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지금 자신이 사는 집 지하에 수십 톤의 폐기물이 방치돼있고, 이곳에서 악취를 풍긴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쓰레기 더미에서 생겨난 여름철 모기 떼와 각종 벌레의 습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상황이겠죠. 하지만 이런 쓰레기 동산을 40년 간 방치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재건축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이야기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은마아파트 지하실에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방치돼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부유층이 주로 사는 동네답게 경비원 분들은 외지인인 저를 매우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취재를 목적으로 지하실에 들어가려고 하니 제지가 이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주민들이 많이 이동하는 시간을 틈타 경비분의 눈을 피해 지하실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녹슨 철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지금은 단종된 오래된 냉장고를 비롯해 커피포트, 의자, 책상, 장롱, 소파, 이불, 가방, 방석 등 생활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바닥에 쌓인 흙먼지가 수북하게 올라와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배수관과 통신선 곳곳엔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벌레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죠.
28개 동 4424가구가 사는 은마아파트 각 동엔 이런 지하실이 1, 2개씩 있는데 모든 지하실에 생활쓰레기를 포함한 폐기물이 버려져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이사 가는 주민들이 아파트 주변에 버린 폐기물인데 처리할 곳이 없어 지하실로 옮긴 것이었죠. 지하실 쓰레기가 문제가 되자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2014년 쓰레기 양을 추산한 적이 있는데 당시 2300톤가량 됐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리사무소 직원이나 경비원 등을 제외하고는 아파트 지하실에 이런 쓰레기가 쌓여 있다는 걸 아는 주민이 많지 않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언론사에서 이를 작정하고 취재한 것도 사실상 제가 처음이었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주민들은 지하실 청소를 요구했지만 아파트 대표자회의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28개 동에 있는 각 지하실의 쓰레기를 다 치우려면 15억 원의 비용이 든다는 이유에서였죠. 은마아파트는 65%가량이 세입자인데, 집주인 입장에서 재건축될 아파트에 굳이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또 재건축을 위해서는 최대한 아파트가 낡아야 한다는 대답도 돌아왔습니다.
이때의 이야기를 모아 재건축만 바라보다… 은마아파트 지하실엔 폐기물 2300t(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20&aid=0003258550) 기사를 썼습니다. 한국사회의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주민들은 고장 난 엘리베이터 녹물이 나오는 배수관, 쓰레기 더미인 지하실을 견디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동대표자 회의를 거쳐 올해 7월 이 많은 쓰레기를 치웠다고 합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만 3억 5천만 원에 달했습니다. 재건축이 시행될 기미가 안 보이자 결국 주민들이 나선 것인데요. 우리나라의 부유함을 상징하는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수십 년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왔던 것은 부동산 광풍이 낳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