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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Oct 23. 2021

갈 곳 없는 아이들..보육원 퇴소 청소년 이야기

가슴 아팠던 취재 기억

  사회부 기자를 하다 보면 평소 잘 만나지 못하는 이들을 취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죠. 저에게는 보육원에서 보호종료된 아동들이 그랬습니다. 


  선배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보호종료된 아이들을 데려다 교육을 시키고, 취업 기회를 주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사로 전달하면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아 그곳의 대표 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흔쾌히 만남에 응해주셔서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대표님과 만나서 들은 이야기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충격을 줬습니다.  


  퇴소한 청소년 가운데 성매매에 빠져 드는 경우가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대표가 보육원 퇴소생들에게 실시한 무기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흥업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가 전체의 7.3%였다고 했습니다. 조사 자체에 응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 실제는 더 많을 거라는 말과 함께였죠. 사기, 폭력 범죄에 연루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종종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사회부 기자를 하면서도 자립에 성공한 보호종료 청소년 이야기를 많이 봤지만 현실이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2016년 발표한 보호종료 아동 자립 실태 조사에서도 퇴소자의 절반 이상이 취직에 성공하는 등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막을 들어보니 복지부 조사는 보육원을 퇴소한 뒤에도 꾸준히 연락이 되는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추적조사가 가능한 이들은 대부분 자립에 성공한 케이스인데, 실제로는 보육원에서 받은 상처나 지금의 비루한 삶 때문에 연락조차 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조사 대상이 아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해에만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청소년들이 1000명이 넘고, 가정위탁까지 합치면 2500여 명에 달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하기 힘들었죠.


  이들이 처한 상황을 먼저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과 만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표님은 인터뷰가 가능한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면서 그전에 저에게 한 가지 주의사항을 줬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이들이라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죠. 아이들에게 함부로 약속을 하거나 실망할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주의사항을 듣고 한 명씩 아이들을 만나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정서가 불안정하거나 너무 쉽게 사람을 믿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조금의 관심과 애정도 크게 받아들이고, 너무 쉽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맙기도 했지만 냉혹한 사회에서 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이 성향이 이렇다 보니 사기와 유혹에 너무 쉽게 노출됐습니다. 보호종료 아동들은 만 18세가 돼 보육원에서 퇴소하게 되면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300~500만 원가량의 자립정착금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돈이 실제 정착에 쓰이기보다는 가까이 지내던 보육원 형, 동생이나 지인에게 뜯기는 경우가 일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뒤늦게 나타난 부모가 함께 살자면서 수백만 원의 자립정착금을 받아간 뒤 다시 연을 끊어버리기도 했죠. 그때의 이야기를 '갑자기 나타난 부모… 보육원 퇴소 아이들의 자립정착금 가로채'(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226864) 기사에 담았습니다. 


  사실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는 더 많았습니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 모아놓은 돈 없이 보육원을 나왔고, 퇴소 후 폭력을 휘두르는 삼촌을 피해 집을 나온 A양이 생각납니다. 그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인근의 PC방 구석에 몰래 숨어서 자거나 찜질방, 여관, 절을 전전하면서 정부에서 나오는 월 30만 원의 보조금에 의존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돈이 다 떨어졌을 때는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고 하더군요.


  보육시설에서 당한 성폭행을 뒤늦게 고발했지만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B양도 기억납니다. B양은 오히려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벌금을 물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제 말에도 B양은 늘 괜찮다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돈 벌 기회라는 보육원 형의 거짓말에 속아 대구까지 내려가 휴대폰 사기 판매에 동원됐던 C군도 있습니다. 지체 장애 성향이 있었던 B군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3000만 원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합숙을 하면서 말을 안 들을 때마다 구타를 당해서 몸에는 선배들에게 맞은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어렵게 자립에 성공한 이들도 엄마 아빠가 없는 상처에 세상에 기댈 곳 없다는 외로움으로 정서적 불안함을 호소했습니다. 평생을 보육원에 살면서 라면 하나 제대로 못 끓이고, 은행에서 통장 만드는 법도 모르는 아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기사에 담고 싶었지만 '많이 반복된 기사여서 기시감이 든다'는 지적 때문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계속 늪으로 빠졌고, 그러는 사이 생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기사를 쓸 수 없는 일에 언제까지 관심을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러던 중 올해 2월 아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보호종료 아동 ‘아영’(김향기) 유흥업계에서 일하는 초보 엄마 ‘영채’(류현경)의 베이비시터가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삶에 지쳐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려는 영채를 아영이가 만류하고, 팔려간 아이를 다시 데려와 또 하나의 가정을 꾸립니다. 보호종료 아동들이 가정이 없어서 겪은 심리적 공황 상태를 영채의 행동을 통해 너무나 잘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취재하면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한참 눈물을 흘렸습니다. 



올해 2월 개봉한 영화 '아이' 포스터. 영화를 보는 내내 취재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다행히 올해 7월 정부 대책으로 보호연령이 만 18세에서 24세로 늘어나고, 공공후견인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자립지원금 규모와 임대주택 지원책도 커졌죠. 제도는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이미 사회에 나온 이들이 도움을 받을 길은 여전히 없어 보입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아동들은 위급상황 때 저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서 그나마 도움을 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저라고 생각했던 거죠. 오죽 주변에 기댈 데가 없으면 저를 떠올렸을까 가슴이 아팠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기회를 주고 있는 걸까요. 가끔씩 보육원 출신 아이들이 삶을 포기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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