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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anone May 21. 2021

독일에서의 15년

지독한 느림보

독일로 건너와 산지 15년째. 독일 삶이 느리다 말만 들었지 막상 독일에서 며칠을 지내보니 모든 게 더디기 그지없더라. 처음엔 인터넷 속도에 놀란다고들 하지만, 인터넷 설치를 의뢰하고 설치기사를 기다리는 것 또한 함흥차사더라. 한국에서 평생을 살다 낯선 땅에 와있자니 지금까지의 나의 삶의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이 느렸다. 유행도 느리고, 서비스도 느리고 하물며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마저도 이곳에서는 희귀한 상태였다. 모르긴 몰라도 세계적인 흐름보다 항상 2,3년 느리게 발동이 걸리는 느낌이다.


요즘 중국으로 스카우트되어 활동하고 있는 운동선수들 중에 실력이 예전만 못 하면 ´중국화가 된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던데, 나 또한 10년을 넘게 살고 있다 보니 독일 화가 되는 모양이다. 이제는 그 느리디 느린 독일 인터넷에 익숙해져 있고, 수리공을 부르면 당연히 일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을 인지하고 있다. 집 앞 주차장에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지면 응당 한 달여간은 다른 주차공간을 찾아 나설 마음의 준비를 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던 2020년 초반에도 나는 마스크를 당분간은 구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미리 한국에 계신 가족들에게 부탁의 메시지를 날렸다.


10년이 넘는 동안 내 삶의 속도도 조금씩 느려졌다. 아니, 한국과는 또 다른 체계의 시간 개념에 익숙해지고 스며들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랬고 여기에서는 이렇다.


익숙해지니 좋은 점도 있다.  

계획했던 것에 하루만 지연이 되어도 안절부절, 울그락 불그락 했던 나였다면, 지금은 앞뒤 하루 이틀은 염두에 두고 있는 여유 있는 내가 되었다. 업무 중에도 정말 급한 사안이 아니라면 시간적으로 충분한 여유를 지원받는다. 꼼꼼하게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늦지 않고 제시간에 맞추어서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받는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경험이니 모든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 개념에 비해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제공받는다라는 뜻이다.


어찌 됐든, 독일 사회는 느리다. 느려서 변화에 대응하기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 정도 속도라면 일상에서 무언가 변화가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인지 하지 못할 정도의 느림이다. 천천히 바뀌어간다. 동네 어르신들은 카드 단말기 등에 여전히 취약하다. 하지만 어디에나 그것들을 대체할 옛 방식이 공존하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서히 알아간다. 변화에 취약한 노인들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개선되어간다.

 

독일은 깐깐하고 보수적이다.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한편으로는 깐깐하고 치밀하게 계산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다이내믹한 한국의 시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된다.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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