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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24. 2022

아빠와 딸의 237K 트레킹

나이 합 97세, 60대 아빠와 30대 딸의 걷고 또 걷기

 “157Km를 걷었다고? 그런 걸 왜 해?”

 “올해  87Km를 걷는다? 도대체 ?”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제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의문을 품은 채로 어쩌다 보니 3년째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의적으로 157Km를 걸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대회가 있고, 운동 프로그램이 있으며, 그것을 참가하는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더 많다. 아빠와 내가 3년 동안 모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이 ‘트레일 OO’ 대회를 참가하게 된 이유는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고 1년이 지난 후부터이다.

  정년퇴직 후 아빠는 한동안 꽤 무기력해 보였다. 한 회사에서 30년 동안 매일 반복하던 일상이 멈췄을 때, 나는 아빠가 ‘자유!’를 외칠 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그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나와 달리 30년 만에 주어진 인생의 쉼표가 마냥 달갑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을 무료하게 보내는 아빠를 조용히 지켜봤다. 여행이라도 다니면 기분 전환이라도 됐을 텐데, 타이밍 좋게 코로나가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어떤 기분일지 싶었다.

  ’ 자식 놈들 다 키워놓고, 열심히 다니던 회사도 이젠 사회적으로 졸업했고, 이제 좀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아빠는 특별한 취미 없이 가족에만 헌신한 근면성실맨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취미를 가져보셔라하며 퇴직 선물로 끊어드린 골프회원권은 딱히 아빠의 흥미를 끌진 못했다.


  그러던 아빠가 어느 날 나에게 핸드폰을 스윽 보여줬다.

  ‘트레일 OO, 버추얼 마라톤’

  시작은 10Km였다. 10Km만 개인적으로 기록해서 주최 측에 제출하면 메달을 준단다. ‘10Km쯤이야.’ 하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이 방송국 놈들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올해는 서울 올레길 트레킹을 기획했습니다’하며 문자를 뿌려댔다. 아빠의 핸드폰을 받아 문자를 봤다.

  ‘트레일 OO, 157K’

  157Km?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왔다. 그때 찾아봤어야 했는데, 지나고 보니 대충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더라. 한 번에 걷는 것도 아니고 2개월에 걸쳐 8 코스를 완주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있지 않을까?’라고  자신을 과대평가한 그때를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아빠와 나는 뙤약볕 아래서 걷고  걸었다.  코스당 평균 15Km 정도, 시간은 6시간 정도 되는 코스를 걸으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우선 나는 종이인형 재질이었고, 장시간 걷는 것이 힘들었다.. 무더위 속에 생긴 변수는 신경을 날카롭게 했고, 즐겁자고 한 일이 즐겁지 않은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빠는 매번 그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계속했다. 앞서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뒤를 관성처럼 따라가며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이 힘든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왜 계속할까?’

 아빠는 비가 와도 걸었고,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에도 걸었다.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걸어야 할까 싶은 순간에도 아빠는 묵묵히 걸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마도 ‘할 수 있어.’를 증명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이뤄야 할 목표이자, 자신이 아직 도전할 수 있음을 증명해낼 수단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같이 하자고 제안할 때마다 쉽게 거절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같이 걷는다고 살갑지 못한 딸이 살가워질 수 없고, 무뚝뚝한 아빠가 다감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들은 지나고 보면 분명히 좋았다. 초등학교 이후 아빠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없는 내가 산을 오르며 아빠 손을 잡을 수 있었고, 아빠와 도시락을 먹어본 적 없던 내가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과일 도시락을 먹으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서울 일대를 걸어 다니며 아빠의 젊은 날의 추억을 들을 수 있었고, 긴 시간 걷고 난 후 더위를 식히기 위해 먹었던 냉면은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었다.


  매번 내년에는 안 한다 하며 벌써 3년째이듯, 아마도 내년에 다시 참가 모집이 열리면 아빠와 나는 대한민국 어느 일대를 걷고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올해도 왜 하고 있지?’라는 의문을 가진 채 걷고 또 걷겠지만, 10Km가 87Km가 되고 157Km로 늘어나듯 아빠가 목표하는 바가 더 커질 때마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그 길을 같이 동행하는 가족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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