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를 알게 해주는 여러 현상이 있다. 속이 쓰리거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등. 이런 현상 중에서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최근에 생겼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 방의 모습이다.
가족과 함께 살거나 타인과 함께 살 때 방의 모습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신호가 되지 못 됐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방이 더러우면 부모님이 치우거나 잔소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치우게 되었다. 타인과 함께 살 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어서 알아서 치우는 편이었다. 이 신호는 독립하고 나서 생겼다. 나를 돌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하나뿐인, 내가 어떻게 살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혼자만의 방이 생겼을 때 나타났다.
바빠서 치우지 못하고 계속 쌓여 있는 책상 위 컵들. 주방에는 설거지한 뒤 정리하지 않은 채 설거지했던 당시와 똑같이 있는 접시와 그릇들. 그 옆에는 설거지할 것들이 잔뜩. 물건의 지정 위치에 가지 못하고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노트, 책, 스티커, 볼펜들. 아침에 다급하게 화장하고 출근하기에 바빴다는 걸 보여주는 화장품들. 입고 벗기 바빴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바닥에 나뒹구는 옷들. 빨래하고 난 뒤에 정리하지 않아 옷이 다 말랐는데도 그 자리에 있는 옷들.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알 수 있는 과자 봉지들과 배달 음식 용기들.
일주일 정도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위의 모습인 집을 봤다. 일어나면 이불 정리부터 하는 사람으로서 위의 집안 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깔끔하고 정리 정돈된 모습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물건마다 위치를 지정해 주고, 물건을 사용한 뒤에는 꼭 제자리에 놓는다. 3달에 1번 이상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자주 사용하는 위치로 바꿔주고 안 쓰는 물건들은 정리함에 넣어 창고에 둔다. 이런 성격을 가진 내가 어쩌다 이렇게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됐다.
3번 정도 개판이 된 집안 꼴을 보고 분석해 봤다. 나에게 여유가 없어서 이런 집 상태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어나면 나가기가 바빴고, 집에 늦게 들어왔었다. 물건을 정리하기보다는 씻고 잠드는 시간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물리적인 시간 여유가 없으면 정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을 때 집안이 개판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많은데도 개판이 되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을 때였다. 집에 온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탈진이 주된 이유였다. 이때 할 수 있는 건 잠깐 앉아서 눈을 감았다가 30분 뒤에 눈을 떠서 몸을 일으켜 씻는 게 유일했다. 씻는 20분의 시간이 2시간처럼 흘러간 뒤 침대에 누워서 멍때리듯 핸드폰을 보면서 잠드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 정도였다.
외부적이나 내부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바로 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걸 알았다. 이걸 알게 된 뒤에는 위와 같은 집안 꼴을 정리할 때 나를 돌보며 집 정리한다. ‘집안 꼴이 이게 뭐냐, 미친 거 아니냐, 정신 차려라.’고 나 자신을 다그치기보다는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으면 집안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몰랐을까. 무슨 일이 또 있었구나’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이제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이렇게 다독인 후에는 헤드셋을 낀 후에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집을 정리한다.
입었던 옷들을 빨래통에 넣으며 덕분에 하루 종일 밖에 잘 돌아다녔다고 인사하고, 빨래한 후 다 마른 옷들을 개면서 다음에 새로운 설렘으로 만나자고 하며 옷장에 넣어둔다. 설거지했던 애들은 찬장에 넣으며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설거지해야 하는 애들에게는 덕분에 식사 맛있고 편리하게 했다고 고마워하며 설거지한다. 책과 노트, 볼펜에게는 덕분에 공부할 때 집중 잘 되었다고, 다음 공부할 때도 집중 잘 되게 부탁하며 제자리에 둔다.
이렇게 나의 하루를 너무나 소중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고마움을 잃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집을 정리하며, 다시금 집안의 모든 것들에 소중함을 느낀다. 정리가 끝나면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며,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걸 다음에는 좀 더 빨리 알아차려서 집안 꼴을 이렇게 만들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런 방 정리를 2번 정도 하면서, 이제는 집안이 조금만 어질러져도 나를 돌보는 말들을 하며 집 정리를 하게 되었다. 단순히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에서 나를 돌볼 수 있는 정리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오늘도 집에 가서 무엇을 정리하며 다독일지 상상만 해도 따뜻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