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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Nov 03. 2021

정치부 기자의 '쪼찡' 문화를 아십니까?

기자가 정치인을 취재하는 노하우

  "의원님 오늘 국정감사에서 호통 치신 거 진짜 제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이번 이슈에 대해서 의원님 아니었으면 기사 못 쓸 뻔했어요."

  "오늘 연설에서 말씀하신 이 내용 너무 좋았어요."


  여러분은 '쪼찡'이라는 말을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쪼찡은 언론계의 은어인데요. 취재원을 칭찬하면서 친밀도를 높이고, 편안한 대화를 하도록 이끄는 방식을 뜻합니다. 특정 인물을 띄워주는 기사를 '쪼찡 기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쪼찡'이라는 말은 일본말 초우친(提燈)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유력한데요. '남의 앞잡이가 되어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선전하는 기사를 쓴다는 뜻'을 지닌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취재를 하다 보면 쪼찡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기자는 경찰이나 검찰처럼 수사권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취재원에게 정보를 강제로 얻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기자 스스로가 정보가 워낙 많아서 취재원과 자연스럽게 정보를 교환한다면 좋겠지만 웬만해서는 사용하기 힘든 방식입니다. 좋은 정보가 있으면 대부분 기사를 쓰지 정보 교환을 위해 축적할 만큼 풍부한 정보를 갖기는 어렵죠. 


  그런 상황에서 기자를 경계하는 취재원을 무장해제시키고,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 중 하나로 기자들이 전통적으로 애용하는 게 쪼찡입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얻는데 도움이 되는 데다 친밀감을 형성할 수도 있다 보니 저도 즐겨 쓰게 됩니다. 


  쪼찡에도 나름 노하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서, 진심 어린 반응과 함께 전달하는 것이죠. 남들이 다 하는 그저 그런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기에도 나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여야 효과가 큽니다.


  쪼찡은 주로 술자리에서 많이 이뤄집니다. 가끔 기자들이 밤늦게 까지 취재원들과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권언유착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실을 잘 모르는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방식이 아니면 기자들이 핵심적인 정보를 얻을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술자리를 아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누구인들 밤에 쉬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시간과 몸을 축내가면서 열심히 취재를 하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 쪼찡을 예찬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어느 순간부터 정치부 기자로서 쪼찡이 정치인을 더욱 망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부에서는 유독 쪼찡 취재가 많습니다. 이들의 닫힌 입을 열게 만드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이죠. 국회의원 정도 되는 정치인들은 자존감이 강하고 의전에 익숙하다 보니 칭찬에 약한 편입니다. 쪼찡이 난무하는 세계에 살다 보니 정치인이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고, 여의도 정치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죠.


   사실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기자가 정보를 얻는데 무척 도움이 되기 때문에 쪼징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사실에 기초한 칭찬을 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서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사이라면 조언이나 쓴소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몇몇 정치인들은 자신에 대한 쓴소리를 원합니다. 조언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양질의 정치인이라는 반증인데요. 이런 이들 중에서는 쪼찡을 일삼는 기자들을 멀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본인에 대한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고, 진로를 상의하면서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곤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좋은 정치인 탄생에 기여하는 것도 정치부 기자의 보람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언론계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스 마와리(경찰기자), 도꾸다이(특종), 미다시(제목), 당꼬(기자들끼리 담합해 기사 소재와 내용을 결정하는 것), 우라까이(기사 베끼기) 등이죠. 이 글에서도 마땅한 대체 표현을 찾지 못해 쪼찡이라는 일본어를 인용했는데, 계속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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