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기 Jun 14. 2022

남국의 따뜻한 물결 - 우쿨렐레

손만 푸는 악기 연주

 가볍다 간편하다

우쿨렐레는 기타처럼 생겼지만 훨 작고 가볍다. 깨끈 없이 가슴이나 배에 팔꿈치로 끼는 것만으로도 고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작다. 여행지나 캠핑에 가져가기에도 부담이 없다. 넥 부분도 작기 때문에 손이 작은 어린이도 코드를 짚으며 연주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악기점은 물론 마트의 어린이용품 코너에도 장난감 우쿨렐레가 있을 정도이니 구하기도 쉬워졌다.


익히기 쉬운 편이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다

크기가 작고 넥도 작은 만큼 손가락으로 음을 짚을 부분이 좁아서 손가락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 배우기에도 쉬운 편이며, 말랑말랑한 현은 적당한 힘으로 눌러도 소리가 잘 난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도 활용될 만큼 빠르게 대중화되었고, 그만큼 인터넷상에 학습용 자료가 풍부하다.

다만, 기타를 먼저 배워서 익숙해진 상태라면 의외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기타와 타법은 유사하지만 코드가 달라 운지법도 다르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다. 이 좁은 만큼 이 크고 손가락이 두툼한 편이라면 좁은 공간 안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으며 줄을 짚기 곤란하기도 하다.


따뜻하고 촉촉한 소리가 소박하다

우쿨렐레 소리는 유독 따뜻한 소리에 물기를 머금은 듯해서 대충 쳐도, 잘 못 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화려하고 웅장한 소리는 아니지만 귀엽고 소박하게 재잘거리는 소리다.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며 우쿨렐레를 연주해본다면 그곳이 어디든 남국의 바닷가에 다다른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창 직장에서 워커홀릭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무리 재미 붙여봤자 일은 그냥 일이라고 했다. 즐기려 해도 즐길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방해되는 것만 같은 동료에, 진상으로만 보이는 거래처와 고객에, 어느 하나 바람 통하는 곳 없이 탁 막힌 기분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주말이었지만 멍하니 인터넷 서핑이나 하는 일탈을 즐겼다. 일을 때려치울 수도 없다는 압박감 속에 나름 최선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반복적으로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추고 멍하니 멈춰있던 동공이 흔들리게 만든 건 영상 하나였다. 해변의 야자수 아래에 할아버지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영상이었다. 어찌나 무심하고 대수롭지 않게 연주하는지 표정만 보면 그냥 배나 긁적긁적 으며 늘어져 있는 듯했다. 그게 너무 편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보는 나까지 느슨하게 늘어질 만큼.


한주가 더 지난 주말에 나는 이미 우쿨렐레를 품에 끼고 있었다. 다운받아 출력해 둔 코드표와 악보를 보며 더듬더듬 쳐 보는 동안 벌써 마음에 따뜻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 들어오는 듯했다. 숨이 트였다. 다음 휴가에는 꼭 제주도에 가서 해변에 앉아 우쿨렐레를 쳐봐야겠다 마음먹으며 '제주도 푸른 밤'을 쳤다. 방 안에 평온하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을 버텼다. 못 견디겠다 싶을 때마다 우쿨렐레를 꺼내서 또 일주일을 버텼다. 그러다 정작 일을 그만두고 나자 우쿨렐레를 잊어버렸다. 꽉 막혀 답답할 때는 숨 쉴 틈을 찾아 신선한 바람을 구해놓고 거센 돌풍이 불어닥치 을 닫고 틈새를 꽉꽉 막아두고 만 것이다.


언젠가 느긋하게 대수롭지 않은 우쿨렐레 연주를 즐기는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고요해진 나는 순수하게 우쿨렐레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잡은 우쿨렐레를 두고, 내 손은 또 기타 코드를 잡고 있다. 꿈을 방해하는 것은 나의 노력인가 나의 굳은 뇌인가. 아니면 미천한 재능에 가당치 않은 꿈이었던가.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시간이 흐르는 - 기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