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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밀 Aug 30. 2024

친구집 제리와의 하루

우리집은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내가 키워 본 동물은 작은 어항 속 더 작은 열대어 두 마리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당시 아동이었던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우리 엄마가 키운 셈이었다. 지금도 엄마가 물고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몰라서 힘겨워하며 욕실에서 어항 물갈이를 하던 일이 기억난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동물을 좋아하지 않고 불편해하는 편인데 그때 열대어 두 마리를 집에 들이는 걸 어떻게 허락받았는지 미스터리다. 아마 작고 집을 돌아다닐 일 없는 수중 생물이어서 가능했겠지 싶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 자기 집 강아지나 고양이, 토끼나 햄스터 얘기를 할 때 귀여운 동물이 집에 있는 삶이 어떨지 종종 궁금해했다. 그러나 집에서 털 날리는 동물을 키우길 원하지 않는 부모님의 성향과 동물은 아무래도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가치관 때문에 우리집에 반려동물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동물은 마냥 귀엽기만 한 대상이 아니고 자기 희로애락이 있는 생명체이며 그 생명을 책임지는 데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를 알게 되니 동물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여기에 인간보다 수명의 절대치가 짧은 동물을 가족으로 맞으면 무조건 이별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 점도 미리 걱정이 되었다.


친구 Y는 늘 카톡 프사를 똑같은 견종의 강아지 사진으로 해두지만 새 강아지를 키울 엄두는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일이 바빠 시간이 없기도 하고, 어릴 때 키웠던 강아지를 떠나보냈을 때 너무 많이 슬펐다고. 친구는 그때 워낙 많이 울어서 이후로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잘 조절하게 되었다고 했다. 마음이 아파도 바로 표출하지 않게 됐다는 뜻일 테다. 그 점이 긍정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반려동물을 삶에 들이는 일이란 자신의 특질 일부가 바뀔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존재를 만드는 것이란 점이 참 무겁게 와닿았다.


게다가 동물을 키우기 힘든 실질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네 발로 걷고 털이 풍성한 동물들을 키워본 적이 없어 그런지 이들이 내 근처로 다가오면 무섭다. 얘네들이 호기심으로 탐색하러 다가오는 건지 날 싫어해서 위협하려 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덩치야 내가 배는 크다. 애초에 비교가 안 되지. 그러나 이 친구들에게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있지 않은가. 가까이 잘 있다가도 갑자기 물거나 할퀴면 어떡하지 지레 겁을 먹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동물들이 공격 의사가 하나 없어 보일 때조차 약간의 두려움은 있다. 가령 고양이를 키우는 카페에 갔더니 그곳 고양이가 내 브런치 메뉴에 관심을 보이며 자꾸 그릇에 머리를 저돌적으로 들이밀 때 이 작은 머리를 어느 정도 힘으로 막아도 되는지 감이 안 오는 것이다. 으악, 너무 작아. 그리고 부드러운 털과 피부 아래로 존재하는 골격의 느낌이 너무 생경해 손을 계속 대고 있기가 어색했다. 반면 강아지를 키운 적 있는 친구는 능숙하게 고양이 머리를 밀며 움직임을 제지했다. 그저 지긋-이. 저런 여유나 경험치가 내게는 없다.



반려동물의 대표 주자로 개와 고양이가 있다면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를 더 무서워하는 편이다. 고양이는 웬만해선 사람 근처로 먼저 오지 않는데 강아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낯선 사람에게도 헥헥 웃으며 다가오니까. 개를 무서워하는 데에는 한층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어릴 적 동네 개한테 물린 적이 있는 엄마는 지금도 개를 무서워한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니 나도 개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여기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각자 집에 놀러 갈 만큼 친했던 친구 중에 개를 키우는 경우가 없어서 잠깐씩 개를 접하며 익숙해질 기회도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놀러 간 친구 H의 집에 하얀 말티즈가 떡하니 있었을 때 나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하얀 말티즈 제리는 친구의 본가에서 키우는 강아지로, 이따금 친구가 자기 혼자 사는 집에 데려오곤 한다. 친구야, 난 그게 오늘일지는 몰랐는데. 제리는 낯선 사람인 나를 보자마자 내 근처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짖어댔다. 예전에 친구의 본가에 잠시 들렀을 때 제리를 본 적이 있지만 제리에게 나는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자기 주인의 영역을 침범한 낯선 침입자였다. 제리가 자꾸 위협하듯 내 주변으로 뛰어와 으르렁거리는데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다가 제리가 앉은 사람에게는 덜 짖던 것이 떠올라 얼른 바닥에 앉았다. 내가 공격의사가 없어 보였는지, 아니면 체구가 작아진 것처럼 보여 덜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는지 제리의 기세가 조금 가라앉았다. 이 강아지는 이제 내 주변을 맴돌며 탐색하듯 내 냄새를 맡고 있었다. “너 좋아하네.” 내 주변에 앉는 제리를 보고 집주인 H가 말했다.


제리의 탐색은 소파에 옮겨 앉은 뒤로도 이어졌다. 아니, 이제는 탐색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애정과 관심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H와 나의 동창이자 그날 또 다른 방문자였던 J의 무릎을 거쳐 온 제리는 앞발로 내 가슴팍을 짚은 채로 작은 얼굴을 계속 내게 들이밀었다.


“축축해!”


얼굴에 작고 까만 코가 닿기는 처음이었다. 강아지 코가 촉촉하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이렇게 차가운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어쩌다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이면 그나마 차가운 귓불을 잡지 않나. 그런데 그 미지근한 체온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다른 데는 다 따뜻한데 코는 신기하게 차갑네. 이내 그런 생각은 제리의 뽀뽀 공격에 저 멀리로 사라졌다. 이미 J에게 뽀뽀하고 온 말티즈 제리는 이제 나와 뽀뽀를 하려고 했다. 아니 이 외간 강아지가 갑자기…? 너 방금까지 나 보고 엄청 짖었잖아… 환대는 고마운데 내가 아직 외간 동물들과 뽀뽀를 할 마음은 들지 않아 슬쩍슬쩍 피했다.


강아지의 태도 변화에 놀라기를 한 번, 화장실 잠깐 다녀왔더니 다시 낯선 사람으로 인식해 날 보고 짖는 것에 또 놀라기를 두 번. 마음을 여닫는 것이 워낙에 빠르구나. 그래도 낯선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전환되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무 무서워하면 제리를 본가에 데려다 놓으려고 했다는 H는 나 역시 제리에게 빨리 익숙해지는 것에 다행이라고 했다. 제리가 날 안 무는 걸 알았으니 나도 무섬증이 한결 사라졌다.


바라는 게 있는 제리


강아지와 한 집에서 보내는 하루는 특별했다. 모르던 걸 많이 여럿 알게 됐다. 내가 제리 사진을 찍으려 하면 친구가 어느새 내 뒤에 다가와 내 핸드폰 카메라 근처에 제리 간식을 들고 흔들어댔다. 그러면 눈앞에 바라는 게 생긴 제리가 두 눈을 반짝이고 입을 웃듯이 벌리고 앙증맞은 분홍 혀를 내보였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표정이 제법 앙큼하다. 강아지들이 웃는 사진 중 많은 수가 이렇게 찍혔겠구나. 이거 약간 아기들 사진 찍는 것 같기도 하고. 제리를 두고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근엄한 인상의 H네 아버지가 요 작은 제리 앞에서는 애교를 부리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 의외시다…”

“아빠 장난 아니라니까? 제리 관심 받으려고 그러셔.”


제리가 강아지치고는 고양이 같다는 J의 말에 J가 키우는 고양이 나빙이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우리 옆 아니면 제 주인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제리와 달리 고양이는 항상 주인이랑 1미터쯤 떨어져 있다고.


“그럼 고양이가 주인이랑 교감하는 건 어떻게 알아봐?”

“눈을 마주치면 천천히 눈을 깜빡여주는데 그게 호감의 표시야.”


표현은 저마다 다르지만 제스처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점이 아주 사랑스럽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나빙이와의 눈맞춤에 당첨되셨습니다!

이외에도 제리는 나와 J가 자리를 이동하면 졸졸 따라오며 우리가 어디에 가는지를 보고, H가 잠깐 집 앞 편의점에라도 가면 현관문 쪽을 바라보며 H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원래 H의 본가에 사는 제리는 H의 어머니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H가 일부러 제리에게 “엄마 어딨어?”하고 물으면 또 계속 현관문을 쳐다봤다. 이쯤에 이르러서는 뭔가 애틋하기까지 했다. 본가 문과 다른 문인 걸 알 텐데 그래도 기대 어린 기다림이 몸에 배어 있구나. 누군가가 자기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보면 내 마음 한구석도 뭉클해진다. 그 주체가 강아지여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네 가족의 소중한 강아지 제리,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제리. 그런 제리가 내게 자기 등을 보이며 엉덩이를 붙여올 때는 좀 감동했던 것 같다. 사냥 본능이 있는 동물들이 등을 보여주는 건 상대를 믿는다는 뜻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리가 H 옆에서 나와 J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면 저 까만 눈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이 작은 강아지에게 친밀해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가장 특별했던 시간은 제리와 보낸 하룻밤이었다. 자기 전에 내 근처에 온 제리 때문에 사실 나는 겁을 많이 먹었다. 자다가 내가 얘를 깔아뭉개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 걱정에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실제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느라 새벽 4시가 넘어 잠들긴 했다. 자다 깨서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제리는 아예 내 자리에 누워 있었다. 옆으로 가라고 손을 저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이구..” 제리 님은 한동안 쓰다듬을 받다가 자기가 만족했을 때에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다시 내 종아리께에 제 체온을 얹는 제리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재차 잠을 청했다. 제리와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그다음 날 우리 셋이 ‘H의 본가’에 갔을 때 제리는 온전한 자기 영역에 와서 그런지 나와 J를 다시 침입자 취급했다. 또… 짖는데요. 그 하루 사이에 익숙해진 나는 잠자코 소파에 앉아 제리의 경계 상태가 소강되기를 기다렸고, 제리는 조금 있다 다시 그 전날처럼 내 허벅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아마 이다음에 볼 때면 제리는 또 나를 보고 짖겠지만, 우리가 하루를 같이 보낸 기억은 내게도 있으니까. 그때는 또 군말 없이 바닥에 앉아볼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 내 친구의 소중한 강아지 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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