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 철학자 Oct 11. 2023

푸른 스위스가 매력적인 이유

네덜란드 교환학생 수요 끄적끄적 

1. 들어가며

지난 9월 초, 교환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내 안에서는 겨울이 아닌 여름날의 스위스의 푸르름을 꼭 보고 싶다는 외침이 가득 차 있었고 때마침 같은 학교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친구들도 스위스를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졌고, 바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그렇게 우리는 스위스 바젤 공항으로 향했다. 


2. 스위스, 사방이 푸르렀던 그 순간 

내 기억에 남는 3가지 순간, 물론 좋았던 시간을 훨씬 많았지만. 


1. 두 개의 세상 아름다운 호수 사이에서 낭만이란 배를 타다

인터라켄, 호수와 호수의 중간이라는 뜻. 스위스를 가는 한국인이라면, 약간 과장을 보태서 10에 9 이상은 이곳에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융프라우 산악열차,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콘텐츠가 즐비할 뿐만 아니라 튠호와 브리엔츠호, 두 개의 호수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그 자체로 볼만한 풍경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도 유사한 이유 때문에 인터라켄에 숙소를 잡았다. 에메랄드 빛 호수, 푸르른 나무들 그리고 그 머리에만 하얀색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설산들 중심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첫날에는 그 아름다움의 가장 중심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심은 우리로 하여금 브리엔츠 호를 관통하는 유람선을 타도록 만들었다. 유쾌한 선원들의 콧노래는 그 출발을 알렸고, 몸땅아리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에메랄드 빛으로 점철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그 물에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느낄 정도로, 모든 방향의 물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2. 늦은 밤, 와인 한 모금에 청춘들은 4시간을 떠들다


인터라켄에서의 밤이 깊었고, 양고기와 샐러드로 이뤄진 우리의 저녁 식사도 어느덧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공기와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쉬이 잠들게 하지 않았다. 마침 조그마한 샴페인도 있겠다, 우리는 쉽게 잠을 청하기보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편을 선택했다. 

교환 생활을 시작하면서의 고충, 각자의 네덜란드에서의 일상생활, 그리고 이곳에서의 추억들을 공유하다 보니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참을 얘기하던 도중,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여행도 좋고 공부도 좋고 운동도 당연히 좋고, 다 좋다 이거야. 근데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데?"

이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그래서 각자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보자는 거였다. 이에 대해 레오 톨스토이 같으면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거고, 만사가 귀찮은 내 초등학교 동창들은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지 뭘 무엇으로 살아'라는 대답을 할 테다. 하지만,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였기에 적어도 그 이상의 답들이 기대되었다.

진실된 마음가짐,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감정에 대한 솔직함 등등이 그 답변으로 제시되었다. 모두 일리가 있었고, 하나같이 다 중요한 가치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고른 답은 '정'이었다.

'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서만 쓰이다 보니 다분히 그 뜻을 정의하기조차 모호한 지점이 있지만, 그 뜻의 명확한 정의와는 별개로 그 단어 자체가 주는 따뜻함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골 장터에 나가면, 집 앞 단골 가게에 가면 느껴지는 사소한 '정'들의 향연은, 단 한 번도 가볍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굳이 정의해 보면, 정은 사랑과 의리의 결합인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리가 결합되면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는 감정적 연결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은 '정'으로 살아간다고 본다.


3. 그린델발트, 그중에서도 피르스트에서 남몰래 감상에 젖다

이튿날, 특히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인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니, 그린델발트 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게 신기했다. 우리는 산 위에서 즐길 피크닉을 대비해 간단한 간식거리를 마트에서 산 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린델발트는 그 자연 풍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자연을 온몸으로 즐기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액티비티가 있다. 물론 아쉽게도 우리는 'Sold out'이라는 이유로 원하던 카트 riding 체험을 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여정을 망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카트를 탈 수 있는 정거장이 아닌, 피르스트의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연결해 주는 정거장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리면 우리에게 선택지가 생긴다. 하나는 바닥이 유리로 된 전망대에 가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돌아오는 거고, 또 하나는 꽤나 거리가 있지만 산속에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꽤나 뜨거운 햇볕에도 당당히 후자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날은 계속 더워졌고, 길은 가도 가도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과연 이런 산속에 호수가 있어봤자 얼마나 크겠어라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심이 뇌 속에 생기고도 30분을 더 걸어갔다.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각자의 방법대로 푸르렀다..


그냥 황홀했다. 이곳까지 지치지 않고 와준 나 자신에게 되뇌어 감사의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리도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자리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돗자리를 피고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앉아서 보니 호수에 비친 설산이 더욱더 아름답고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스위스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모든 게 좋았고,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좋았다.

그런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나는 남몰래 돗자리에 누워 음악을 재생시켰다. 아무도 모르게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무선이어폰 덕분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나의 삶을 돌아보며 추억에 젖을 수 있었다. 자연의 한복판에서 어릴 때 듣던 음악을 듣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찡하게 울려왔다. 

그리고, 양희은이 부른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은 그런 나의 마지막 감정선을 제대로 자극했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 그래도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나였는데,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나 위주로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또 한 번 겸손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의 시야로 들어온 장엄한 풍경은 다시금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나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3. 하고픈 말

한창 빛나고 있는 그리고 더 빛날, 나 그리고 사람들

스위스는 아름답다. 그리고, 푸름이 그득한 스위스는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결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인생에서 가장 깨끗하면서도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따뜻했던 와플과 파트라슈의 따스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