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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사람 Jul 21. 2021

[시선 기록] 권력의 탄생 : 자본과 평가의 만남

서울대는 왜 청소노동자들에게필기시험을보게 했나.


 청소노동자에게 필기시험을 보게 한 서울대학교의 갑질이 연일 논란이다. 서울대 안전관리팀 측은 청소 노동자에게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캠퍼스 내 건물 이름을 영어로 쓰게 하거나 점수를 공개하는 등의 모욕감을 주는 일들을 했다. 그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했고 휴게실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이 위의 사건들을 세상에 알렸다. 

 국내 최고 교육기관인 서울대는 왜 청소노동자에게 업무와 관련 없는 필기시험을 보게 하였을까. 그리고 이 시험은 왜 모욕감이 되었을까? 이 시험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산 이유는 이 둘이 권력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하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이고 두 번째로는 지식권력의 관계이다. 


  서울대는 국내 상위 명문 교육기관으로 존재만으로 그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소위 명문대 출신 타이틀은 대한민국 속 여러 분야에서 꽤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학교 공부와 무관해 보이는 연예인들도 명문대 출신이면 미디어에서 관심을 가져준다. 예술 작품처럼 그들의 작은 말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것이 쌓여 힘이 된다. 


 지식에 대한 욕심은 황금만능주의처럼 속물적이지 않고 외모지상주의처럼 부끄럽지 않다. 본래 지식 자체는 우리 삶에 필요하고 더 발전시키는 존재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속담처럼, 과거 양반들은 노비들이 글을 익히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배움을 통해 양반들의 위치를 탐낼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다가갈수록 지식은 권력이 되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지식은 권력이고 권력은 곧 지식이라고 하였다. 학력과 학벌이 높을수록 권력이 많아진다. 사회 속 흔히 상위 계층이라 불리는 의사, 변호사, 정치인, 사업가 등의 집단은 소위 엘리트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권력 혹은 자본력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통해 윤택한 삶과 힘을 얻고자 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모두에게 평등할까? 한국의 경우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고 고등학교는 진학률이 90%가 넘는다. 대학 진학률 또한 70%가 넘는다.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과 학원은 이제 하나의 한국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모두가 사교육을 받고 대학 혹은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력이 배움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학교마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있다. 하지만 금전적인 걱정 없이 공부에만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금전적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포기해야 할 때가 모두가 같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타계 층간 융화가 어려운 환경이다. 능력주의에 따른 분류가 계층의 양극화와 갈등을 촉진시키고 있다. 학군별로 학교가 나누어지고 시험을 보고 특정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자본이 충분할수록 평가를 통해 입학 가능한 상위 학교에 갈 확률이 높다. 각자의 배경을 무시한 채 노오력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평가는 불공정하다. 지식의 되물림은 불가능하지만 자본으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개인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지식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탈능력주의, 탈지식 주의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도 결국 또 다른 평가 기준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적 특권의식은 계급의 양분화를 만들고 사회 불평등을 가속화시킨다.  우리는 과연 현재의 시스템이 모두에게 공정한 시스템이었는지, 그리고 모두가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지 다시 고찰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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