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이자 늘 마음을 후벼 파는 그 명사. '기레기'라는 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정치부 기자를 하다 보면 늘 네티즌들의 비판에 노출됩니다. 일부는 욕설이 담긴 메일을 보내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저에 대해서만 문제제기를 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가족을 건드리면서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내뱉기도 합니다. 그럴 땐 그냥 흘려듣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
저는 2015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 전 국민의 슬픔과 트라우마 속에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는 세월호 사고와 구조 소식을 긴급 속보로 편성해 실시간으로 전달하면서 경쟁 아닌 경쟁을 펼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와 같은 대형 오보를 비롯해 무리한 유가족 취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기자+쓰레기'라는 의미의 '기레기'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이어서 기레기라는 말을 밖으로 꺼내 쓰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기자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무리한 속보를 지양하고, 원치 않는 유족 취재를 자제하는 대신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에 집중하는 등 재난재해 등 사고 보도에 대한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단독 경쟁을 이유로 한 미확인 기사들은 크게 줄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때 생겨난 '기레기'라는 단어는 이후 현직 언론인들의 부정과 비리, 정파적 보도 등의 사례와 묶이면서 점차 전 국민이 사용하는 보통명사의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제는 기사가 맘에 안 들 때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내용과 태도, 외모까지도 '기레기'를 판별하는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같은 출입처에 있는 기자들끼리도 서로를 놀리는 의미로 '너는 기레기야'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원치 않는 기사를 쓰면서 자조적으로 '나는 기레기다'를 외치는 기자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네요.
대법원도 올해 3월 '기레기'라는 단어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에 판결을 내놓은 상황이니 앞으로는 수시로 들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 유명 정치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입장과 다르거나 혹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기레기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책임은 저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한 것을요.
비판은 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기레기'라는 말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면 일부 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언론 신뢰도 조사 등을 통해 매년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일부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기자가 그래도 아직 사회적 영향력이 있으니 '기레기'라는 말을 쓰는 것 아니겠냐, 앞으로 더 잘하자"는 말을 들을 때 힘이 납니다.
저는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이 비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논리가 좀 엉성하더라도 비판이 없는 것보다는 비판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게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 관점에서 많은 이들을 비판해온 만큼 저에 대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비판도 수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기레기라는 말이 남용되고, 그로 인해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더 이상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가 생기는 건 요즘의 현실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의 사실성은 검증받아야 하나 공인된 팩트가 존재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은 너무나 큽니다. SNS나 유튜브에서의 주장만을 사실로 믿는다면 우리 사회는 음모론의 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고,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방법도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기자들의 취재 행태나 기사에 대해 따끔하게 비판해주시되, 기레기라는 말로 전체를 오염시켜서 함께 쓰는 우물에 침을 뱉는 행위는 조금씩 줄여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포함한 좀 더 많은 기자들이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