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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밀 May 21. 2024

For my 'musical' bucket list

뮤지컬 페스티벌 원더랜드 피크닉 후기

내게는 음악 공연과 관련해 너무 심각하지는 않은 버킷 리스트가 있다. 목록의 몇 가지는 기쁨과 함께 지워졌고 모 가수에게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면 항목은 더 늘어났다. 이 리스트의 항목은 주로 이렇게 끝난다. ‘가수 ooo 노래 라이브로 들어보기’. 


도판으로만 보던 명화의 실물이 궁금해지는 것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듣다보면 역시 그 목소리와 퍼포먼스의 아우라를 ‘겪어보고’ 싶어진다. 발터 벤야민이 복사가 가능한 시각예술 작품에서 원본만의 아우라 유무에 대해 논했다면, 라이브로 듣는 음악의 아우라는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율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 뛰어난 음악은 음원으로 들었을 때도 몸에 소름이 돋지만, 현장에서 들으면 그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밴드 이날치 소리꾼들이 '신의 고향'을 불렀을 때 다리까지 퍼지던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이후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공연을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아티스트의 공연 일정과 나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다 맞아떨어지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돈이 없고 지갑 사정이 괜찮을 것 같으면 시간이 부족하다. 공연장이 멀면 어려움은 더 커진다. 좋아하는 가수 한 명 한 명씩 단독 콘서트를 가는 건 우선 시간적, 공간적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내 지갑도 아주 홀쭉해지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큰 콘셉트 아래 여러 명의 가수나 밴드의 무대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뮤직 페스티벌은 라이브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축제이다. 관심 있는 장르의 음악을 일목요연하게 즐길 수 있고, 라인업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보고 페스티벌에 왔다가 또 다른 좋은 가수를 발견할 수 있다. 여름을 앞둔 5월, 야외에서 장시간 공연을 감상하기에 좋은 달이다. 이번에 관람한 뮤직 페스티벌인 원더랜드 피크닉은 한강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5월 11일과 12일, 주말 양일 간 열렸다.



원더랜드 피크닉은 뮤직 페스티벌 중에서도 뮤지컬 배우들로 라인업을 세운 뮤지컬 페스티벌이다. 전곡 뮤지컬 넘버인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국내외 뮤지컬들의 유명 넘버들이 세트리스트를 채웠다. 솔직히 나는 뮤지컬 관람이 낯설 정도는 아니지만, 뮤지컬 작품 내용과 주요 넘버, 어느 역에 어떤 뮤지컬 배우가 캐스팅되었는지를 꿰고 있는 정도로 매니아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 관련 버킷리스트에 ‘언젠가 옥주현이 부르는 뮤지컬 레베카 넘버 듣기’가 몇 해 동안 있었다. 이번 라인업에 옥주현, 이지혜 레베카 페어가 있는 걸 발견했고, 나는 열심히 동행을 구했다. 혼자 다니기를 잘하는 편이지만 야외에서 몇 시간 동안 혼자 있는 건 아무래도 외로울 것 같았다. 다행히 친구 한 명이 내 제안을 수락해주었다. 


페스티벌 가기 전 날, 날씨 걱정으로 다소 심란해졌지만 원더랜드 피크닉 공식 인스타 계정 포스트와 토요일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 읽으며 준비물을 열심히 챙겼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햇빛이 더없이 쨍쨍해 오후에는 잔디마당도 적당히 말라 있었다. 친구도 나도 노들섬은 처음이었고, 친구는 페스티벌 자체가 처음이어서 오늘 하루가 새로운 도전이라고 했다. 노들섬 자체에 몇 개의 식당이나 전시실, 화장실 등의 설비가 있어 난지공원에서의 공연 관람보다 좀 더 편리한 부분이 있었다. 다만 편의점은 근처 지하철역 내부에 있는 것이 노들섬에서 제일 가까운 점포다. 물론 페스티벌인 만큼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FnB존이 따로 있었다. 이 외에도 관객이 원한다면 원더랜드 피크닉 한정 포토프레임이나 보물찾기 같은 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다. 야외 공연인 만큼 호응과 출입도 자유로웠다. 입장 팔찌를 잘 갖고 있다면 재입장이 가능했기에 동행과 저녁을 외부 식당에서 먹을까 하는 계획도 세웠지만 무대가 너무 재밌어서 이동하지 않았다.


원더랜드 피크닉 측은 뮤지컬 배우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 두 명 혹은 세 명씩으로 묶어 1일 4부의 무대를 구성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무대는 4, 5부였다. 팬텀싱어 출연 경력과 팀 활동 경력이 있는 고훈정, 배두훈, 백형훈의 4부 무대는 페스티벌의 활기를 한층 부각했다. 감미로운 사랑 노래로 세트리스트를 시작한 배두훈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 스타>의 넘버 ‘겟세마네’를 부르며 장중한 분위기 역시 수준 높게 소화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겟세마네’ 직후 백형훈 배우가 무대에 올라와 같은 뮤지컬에서 가장 대중적인 넘버일 ‘수퍼스타’를 춤과 함께 열창했다. 그는 노래 시작 전에 관객들을 일어나게 하여 같이 춤을 추게 했다. 친구와 함께 신나게 리듬을 타며 넘버를 즐겼다. 알고 보니 이 넘버의 화자가 유다여서 음악을 실컷 즐긴 후에는 살짝 당황하기도 했으나 명곡은 언제 들어도 명곡이었다. 개인적으로 4부에서 느낀 큰 수확은 고훈정 배우를 알게 된 것이었다. 고훈정 배우의 목소리나 노래 스타일이 필자의 취향에 잘 맞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 배우의 뮤지컬 본 공연을 보면 좋겠다. 이렇게 추구 목록의 항목은 또 늘어간다.


뮤지컬 넘버 외에도 배우들은 페스티벌의 흥을 돋우어 줄 락 음악이나 영화 주제곡을 부르기도 했다. 배두훈, 백형훈 배우가 함께 부른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원래도 그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의 최애 무대가 되었다. 배두훈 배우가 부른 애덤 리바인의 ‘Lost Stars’는 선곡이 가히 사기였다. 한강 페스티벌에서 이 노래라니! 축제 분위기에 취하기에 너무나 맞춤한 청춘 노래이니 말이다. 


4, 5부의 배우들이 종종 한 말이 있었는데 그건 ‘이때쯤이면 저녁/밤일 거라 이 노래를 준비해 왔는데 이렇게 밝을 줄 몰랐다’는 당혹과 아쉬움의 말이었다. 야외 공연인 만큼 저녁 노을이나 어둑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십분 즐기기 위해 슬프거나 장중한 분위기의 곡을 세트리스트에 넣어 왔으나 ‘비 온 뒤 맑음’의 여파는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실제로 4부까지만 해도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전광판에 나오는 배우들의 표정을 감상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캡 모자를 쓰고 있다가 그걸 벗어들고 얼굴을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거진 다 가리다시피했고 모자를 가져오지 않은 친구는 공연장에서 배부한 팜플렛으로 한 방향에서 들이치는 햇빛을 가렸다. 해가 지기 시작한 마지막 5부에 들어서야 배우들의 클로즈업된 표정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새삼 이들이 가수일뿐만 아니라 배우라는 사실을 재인지했다.

 


5부는 이 페스티벌에 오게 한 내 버킷 리스트의 내용과 맞닿아 있었다. 옥주현 배우의 <레베카> 넘버 라이브로 감상하기 말이다. 5부 옥주현 배우의 첫 무대는 이쯤되면 달이 떴겠지 하는 예상으로 옥주현 배우가 준비한 ‘매직 문’이었다. 이 곡을 선정한 이유를 말하며 아쉬워하는 배우에게 관객 한 명이 밝은 하늘에서 손톱만한 달을 찾아 “달 떴어요!”라고 알려주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5부 옥주현과 이지혜 배우는 넘버 선정의 이유와 해당 넘버가 극중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나 잘 설명해 주어 감상의 깊이를 더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었던 브렌타노의 넘버인 ‘매직 문’ 설명을 들으며 영화 <불멸의 연인>의 끝 장면이 떠올라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의 의미를 깨닫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더 이어갈 수는 없는 사랑과 반대로 진행 중이어서 날마다 새로운 사랑의 설렘을 담은 <마리 앙투아네트> 넘버 ‘최고의 여자’는 개인적으로 옥주현의 음색과 제일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색하면 맑고 산뜻한 느낌의 이지혜 배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프랭크 와일드혼의 ‘나우’라는 곡을 이 배우의 목소리로 처음 들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지혜 배우가 부른, <안나 카레니나> 극중 패티라는 유명 가수가 부르는 노래이자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넘버에서는 사랑이 파멸 같았을 안나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이 공연도 보러가고 싶어졌다. ‘내 사랑 그대여. 죽음 같은 사랑’. 이 가사가 어찌나 기억에 남던지.


대망의 레베카 페어 무대는 두 배역의 대결 같이 팽팽한 노래가 가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댄버스 부인일 때의 옥주현은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 <레드북>의 안나와 정반대인 사람 같았다. 한 배우의 여러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페스티벌의 커다란 묘미다. 


언제나 그렇듯, 추구하던 한 가지를 채우러 갔다가 더 다채로운 작품이나 작가, 퍼포머를 알게 되어 몇 가지 ‘다음에 찾아볼 것’을 갖고 오게 되는 것이 문화 생활이다. 그 경험을 뮤지컬 배우들로 채운 페스티벌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이야기, 캐릭터, 곡조가 합쳐진 축제는 국내외에 재능 넘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재차 떠올리게 했다. 봄 소풍과 공연이 합쳐진 야외 페스티벌에서 자유롭게 호응하기, 노들섬의 유유자적한 분위기가 벌써 그립다. 아마 내년에도 나는 한강 페스티벌 소식을 기다리지 않을까? 고대하던 경험의 항목을 실현하기 위해 축제에 들어갔다가 더 두둑해진 리스트를 들고 나오기 위해. 앞으로도 보고 싶은 좋은 공연, 좋은 작품이 넘치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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