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교환학생 수요 끄적끄적
모로코 2편 - 사람들의 따스함을 느끼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아직도 저는 덴 중위님의 말씀과 어머니의 말씀 중에 무엇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의 인생은 운명 지어진 대로 흘러가는 건지, 아니면 저 하늘의 바람처럼 그냥 둥둥 떠다니는 건지... 아마 두 개가 다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나도 잘은 모르겠다. 둘 중에 어떤 말이 더 맞는지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운명적인 만남이었든 바람처럼 만난 인연이었든 모로코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그 자체로 따뜻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기획하면서, 그래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현지 투어를 끼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우리는 한국인들의 후기가 많았던 '핫산네'를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가 2박 3일 넘게 사막에 있던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빛내 주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물론, 투어를 진행해 주는 입장에서 돈을 벌고 홍보를 하기 위해서 친절함으로 장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어준 마음은 그 이상의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어설픈 한국말을 사용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우리와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함께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어로 된 단어를 한 두 개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짓궂은 우리는 '개 멋있어', '존맛탱'과 같은 비속어를 섞어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 놀림마저도 핫산네 식구들의 표정을 웃게 하는데 일조했다. 밤하늘 아래, 캠프 파이어를 했던 우리와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반짝이는 별을 보기 위해 모래 언덕에 누워 있던 우리에게 말없이 카펫을 가져다준 그들의 호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사는지를 알려주는 매체 또한 즐겨보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레드 카펫 같은 곳을 걸어가는 것을 볼 때면, 때로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영화와 같은 일이 내게도 벌어졌다.
한 번은 모로코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있었다. 4명 이상의 다수였기 때문에 보통 택시를 애용했던 우리지만, 한 번쯤은 현지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은 의자는커녕 그 표식도 찾아볼 수 없었고, 조금 튀어나온 보도블록들 사이에서 어림짐작으로 때려 맞춰야 했다. 결국 몇 번이나 버스를 놓치는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탈 수 있었고, 기사님에게 행선지를 확인받은 후에야 안심하고 자리를 찾아 걸어 들어갔다.
'근데 들어올 때 사람들이 뭔가 다 우리 쳐다보는 거 같지 않았어..?'
'에이 기분 탓이겠지, 아니면 그냥 동양인이 신기하던가. 신경 쓰지 말자!'
그런데, 그것은 오해가 아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함께 앉아있던 한 소년이 휴대폰을 들고 수줍게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혹시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줄 수 있어요?'라고 세상 아리따운 미소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 순간에서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당연히 동의했고, 그 친구는 우리 한 명 한 명과 각각 셀카를 모두 찍은 후에야 자리로 돌아갔다.
기분이 얼떨떨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신기함에서 접근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도 진귀한 경험인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마치 연예인의 삶을 간접 체험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후에도 내릴 때까지 내가 느낀 망설이는 눈동자만 3쌍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계속 우리를 신경 쓰던 한 소녀가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찾아왔지만 하필 우리가 급하게 내려야 하던 타이밍이라서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기도 했다.
정말로 기분 좋은 떨림을 선사해 준 그들에게도, 우리와의 추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고 우리는 광장 시장 속에서 수많은 인파를 뚫고 나왔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야식을 사는 것과, 숙소까지 잘 찾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두 개다 그 자체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하필 축제가 열리고 있던 시내 한복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먼저 야식을 사러 KFC로 향했다. 역시나 광장 부근이다 보니 사람들이 붐볐고, 주문하는 줄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때 말을 걸며 도와준 사람은 직원도 아닌 옆에 있던 한 대학생이었다. 얼추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던 그는 어디서 왔냐는 말과 함께 자신의 뒤에 줄을 맞춰서 서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이번에도 느낀 것은 '손흥민' 선수의 위력... 처음에 어떻게 마라케시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던 그는 우리의 국적을 듣더니 바로 토트넘 핫스퍼의 'son'을 외치며 좋아했다. 한 사람의 위업이 이렇게 타지에서 소통하는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 다시 놀라웠다.
한편 기분 좋게 따뜻한 치킨을 들고 나오니 큰 난관에 부딪쳤다. 바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 숙소로 바래다줄 택시를 잡아야 한다는 것. 단순히 택시만 잡는 문제였다면 간단했겠지만, 모로코는 소형 택시에 4명 이상을 태우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잘 보이지도 않는 큰 택시를 잡아야만 했다.
실제로, 잘 몰랐던 우리는 택시를 잡아서 탑승까지 했지만 기사님은 4명은 힘들다고 이야기했고 내려야만 했다. '아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큰 택시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만 점점 더 많아졌다. 결국 조금 한산한 곳으로 먼저 빠져나가자는 의견이 나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걷기 시작한 지 2분이나 지났으려나, 뒤에서 시끄럽게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빠르게 지나가려 했는데, 갑자기 어설픈 한국말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빅 택시??'
그렇다.. 한 아저씨는 우리가 4명이라서 택시 승차를 거부당한 것을 목격했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우리를 계속해서 불렀던 거였다. 그분은 우리의 의사를 확인하자마자 지나가던 큰 택시 기사를 향해 소리쳤다. 간절한 외침에도 실패.. 그러나 인상이 푸근했던 아저씨는 딱 5분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도로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중형 택시를 잡아서 우리 앞에 데려와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알고 보니 그분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시는 업체 관련자라고 말씀해 주셨다. 끝까지 기사님에게 '내 소중한 사람들이니 잘 모셔야 한다'라는 말로 챙겨주신 그분은 귀엽게 다음에 또 놀러 오면 자기한테 연락해 주라고 애교를 피우셨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숙소에 올 수 있었고, 모로코 여행도 그렇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결국,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사람한테도 힐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던 여행이었다고 자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