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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Mar 31. 2023

'고전' 속 뒤틀린 사랑을 만나다

한달한권 문철환콜 프로젝트 그 아홉 번째 이야기 <문제적 고전살롱>

1. 들어가기 앞서서

연대 중도, 그러니깐 나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그중에서도 학술정보관의 옥상에 가면 요즘 날씨에 그 운치를 즐기기에 매우 적합한 옥상정원이 하나 나온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으면, 그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적당히 가지치기가 된 그 나무는, 그 자리에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정도로만 다듬어 진채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튼튼한 나무의 기둥을 중심으로, 하트와 반달, 그 사이 어디쯤의 모양을 띤 이파리들의 향연을 자랑하듯이..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현상이나 관념이 그렇듯 고전 또한 그것이 만들어진 데는 그 취지와 가치를 온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예 원전 그대로만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시대인 현대로 그것을 가져올 때에도, 우리의 편의를 반영하여 그 곁가지들을 골라내며 다듬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그 중심에 놓인 가치 자체를 왜곡하거나 감퇴시키는 일을 없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마치, 소나무를 관리한답시고 기둥을 뿌리 채 뽑아 잘라버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읽어내야만 느낄 수 있는 그 시절의 문화 속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 그 시절, 하트의 모양은 비대칭적이었다

대개의 스토리가 그렇듯 고전 속 이야기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이나 정분을 다룬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실제로, 고전을 살펴보면 그 시대의 권력관계, 사회계층 등 시대상을 반영한 인물들의 성적(性的)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따위의 드라마에 나오는 알콩달콩한 사랑을 상상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때문. 훨씬 더 적나라하고, 완전히 남성중심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그 시대의 가족관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가부장적인 성적인 이야기가 고전의 주된 소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훌륭하신 선조들이 남겨준 고전의 주된 소재가 신체적-심리적 야한 이야기라는 것이 처음에는 글로서 인정하기가 약간은 부대끼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인정하고 나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당연한 인간의 감정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은 그 시대의 감성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들을 한 번 살펴보자.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을 담은 춘향전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영웅담 정도로만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경우에도 사실은 그 이면에는 복잡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숨어있다.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씨를 이곳저곳에 배출하고자 하는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홍판서는 사실 처가 이미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고 결국 첩을 들여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이는 기본적인 인간의 감지적인 관점에서의 욕망 실현 욕구에 기반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은 20-21c에 들어와서야 문화적인 성과로 얻어낸 일부일처에 만족하며 절제하기란 굉장히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한 남성의 욕망에 기대서 탄생한 것이 홍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모습’은 그러한 관계에 기반한다. 남자가 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첩의 능력이나 외모가 얼마나 출중한지와 별개로 모든 것이 첫째 부인인 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호칭을 포함한 모든 생활에 있어 첩과 그 자식들은 제약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비단 홍길동전 뿐 만 아니라 옥루몽, 변강쇠가 등 다양한 고전 속에서 그 비슷한 행태를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감성으로는 불편하거나 부적합한 것들을 우리 고전 소설 속에서는 그들만의 위트와 재치를 섞어서 마냥 동물스럽게만 표현해 놓지 않음으로써 2023년의 우리가 어느 정도 거리낌 없이 그것들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3. 그들은, 우리는, 왜 성과 사랑을 갈망하는가 (feat. 프로이트)

이러한 남녀 간의 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 철학자이지 동시에 심리학자로도 알려진 그는 남녀의 성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펼치며 인간은 성적인 욕망, 즉 '리비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임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는 성적인 충동, 욕망을 리비도라는 단어로 통칭하면서 그것은 사실 사춘기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에게 서서히 발현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성본능은 구강기ㆍ항문기를 통해 발달하다가 5세경 절정에 이른 후, 억압을 받아 잠재기에 이르고, 사춘기에 다시 성욕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자아를 가지기 때문에 삶 속에서 그 도덕성과 리비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러한 특징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데, 기본적으로는 임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이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려는 욕망이 훨씬 강하다. 신의 성교를 통한 욕구를 해결에 아무런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그리고 건강해 보이는 여자와 잠자리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그렇기 때문에 홍길동의 아버지는 수많은 첩을 거느리고자 한 것이고, 옥루몽 속 양창곡도 전시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불을 반쯤 젖히고 새벽 달빛에 비추어 강남홍과 함께 원앙을 수놓으려 부단히 애를 썼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리비도로부터 훨씬 자유롭나?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여성은 임신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러울 뿐 성적인 충동은 똑같이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욕망이 남성이 소유한 권력, 돈 등과 결합되면 훨씬 더 강렬하게 드러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역사적으로나 현시대를 바라보나 이런 일들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하는 것 같다.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한 남자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청춘 드라마에 나올법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통한 욕망의 실현도 가능하긴 하다.



4. 그 시절, 찌그러진 하트도 야기로 쓰였던 이유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왜 그 당시가 더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성적인 이야기 더욱 극단적이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판을 쳤을까? 그리고, 왜 많은 고전 소설이 이야기는 현대와는 달리 대개의 경우 그런 비틀어진 사랑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가 대부분이었을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본다.

바로, 그것 말고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다양한 소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는 그때와는 다르다. ‘BTS, 손흥민, 봉준호 000 let's go.’라는 밈만을 들여다보아도 그 답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의 기분 좋은 노래를 10g도 안 되는 에어팟이라는 신문물을 통해 우리는 어디서든 듣는다. 영국이라는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되는 우리나라 선수의 스포츠는 우리의 안방에 꽂히고, 세계적인 거장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통신사 할인을 끼면 단돈 만 원 정도면 누워서도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러한 것들이 전무했을 것. 지금처럼 먹방을 진행할 만큼 먹을 것들이 많던 시절도 아니었고, 문화생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뒷산 산책이나 주막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 정도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남녀 간의 정사를 다루는 아슬아슬한 핑크빛 이야기가 우리 고전의 주된 원천 소재가 되지 않았을까? 그랬기 때문에 다소 망가진 형태의 일방적인 사랑 이야기가 우리 소설의 주된 이야기가 되었을 거다.


5. 글을 마치며


고전에는 선조들의 교훈이나 유희, 그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비록, 그 소재들이 현대의 감수성을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변형해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거다 즉,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이야기를 원형 그대로 받아들이되, 우리가 시대가 변한 현대 사회 속에서 유익하다고 또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것들 위주로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그걸로 된 것이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다른 문화에서 생각했던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중심 의미를 훼손하지 않은 채 우리의 것으로 내재화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흥미롭게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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