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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Sep 13. 2022

멀티태스킹의 함정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장소 지정법'>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오랜만에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쭉 돌렸습니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별일 없었는지 안부 인사를 건넸죠. 그러던 중 학교 후배가 고맙게도 먼저 안부 연락을 해왔습니다. 서로 반갑게 근황을 묻고 농담을 주고받다가, 후배가 천천히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배는 이제 곧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막 시작되었고, 몰아치는 과제와 프로젝트, 실습, 공모전과 기타 대외활동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힌다고 하더군요. 그 와중에 자기계발도 하고 싶다고 하니 참 골치가 아팠습니다.


후배는 제게 물었습니다. "선배,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기막힌 비법은 없나요? 선배는 일이 막 쏟아질 때 어떻게 하셨나요? 선배, 대학원 다니면서 독서모임도 하고 강의도 다니고 그 와중에 연애도 하셨잖아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후배에겐 제가 '멀티태스킹의 대가'로 여겨지고 있었나 봅니다.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참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너무 바빠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시간도 없는 사람이 흔해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바쁜 게 꼭 나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바쁜 만큼 성장하고, 많은 걸 얻을 테니까요. 하지만 잃는 것도 분명 있고, 혹시라도 그게 소중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멀티태스킹을 잘하고 싶다, 제 후배 말고도 이러한 소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멀티태스킹은 위험한 노력이라고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멀티태스킹은 하고자 하는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각종 강연으로 인지도를 올린 아주대학교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께선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멀티태스킹의 위험성을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김경일 교수님께선 인지심리학자들이 멀티태스킹을 '악마'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도 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익숙한 일일지라도, 그 일을 다른 일과 함께 하는 순간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던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죠. 아주 간단한 일에는 '껌 씹기'도 포함됩니다. 껌을 씹는 건 정말 간단한 일이죠. 껌 씹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겁니다. 이 단순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일의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해요. 껌을 씹으면서 단어를 외우면 20% 정도 기억력이 저하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멀티태스킹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우리의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우리 주변에는 분명 멀티태스킹을 잘하고, 이 능력으로 많은 성취를 달성하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일까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이 사람들이 만약 각각의 일을 따로 했다면 더 큰 성취를 이뤘을 것이다'라는 겁니다. 멀티태스킹을 했는데도 성과를 올릴 정도의 능력이라면 하나에만 집중했을 때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뤘을 수 있어요. 그나마 능률이 떨어진 게 그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되죠. 두 번째 설명은 '사실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과제 전환을 빠르고 효율적이게 잘 해내는 사람이다'라는 겁니다.


과제를 수행하는 뇌의 기능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할 때는 우리의 뇌가 그 일에 맞는 일종의 '모드(mode)'를 설정한다고 봅니다. 과제가 바뀌면 모드도 전환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는 우리 뇌가 '수다 모드'로 설정됩니다. 각종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떠올리고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내도록 언어 기능을 활발히 작동시키죠. 그러다 갑자기 회사에서 업무상 전화가 걸려 옵니다. 그럼 우리 뇌는 '업무 모드'로 상태를 전환합니다. 그래서 전화 내용에 집중하며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기억해 내고, 빠르게 처리해냅니다. 만약 이러한 모드 전환이 빨리 되지 않는다면, 전화가 걸려온 순간 굉장히 당황스럽고, 동료 직원이 하는 말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사실 이러한 모드 전환이 빠른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은 순간순간 모드를 바꿔가며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었던 거죠. 단지 그 집중 시간이 짧고, 집중하는 대상이 계속 변하니 동시다발적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모드 전환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환경 설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장소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어떠한 장소에 대응하여 그곳에서 하는 행동이 함께 연결된 채로 기억이 저장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침대에만 누우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잠이 쏟아집니다. 화장실에 가면 늘 핸드폰을 보기에, 핸드폰 없이 화장실을 갈 때면 세상 답답하고 지루합니다. 소파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몸이 녹아내리듯 내려앉아 소파를 등지고 바닥에 앉게 됩니다. 그리고 TV를 켜게 되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할 땐 먼저 어떤 일을, 어떤 장소에서 할 것인지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과제는 책상에서, 독서는 소파에서, 모임 준비는 집 앞 카페에서, 데이트 일정은 침대에 누워서 짜곤 했습니다. 사소한 일들은 굳이 장소를 배정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꼭 특정 장소를 배정했고, 늘 같은 장소에선 지정한 일만 했습니다. 덕분에 지지부진하지 않고 집중한 채로 일을 빨리 처리해낼 수 있었죠.


학교 후배에게도 위의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을 목록으로 정리해 보고, 하나의 장소를 배정해 봐라. 그곳에선 그 일만 해야 한다. 알겠나?" 후배는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계속 졸랐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모두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모니터링을 도와주고, 필요한 피드백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죠.


해야 할 일이 많은 여러분들에게도 이 방법이 도움이 될 거예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각각의 일에 장소를 배정해 보세요. 집안 곳곳을 활용하고, 그래도 할당할 장소가 부족하면 외부 공간도 적극적으로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집 근처에 여러 카페가 있다면 각 카페 별로 업무를 나눌 수도 있고, 스터디 카페나 도서관,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면 공원 벤치에서 해도 됩니다. 실제로 저는 시로 쓸 소재를 정리할 때 공원 벤치에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 쓰기에 살짝 권태기가 와서 쉬고 있긴 하지만요.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멀티태스킹이 아닌, 빠른 '모드 전환'을 연습하여 일의 효율을 높여 좀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얻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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