직 도를 행하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있지,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함과 마음을 현란하게 하는 것들에는 마음을 두시지 않기 때문에, 스승께서는 이 마차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공자의 위명이 전국시대를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지금처럼 바이럴 마케팅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재여(宰予)같은 사리에 맞는 언변을 가진 제자들이 각국의 제후들에게 여러 일화를 전하였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언변이 뛰어나다는 것은 <논어>에서 내내 공자가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이었다. 그 언변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단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늘 주의를 주었고, 누구보다 언변이 뛰어났던 재여(宰予)에게 더욱 심하게 꾸짖었던 것이다.


실제로 재여(宰予)는 그 언변 때문에 일찍부터 높은 벼슬을 하며 제나라에 스카우트되어 가지만, 앞서 자공(子貢)이 파견되어 평정시켰다는 제나라 전상(田常)과 난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지목되어, 그와 뜻을 같이 하지 않았던 원항(元亢)에 의해 살해된다. 가슴 아프게도 원항(元亢)도 역시 공자의 제자, 즉 동문이었다. 이후 그의 집안은 삼족(三族)이 죽임을 당하는 처벌까지 받게 된다.

스승 공자는 그의 허망한 죽음을 내내 아주 크게 아프게 여기며 그의 죽음마저도 제자들에게 본보기로 여기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 재앙의 뿌리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재여(宰予)에게 있었다.”

이 장에서, 낮잠 정도 잔 것을 가지고 뭘 그렇게 심하게 혼내는지 공자가 이해가 안 된다는 후대의 학자들이 있었다. 혹여 절대 자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잤기 때문에 그만한 욕을 먹었다던가 하는 주석들도 제법 눈에 띈다.


다산(정약용)은 심지어 대낮에 침실에 있었다는 것은 말로 옮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고까지 파고들어 말 그대로 의미심장한 해석을 하며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그토록 심하게 야단친 것이라고 추측하는 집요함을 보여준다.


그가 낮부터 침대에 누군가를 불러들여 뭘 했는지, 그저 낮잠을 잔 것뿐인지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낮잠을 잔 행위 때문에 혼났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파고드는 그들의 주석이 갖는 의미를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능력을 갖춘 제자가 자신의 능력이 양날의 검으로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면, 다른 평범한 제자들보다 더욱 노력을 더하여 그 양날의 검이 자신을 향하는 최악의 최후가 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공부하고 수양에 더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 말은 <명심보감>에도 실려 있다.

자신의 알량한 재주가 다른 주변 동문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겨 그러한 부분을 보완하고 수양을 더하지 않는 모습이 스승 공자에게는 불안하고 또 불안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런 재여의 모습을 보고 혹여 그 재주에도 따르지 못하는 이가 그것을 흉내 내거나 잘못 물들까 스승은 노심초사하였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굳이 재여를 그렇게 가까이 곁에 두면서 호된 회초리를 들 이유가 내가 보기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최악의 제자였고, 그를 창피했을 거라는 현대의 어리석은 이들의 해석이 더 이상 스승 공자의 마음 씀씀이의 깊은 의도를 훼손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족이 길어졌다.


당신이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전혀 다른 나라 얘기로 들렸는가?


아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피와 살을 나눠준 천혜의 제자를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떤 스승도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보다 더 가깝고 더 자주, 더 많이 가르칠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자식에게 어떤 교육을 행하고 있는가?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 했다.

요즘 아주 정치판이 진시황을 힘들게 했던 이 말을 몸소 보여주는 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허나, 이제까지의 사세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측했을 너무도 당연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오로지 공부만이 동아줄이라며 어렵게 공부하여 그 동아줄을 잡고, 위로 올라가 개천표 용이 된 부모가 결국 자기 안위만을 돌보며 자기 배 불리겠다고 자식에 대한 기본적인 가르침이나 인성교육은 고사하고, 그저 강남에 눌러앉아 돈으로 과외시키고 한다고 했는데, 돈 많은 처가 쪽의 엄마 머리를 타고났는지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어서 빌빌거려 어떻게 해서는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대물림하고 싶어 이리저리 궁리 끝에 ‘남들 다 그렇게 한다는 방식’을 답습하여 어떻게든 밀어 넣고 찔러 넣었는데, 하나하나 뒤탈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쓰나미로 밀려오기 시작한다.


제대로 대학도 못가 취직하고 야간대학을 나와 바득바득 올라가 자기 자식을 사시 과외까지 시켜 검사를 만들어놓았더니 바닥인 인성으로 잘 나가는 아버지를 들이대며 후안무치 사고를 치고서도 뒷감당을 하지 않는 자식이나, 한참 지가 돈도 벌지 않으면서 남들 눈에 띄고 싶어 외제차를 턱 하니 뽑아달라고 하여 타고 다니며 매번 술 마시고 운전하고 경찰과 쌈박질까지 하는 자식이나, 공부도 못하고 능력도 안되어서 이리저리 거짓 스펙 만들어 어디든 집어넣어 올려 넣었더니 그 안에서 도저히 살아남지도 못하고 빌빌대는 자식이나, 돈에 돈을 처발라서 사법고시까지 과외를 시켜 판사를 만들어놓았더니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이 좋아 보여 거기까지 발을 뻗어 패가망신의 본보기를 보이고 아직도 권력의 맛을 잊지 못하고 그 근처를 기웃대는 여식이나, 이도 저도 하지 못해, 아비가 받을 뒷돈을 챙길 창구로 쓰려고 했더니 여기저기 좌충우돌 나대어서 그 지저분한 거래를 까발리는 크리거가 되는 자식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복마전(伏魔殿)의 뚜껑을 봉하고 있던 부적 종이를 뜯은 자는, 결국 그들의 자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허접하게 부적 종이를 붙여둔 그들이고 그들을 제대로 가르쳐 그런 일이 없도록 했어야 할 그들의 부모였다.


그 모든 교육을 처음부터 가르치는 이들이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유치원 선생이? 초중고 교사가?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마라. 당신의 말대로라면 그 선생들은 자기 자식은 제대로 가르쳤겠구나?

가르치는 일을 ‘천직’이 아니라, ‘밥벌이’라 여기는 그들이 남의 자식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일깨우지 못하면서 자기 자식은 제대로 올바르게 키워냈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지금?


정치인들 욕하고, 그 한심한 자식들을 욕할 필요도 자격도 당신에게는 없다.

당신의 자식을 돌아보고,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어떻게 키워주셨는가를 생각해보라.


부족했다면,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보완하겠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모든 것은 당신이 메울 수 있다.


그저 당신이 그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 들고, 당신이 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라. 그리고 늘 강조하지만, 알게 되면 제발 실행해 옮겨라.


이 가르침은 거대한 담론으로 사회를 바로잡자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를 구하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신을 시작으로 당신의 자식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올바르게 키워내라는 말이다.


그리하면, 당신은 사회를 바로 세우고 전 세계를 구하는 히어로가 자연스럽게 되어 있을 것이다.

따로 고액의 과외비를 받은 것도 아니었던 공자가 재여(宰予)에게 왜 그렇게까지 심하게 혼쭐을 냈었던 것인지 그 배경이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