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유치원 자리받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태어나자마자 동네 유치원에 등록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아내의 정성이 통했을까? 정성스러운 손편지가 효과를 보인 것일까? 아이는 우리가 바라던 동네 유치원에 등록을 한다. 낡고 허름한 건물이지만, 건물 뒤편으로 가득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어 아이의 마음에도 드는 모양이다.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하루의 대부분을 낯선 이들과 함께 생활함에 버겁겠지만, 독일말도 여전히 서툰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지만, 아이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행복함을 충만하게 누리며 지냈다.
아이가 자람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했던 우리는 동네에서 이사 갈 집을 알아본다.
마침 좋은 기회로 원하던 크기의 집을 구한다.
아이의 유치원이 가득 보이는 집 3층. 아이의 하루를 함께 할 수 있어 우리 부부는 참으로 행복했다. 날이 좋은 날 창문을 열고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아이의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애간장이 타지만 창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놀이터 한복판에는 너도밤나무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 낡은 타이어를 매달아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볼품없는 놀이터이지만, 수십의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뛰고 넘어지지만,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땀에 흠뻑 젖어 뛰어다닌다.
1년쯤 지났을까? 유치원은 새단장을 위해 공사를 시작한다.
1년 정도 지났을까? 놀이터는 푸른 잔디와 멋진 놀이시설로 새단장을 했다.
놀이터 한가운데 자리를 지키던 너도밤나무는 병이 들어 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그림으로 남긴다. 아이를 웃게 해 주고 품어주던 나무는 더 이상 없다.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새 유치원이 보이는 집에 산다. 유치원 가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초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