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쌀쌀한 듯 따듯한 듯 봄이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아 향기를 맡으면 어김없이 2012년의 봄, 신촌 거리가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에 남아있던 가난한 시절. 한없이 벚꽃 엔딩이 재생되던 거리에 휘날리던 벚꽃 잎들은 어디로 갔을까.
13년 전의 나는 이십대였고, 젊었고, 설레었고, 가난했다. 늘상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가 좋았지, 라는 말은 사실은 젊음을 그리워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그때는 좋았다.
2012년의 신촌 봄 거리는 따듯했다.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있고, 설렘과 낭만이 가득한 대학 앞의 번화가.
13년이 지난 지금은, 사회는 혐오와 차별과 힐난으로 가득하다. 조금이라도 타인의 잘난 부분을 깎아내리려 하고, 억지로 트집 잡고, 여유 없는 뾰족함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듯하다. 이념과 사상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집단 이기주의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 남의 티끌만한 결점은 여지없이 유튜브 생중계로 올리고, 훈계질과 품평회를 연다. 타인의 행복에는 저주를 퍼붓고, 타인의 불행에는 환호성을 숨기지 않는다. 이젠 상냥하지도 않은 갑질과 폭력의 시대에 나는 사십 대를 맞이했다. 13년 전에는 이런 세상이 올 거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계부채 3000조원의 시대에서, 사실 나는 빚 없이 잘 지낸다.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저축도 하고, 나름 경제적 여유를 느끼는 중이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2012년만큼 있지 못한다. 남들처럼 갓생, 쉼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지만 앞에 뭐가 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서쪽으로 별을 따라 걸어가도 늘 같은 별자리만 보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간을 열심히 성실히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거기에 대해 왜, 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부채는 없지만, 철학도 없다.
퇴근길 라디오에 봄봄봄 노래가 나온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의 공기에 봄의 소리 또한 많아지는 요즘이다. 여유가 많았던 그 시절의 나로 잠깐이라도 돌아가서 한숨을 돌려보면, 한숨이라도 괜찮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