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입에 담지도 못 할 말들이 유행어처럼 퍼지던 시절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난 그런 욕들에 방호막이 되어 줄 특수학급이 없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대놓고 나를 부를 때 '기형아', '애자'라고 불렀다. 귀에 딱지가 배기도록 그런 단어들을 듣던 날이면 나는 펑펑 눈물을 쏟아냈고, 어느 날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얘들이 나보고 기형아래, 기형아가 뭐야, 왜 내가 기형아야?”
그때마다 엄마는 슬픈 한숨을 푹푹 내쉬시다가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써서 다음날 등굣길 내 가방에 넣어주셨다. 나는 그 편지 내용이 궁금했지만 펼쳐보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선생님께 가져다 드렸다. 그러면 선생님은 나를 놀렸던 친구들을 꾸중하셨다. 하지만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께서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유리가 배정받은 중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있어요. 유리가 조금 더 편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특수학급? 특수학급은 뭐 하는데일까? 중학생이 되면 친구들이 더 이상 놀리지 않을까?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땅콩 껍질을 내 책상 서랍에 넣지만 않는다면, 내 일기장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내 후드티에 모래를 잔뜩 넣지만 않는다면 어디를 가든 좋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학창 시절에 나와 같은 친구들을 한 번쯤은 만나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온라인 매체에서 '그 당시 내가 동네 바보라 놀렸던 친구들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주제의 글을 접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놀림의 대상이었던 나는 역으로 생각해본다. 나를 동네바보라 놀렸던 친구들은 어른이 된 지금,무엇을 하고 있을까? 설마 걔 중엔 그 시절의 잘못을 뉘우치고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도 있을까? 왠지 어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은 아주스펙트럼 한 곳이니까!
나를 괴롭혔거나, 괴롭힘을 보고도 방관하였던 친구들을 내가 자주 이용하는 복지기관이나 단체에서 우연한 기회에 이용자와 사회복지사로 마주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얘들아! 난 이제 괜찮아, 그날의 아픈 기억은오랜 시간이 지나 이렇게 글로 꺼내볼 수 있을 만큼 무덤덤해졌어,어쩔 때는 내가 정말 그런 일을 겪었나? 이런 느낌이 든단 말이지! 나 이만큼 괜찮아졌으니까 이제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얘들아, 그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장애인, 비장애인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 같이 한데 어울려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조금만 더 빨리 오도록더욱더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안 될까?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있는 힘껏 세상에 외쳐볼게,
나도 너희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이야!
어린 시절 동네 바보라 불렸던 제가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많이 궁금하시죠? 저도 여러분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그 이야기 꾸러미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