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가 판결로 뒤집혔던 기억
저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던 언론중재법을 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련 조항 중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찬성하는 게 있는데, 언론사의 정정보도를 확대하는 부분이죠.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만큼 일정 정도의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언론사는 정정보도에 인색한 게 사실입니다.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기사였더라도 정정보도는 알아보기 힘든 크기로 방송이나 신문에 실립니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 거의 죽일 놈 수준으로 매도당하지만 막상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는 이슈가 지나간 뒤라 단신으로 보도되곤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겠죠.
뒤늦게 언론사에 항변해봐도 정정보도는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나 형사 고소, 민사소송 같은 구제수단도 있겠지만 권력과 돈을 가진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단이지 평범한 이들은 거대 언론사를 상태로 채택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언론사가 정정보도에 소홀한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일단 언론사 특유의 고집으로 버티고 보는 겁니다. 설령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더라도 기사를 쓸 때 취재한 내용이 있으니 오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정정보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언론사 입장에서는 큰일이 아닌 경우에는 최대한 조용히 덮고 가길 원합니다. 정정보도를 인정하는 건 해당 기자와 데스크, 편집국장, 발행인 나아가 회사의 명예를 실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19년 5월 위안부 할머니의 후견인으로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각종 지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70대 목사 이야기를 단독 기사로 다룬 바 있습니다. 당시 수사했던 경찰과 이 사안을 알고 있는 시민단체 등을 두루 취재해 기사를 썼습니다. 할머니의 생애를 되짚으면서 나름 진실된 기사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기사가 나간 후 어떻게 위안부 할머니의 돈을 떼어먹을 수 있냐며 해당 목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달랐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법원에서는 할머니에게 간 지원금을 목사가 일부 쓴 것은 맞지만 중국에 있던 친아들의 진술을 토대로 아들과의 합의 하에 쓰인 것으로 판단한 것이죠. 해당 목사가 수십 년 간 할머니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던 점도 인정됐습니다. 그는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 기사로 인해 횡령범으로 몰렸던 억울함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죠.
하지만 저는 1심 판결에서 무죄가 난 것을 보도했을 뿐 필자의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있었지만 기사 내용에는 오류가 없다는 제 나름의 판단을 한 것이죠. 실제로 당시 시점에서 기사 자체에는 오류가 없었지만 제 기사로 인해 해당 목사 분이 입은 명예훼손은 상당했을 겁니다. 이것은 팩트 여부와는 또 다른 문제죠.
1심 선고공판이 끝나고 해당 목사를 찾아가 결과적으로 기사로 피해를 드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 분께서는 "나는 요즘도 윤 기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기자는 늘 기사로 말한다고 하는데, 당연히 기사로 전했어야 했던 미안함을 대면으로 전하게 돼 더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이 글을 통해 당시 정정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