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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사람 Jul 04. 2021

[시선 기록]채식주의는 어쩌다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

채식주의자가 참교육 대상이라고?

(위 캡처본은 유튜브에 채식 및 채식주의를 검색했을 때 자동완성이 되는 검색어들이다.)

 

 소수의 소셜 미디어를 제외한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채식주의라는 단어가 공격받고  있는 것을 많이   있다.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는 채식주의자는  교육의 대상이  많다.  넷사세라고 보기에는 현실 세계에서도 채식주의, 비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받는 질문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돼지와 생선의 차이라는 예상 기출 질문이  따라온다.  또한 채식에 대해 정보와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채식에 대한 반응이 그다지 상냥하지 않았고 그들의 선택에 궁금증이 많았는데  질문이 무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채식주의자에는 비건부터 플렉시테리언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나는 현재 엄격한 채식이 아닌 동물성 식, 제품 소비를 지양하고 있다. 가죽 제품 혹은 육고기가 들어간 식품 소비를 피하는 것이다. 직장이라는 핑계와 사회생활이라는 비겁함이 우선순위가 될 때 다수의 메뉴 선택권을 따르지만 다행히 코로나 시국으로 쭈욱 개인 점심식사만 진행되고 있다.


 일반식을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채식 및 비건 식단을 하는 사람들은 피곤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리, 과학, 의학 같은 전문적 주장을 떠나서 왜 채식주의자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무엇이 일반식을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일까?

  한국사회는 단체생활과 통일성을 강조한다.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각자의 개인과 취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직은 갈길이 멀다. 특히 조직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점심시간 중국집 메뉴도 통일하길 원하는 문화가 많다. 심지어 이슬람 사람들에게도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소속” 되었을 때 진짜 소속원으로 인정해주려고 한다.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채식주의자들이 비 채식주의자들을 바꾸려고 한다는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소수 집단이 공포 혹은 불편함의 대상이 될 때 나오는 예시는 발생 빈도수와 상관없이 자극적인 때가 많다. 패션쇼장에서 모피 반대 시위 등, “(그들 기준의) 과격한” 동물 해방운동이라 생각하고 불편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들 허락 밖의 행동을 한 것에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군대, 조직문화가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 채식주의자들은 더욱 환영받지 못한다. 여성들에게는 “다이어트” 및 “몸매 관리”라는 명목의 허락이 주어졌다. 실제로 나는 식단에 대한 귀찮은 질문을 들을 때 다이어트라는 쉽고 비겁한 핑계를 자주 사용했고 실제로 대화 시간을 많이 단축시켰다.


  채식을 선택하는 데는 동물복지, 환경, 건강, 윤리 등 많은 이유가 있다. 채식이 비판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논리가 없고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돼지가 중요하면 생선은 안중요한가?라는 비난이 가장 흔하다. 과학적으로 봤을 때 지능의 수준과 통점으로 분류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또 다른 과학으로 반박될 수 있다고 본다. 과학으로 육채식을 분리하기에는 꽤 까다로워 보인다.

 의학적인 주제도 빠질 수 없다. 미디어에서 잊을만하면 나오는 주제는 채식 vs 육식 어느 것이 더 “나은가”이다. 한국인답게 답을 딱하나 고르기 원한다. 대답을 굳이 고르자면 골고루 적당히 먹고 운동하는 것이 좋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 나온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답은 “정답은 없다”이다. 건강을 위해 식단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개인적인 신념과 트라우마로 인해 특정 음식을 못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각자 개인의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하는 이상적이고 무결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채식을 위해 선택한 토마토는 비행기를 타고 왔고 그 비행기는 공해를 배출했다. 옥수수를 기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해 농장을 지었고 그 옥수수들은 소의 사료가 된다. 식품 외에 저렴한 값의 공산품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임금착취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현대사회는 점점 더욱 빠르게 복잡해졌고 이를 통해 각자의 이유와 우선순위가 생겼다.


 세상의 식당과 음식들은 다양한 사연들을 다 담을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여유가 있을 때 받아들이는 게 아닌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 채식주의자는 참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각자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통해 윤리적인 소비를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모두가 지속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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