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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사람 Aug 15. 2021

[영화 일기] 아는 여자: 담백하면서 사랑스러운

사랑의 시작은 궁금증







 화려하지만 간결하게, 고전적이지만 트렌디하게 등등. 창작자의 입장에서 반대되는 두 수식어를 공존시키는 것은 어려운 도전이다. 그리고 관람자는 상충되는 것들이 조화롭게 공존한 것을 볼 때 매력과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영화 <아는 여자>는 담백하지만 달달하게, 심플하지만 재치 있게. 어울리지 않는 두 수식어를 모두 붙일 수 있는 아주 멋스러운 영화다. 

영화는 약 20여 년 전 작품으로 2000년대 초반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지 않았었던 시절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치성과 이현과 같이 처음이었던 시절이 있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에 남아있는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영화다. 


평범하다 못해 단순할 수 있는 플롯은 담백한 대사들과 밉지 않고 사랑스러운 가지각색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치성. 어느 날 그의 앞에 그를 짝사랑하는 이연이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조용하면서 소란스러운 날들을 보여준다. 치성에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집이 수사 대상이 된 치성은 갈 곳이 없어지자 이연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둘은 아슬아슬 조금씩 가까워진다. 


영화는 대사와 연출 모두 세련되었고 관객들이 천천히 캐릭터에 마음을 열게 해 주었다. 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재치 있는 대사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절제된 연출 또한 무척 귀여웠다. 봉투에 접어서 들고 왔다는 표현과 짧은 장면. 마라톤 5등 상품은 김치냉장고다. 이 두 장면의 대사, 연출 모두 캐릭터를 사랑스럽고 친근감 있게 만들어 주었다. 치성에 집에 들어온 도둑마저도 미워할 수 없고 그의 사랑에 대한 개똥철학 또한 들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연은 치성을 오랫동안 짝사랑했다. 누군가를 오랜 시간 동안 짝사랑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짝사랑하는 주체자의 입장은 기다리를 것이 가장 쉬울 수 있다. 그 사람의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은 마음도 짝사랑이다. 첫사랑은 순수하고 서툴다. 이런 첫사랑의 떨림과 순정을 간직한다는 것은 선물 같은 일이다. 우리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고 지금 나도 모르게 먼 훗날 기억될 추억을 만들고 있다.  영화를 보며 그때 어렴풋이 남아있는 노력, 웃을 수 있는 아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순정과 계획들이 가득했던 그때의 나를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제목마저 심플하면서 재치 있으며 내포하는 의미가 깊다. 영화 후반 어떠한 깨달음을 얻은 치성이 그녀에게 찾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이름을 물어본 것이다. 영화 내내 이름이 없었던 그녀는 마지막 장면 치성이 그녀의 이름을 물었을 때 비로소 아는 여자가 아닌 한이 연이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의 시작은 궁금증이고 관심이며 하나밖에 없는 사람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한다. 치성은 이런저런 소박한 질문을 이어나가며 이연을 알아간다. 이렇게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혼자 하는 사랑에서 둘이 함께하는 사랑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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