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주스가 흐르는 강
다음 날 해님이 얼굴을 내밀 때쯤, 심온이는 벌써 반짝이는 눈으로 깨어나 있었어요.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준 아침밥도 순식간에 쏙쏙 비워냈답니다. 그리고는 과수원을 향해 허둥지둥 뛰어갔어요. 이른 아침이라 등굣길에는 친구들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수원을 돌아다녀 보아도 초롱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평소에는 윙윙거리며 춤추던 꿀벌들도, 귀엽게 노래하던 풀벌레들도 모두 사라진 것만 같았답니다. 심온이는 살며시 속삭이듯 "초롱아! 초롱아! 나 왔어! 심온이야!" 하고 불러보았지만, 사과나무 잎사귀들만 살랑살랑 춤추고 있을 뿐이었어요.
해님이 하늘 높이 떠오르자 학교로 향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어요. 심온이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답니다.
그때 갑자기 "이게 누구야! 내 과수원에서 사과를 몰래 따먹는 녀석이!" 하는 어른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란 심온이는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 도망쳤어요. 얼른 친구들 무리 속으로 숨어들었답니다.
심온은 이제 혼자가 되었어요. 매일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과수원을 살펴보았어요.
하지만 초롱이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아침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방을 메고 가면서도, 오후에는 혼자서라도 과수원 근처를 서성거렸답니다. 매일매일 초롱이를 기다렸지만, 그 신비로운 천살 회의의 결과는 아직도 알 수 없었어요.
연둣빛을 띠던 사과들이 어느새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어요. 심온이는 평소에 그토록 좋아하던 사과가 하나도 예쁘게 보이지 않았어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뛰노는 다람쥐들의 잰 발걸음도, 새들의 즐거운 노랫소리도 모두 슬프게만 들렸어요. 심온이의 마음속에는 초롱이가 남긴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과수원은 점점 더 쓸쓸해졌고, 한때 초롱이와 함께 웃고 떠들던 그 자리에는 이제 고요만 가득했어요.
등굣길가에서 예쁜 코스모스들이 살랑살랑 춤추듯 꽃잎을 펼치고, 하늘은 진한 파란빛이 되어 더욱 높이 올라갔어요. 구름처럼 멀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심온이는 '초롱이도 그렇게 멀어져 가나 봐요' 하고 생각했답니다.
이제는 초롱이의 별처럼 반짝이던 웃음소리도, 나비처럼 팔랑거리던 날갯짓 소리도 꿈결처럼 희미해져 갔어요. 하지만 매일매일 과수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심온이의 엄마는 아이가 걱정이 되었어요.
어느 날 심온이가 어디로 가는지 걱정되어 살며시 뒤따라가 보니, 과수원 앞에 홀로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 작아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도 아파왔답니다. '과수원에 무엇이 있길래 우리 아이가 매일 이곳을 찾아오는 걸까?' 엄마는 궁금했어요.
"심온아" 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달콤한 사과가 먹고 싶니? 엄마가 예쁜 사과를 골라서 사다 줄 수 있는데......"
"엄마!" 심온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어요.
"이건 정말 특별한 비밀이에요...... 내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돼요! 나중에 엄마에게만 얘기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가 없어요, 엄마."
엄마의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아이의 작은 비밀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도 매일 오후면 과수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이 새어 나왔답니다.
"우리 심온이가 친구를 잃어서 마음이 아픈가 봐……."
엄마는 창밖으로 보이는 심온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매일 저녁 식탁에서도 심온이는 전보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평소에 좋아하던 사과 디저트도 그냥 쳐다보기만 했어요.
달콤한 휴식이 찾아온 토요일 아침이었어요.
하늘은 솜사탕처럼 포근했고, 나뭇잎들은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심온의 마음은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어요.
심온이는 과수원 한편에 자리 잡은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요정들의 나라로 떠나버린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따뜻한 햇살 속에서 때로는 윙윙~ 소리가 들렸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꿀벌의 희미한 날갯짓 소리일 뿐이었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별빛처럼 반짝이는 작은 불빛이 요정의 장난처럼 심온이의 눈앞에서 반짝반짝 춤을 추었어요. 그러더니 마법의 주문이 걸린 듯, 그 신비로운 빛은 점점 밝아지면서 소중한 친구 초롱이의 모습으로 변해갔답니다.
심온이의 눈에서는 반짝반짝 기쁨의 눈물이 별처럼 쏟아졌어요.
"흐앙~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나는 매일매일 너를 기다렸단 말이야!"
심온이는 기쁨과 서운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답니다.
초롱이는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심온이를 바라보았어요. 그 눈빛에는 사탕처럼 달콤한 반가움과 구름처럼 포근한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답니다.
"내 작은 친구야, 날 기다렸구나?" 초롱이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상큼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실은 말이야...... 나도 매일 무지개 요정님의 집에 들러서 마법의 수정 구슬로 너를 지켜보았단다. 그래서 다른 과수원을 못 살폈다고 요정 왕님께 핀잔도 받았지 뭐야."
자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말에 심온의 마음이 금세 따뜻해졌어요.
"참! 아빠가 천살 회의에 참석하셨었어.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단다. 네가 나를 만날 수는 있지만...... 이 과수원의 마지막 사과가 떨어지게 되면 이 모든 추억이 사라지게 될 거야." 초롱이의 목소리가 슬프게 떨렸어요.
"무슨 말이야? 그럼 난…… 너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거야?" 심온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어요.
"음......." 초롱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속삭이듯 말했어요.
"무지개 요정님께서 이미 어젯밤 그 사과에 마법을 불어넣으셨단다. 요정 왕님도 눈물을 흘리셨지...... 우리 모두는 마지막으로 떨어질 사과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비밀이란다...... 난 그 사과를 매일 지켜보고, 더 열심히 돌봐줄 거야. 그러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초롱이의 목소리에는 희망이 가득했답니다.
"하지만 과수원 주인이 무서워......" 심온이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어요. "그 사과를 먼저 따버리면 어떡하지?"
"아니야, 걱정하지 마!" 초롱이가 달콤한 미소를 지었어요.
"이 과수원 주인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야. 가을이 지나도 배고픈 다람쥐와 새들을 위해 나무 꼭대기에 몇 개의 사과들을 남겨두시거든. 그리고......" 초롱이의 목소리가 달빛처럼 부드러워졌어요.
"설령 사과가 떨어지더라도, 우리의 소중한 추억은 네 마음속에서 영원히 반짝일 거야. 마치 달콤한 사과향처럼, 봄날의 따스한 햇살처럼......." 초롱이는 무지갯빛 미소를 지으며 말했답니다.
초롱이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밝게 소리쳤어요.
"심온아, 우리 과일나라에 놀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