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소장하기: 두 세상의 접점 알아가기
두 세상의 접점을 찾으면 그것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전례 없이 자유로운 창작과 감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현대미술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감상자들이 있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는 작품과 감상자의 만남을 보다 매끄럽게 만들고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의 아름다움을 더 만끽할 수 있도록 돕는다. <큐레이터 송한나의 그림 사는 이야기> 저자인 송한나는 현대미술을 뒤흔든 열 명의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작업관과 작품 세계,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방식 등을 전한다.
큐레이터 송한나가 소개하는 10명의 현대 작가는 조지 몰튼-클락, 아담 핸들러, 카우스, 뱅크시, 비플, 페르난도 보테로, 이완, 강준영, 허보리, 조광훈이다.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뱅크시, 페르난도 보테로와 같이 이미 대중에게 낯익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좀 더 현대 미술에 관심이 있어야 알 법한 작가들도 있다.
책은 얼핏 보면 거친 낙서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미술 시장의 블루칩 아티스트’ 조지 몰튼-클락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그의 작품은 첫눈에는 익숙한 만화 캐릭터가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로 낯선 형상을 보여준다. 저자 송한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렌티큘러 카드 같은’ 매력이 있다. 캔버스 위에 즉각적으로 그려낸 그림이지만,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익숙하고 낯선 형태가 여러 차례 조합되고 분열되는 과정을 거쳤기에 렌티큘러 같은 화면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저자 송한나는 조지 몰튼-클락의 그림이 자신에게는 직업적인 감식안이 아니라 순전히 감상자로서 눈에 밟히는 그림, 이른바 업계 용어로 ‘밟는 그림’이라고 밝힌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시간이 흘렀을 때, 이제 자신의 기호와 흥미가 관성적인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저자는 조지 몰튼-클락의 그림 속 의도적인 모호함과 어지러운 매력에서 그림이 좋아 낙서를 하던 자신의 유년을 떠올리고 고민을 마무리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처럼 10인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소개할 때 송한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곁들인다. 그의 개인사는 말 그대로 사적인 일이지만,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미루어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 현대인으로서의 공감대를 기반으로 독자는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은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개인사는 독자가 공간적, 심리적으로 멀리 있는 작가들의 작품에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매개체로 기능하는 셈이다.
저자 본인이 연인과 헤어진 후 이별 후 감정들을 다룬 작품들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허보리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말 그대로 상처 입은 하트를 병실 침대에 눕혀 놓아 다소 익살스러운 그 작품을 보았을 때, 저자는 왠지 상처 입은 마음이 매듭지어지는 효과를 느꼈다고.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시각이나 촉각, 청각적 자극이 때로는 오래 앓은 마음에 난 구멍을 메워주기도 한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자신과 결이 맞는 심상을 만났을 때 자기 이름을 찾고 차분해지는 효과가 아닐까 한다.
허보리 작가는 ‘말 그대로’를 창작 코드로 삼아 시각적인 언어유희를 만들어내고 사고의 전환을 꾀한다. <돌반지>의 경우 제아무리 비싼 귀금속도 결국은 돌임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알반지>의 경우 반지 알 부분에 커다란 메추리알을 올려 보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고된 업무 후 소파에 늘어진 배우자를 축 늘어진 배추로 표현한 작품의 작업기를 보면 그 피로한 늘어짐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채소를 찾아 여러 시도를 했다고 하니 마냥 단순하게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닌 것도 알 수 있다.
5,000일 동안 쉬지 않고 디지털 아트 작업을 한 비플과 모두가 알지만 그 신원은 비밀스러운 작가 뱅크시를 소개하며 저자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특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바로 nft다. 비플은 물리적 실물이 없는 자신의 디지털 아트를 nft로 발행했다. 대체불가능한 토큰인 nft는 고유한 인식 코드를 가지므로 위조가 불가능하고 블록체인 기술에 힘입어 소장 기록이 투명하게 나와있다.
기성 미술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투철한 뱅크시는 미술작품의 높은 가격이라는 허상을 고발하는 작업 또한 계속해 왔다. 자신의 원화를 관광지에 있는 유명작품 모작 가판대에 몰래 걸어두고 저가로 판매를 한 후 사실을 밝히는 저항적인 작업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자기 신원을 비밀에 부치는 점, 뱅크시가 사용하는 스탠실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도구인 점, 상업적 이용만 아니면 얼마든지 작품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뱅크시 에이전시의 방침 등 여러 요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소장 시 진위 여부를 신중히 따져야 한다. 여기서 nft가 빛을 발하는데, 뱅크시의 작품 중 nft로 발행된 것은 진위 여부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림 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다가도 책에 나온 작가들 작품의 판매가, 재판매가 정보를 알고 나면 작품 소장에 대한 마음은 저절로 사라지곤 했다. 10명의 작가들 중 몇몇은 블루칩 아티스트라고는 하지만, 그들 작품의 가격은 웬만한 독자들에게 전혀 푸르른 가능성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도 nft가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nft로 분할 구매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실제로 조각내지 않고도 분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처럼 디지털 아트 특유의 가용성은 미술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다만 미술품 소장에 대한 신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nft 소장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또한 nft 플랫폼 별로 수수료나 가스비가 상이하다 하니 소장 시 플랫폼 별 방침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의 효용은 nft 발행 및 구매 같은 새로운 소장 트렌드 소식 외에도, 미술품 소장자가 알아둬야 할 기본적인 미술 시장 지식들을 습득하는 데에 있다. 미술 작품에서 유니크 워크와 에디션의 차이는 무엇인지, 작품의 특성에 따라 어떤 액자를 맞춰야 하는지, 미술품 구입 시 프로브넌스(소장 기록)를 철저히 요구해야 하는 이유 등을 <그림 사는 이야기>는 친절히 알려준다.
책을 읽으며 조지 몰튼 클락과 뱅크시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뱅크시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전시가 끝나기 전에 얼른 가봐야겠다. 자신의 유년 속 요소와 뮤즈인 아내를 소녀로 상징화하여 소녀의 감성을 그리는 아담 핸들러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러운 소녀의 모습과 감성을 지향하는 뉴진스와 콜라보를 하면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을 통해 이완 작가의 <고유시>, 황학동의 폐품을 모두 같은 무게로 분할해 집단에 어울리는 개인이 되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작업 등을 보고 이완 작가의 작업 전체에 관심이 생겼다.
큐레이터 본인의 개인사를 적재적소에 넣는 이 책의 서술 방식을 보며 나에게는 이미 내 경험과 감정 등으로 만들어진 뜰채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환경, 나의 경험, 감정, 가치관, 그리고 필요. 다른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술 작품을 사는 일은 작가의 세상을 자기 세상에 들이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트 테크를 하는 목적이나 자금 사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멋진 수집과 소장, 관리를 위해서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품의 특성, 이 작업의 의미와 장래성 등을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은 공통적인 과제일 테다. 이럴 때 읽기 좋은 책으로 <큐레이터 송한나의 그림 사는 이야기>를 추천한다. 또한, 작가의 세상뿐만 아니라 평소 자신의 세상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본다. 결국 미술품 소장이란 내 세상에 다른 세상의 일부를 들이는 일이니 내 세상의 생김도 중요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