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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자주 찍지 않는 이유

자주 뒤돌아보다

by Forest Writer


얼마전에 와이프의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백업하기 위해서 외장 하드를 구매했다. 거의 10년치 쌓인 사진과 영상들을 외장하드에 옮기는데만 하루 종일 시간을 썼고, 핸드폰의 저장 공간은 그제서야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핸드폰을 사면 기본 5년은 쓰고, 연평균 100장 정도가 저장된다. 핸드폰의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저장 공간은 매우 넉넉하게 남아있다. 매우 특별한 날이나 여행, 기념할 만한 일들 말고는 핸드폰 카메라를 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핸드폰과 친하지 않다고 해야할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중무장한 40대 (아직 만 30대) 아저씨에게 핸드폰은 그저 소통의 수단일 뿐이다. 내 핸드폰 사진엔 대부분 내가 없이 풍경이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핸드폰의 주인은 아이가 된 것이다. 누군가 내 핸드폰을 길에서 주웠다면 절대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브런치를 쓰는 노트북의 사진 폴더에는 아주 옛날 사진 자료들이 백업되어 있다. 가끔씩 보다보면 시간이 가는줄도 모른채 빠져들곤 한다. 그 중에서 특히 대학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은 오랫동안 눈길을 붙잡곤 한다. 아, 그때 그랬었지. 아, 여기를 그때 갔었구나. 아, 거기 생각난다. 그때가 그때였구나.


백업된 사진을 볼 뿐인데, 자꾸만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힘들었고,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인데, 뒤돌아보면 또 다시 추억이다.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젊은 내 모습을 자주 뒤돌아보게 된다. 자꾸만 과거를 쳐다보고 감상에 빠지게 된다.


과거가 미화되면, 현재가 힘들어진다.


현재를 살아가고 2025년의 공기를 머금고 있는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들이 있을 것이다. 2045년에 미친듯이 그리워할 필름의 장면들을 나는 지금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왜 나의 시선은 2010년에 있는 걸까. 그래서 사진을 웬만하면 안보려고 한다. 그 생각이 짙어지면, 사진을 잘 안 찍으려고 하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거리에 나서면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아이를 빤히 쳐다본다. 한참 귀여울 나이에 생글생글 잘 웃어주는 아이가 예쁘지 않을 수가 없고, 참지 못한 어르신들은 아이의 손이나 발을 한번씩 잡아보기도 한다. 특히 할머니들이 더 그렇다.


그분들의 눈빛을 보면, 젊은날에 아이를 키웠던 본인들의 과거를 마주하고 있는듯하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 지나가는 아이들만 보면 그렇게 눈을 떼지 못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힘들고 지치는 날이 물론 있지만, 생글생글 웃는 아이의 모습에 항상 마음이 먼저 녹아내리곤 한다. 그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게 된다. 언젠가 30년 뒤에 이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보면서 오늘을 미친듯이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든, 찍지않든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한다.


진짜 눈부신 날은 항상 오늘이다. (브런치 4주년이라는 특별함 때문이 아니다) 오늘 길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시간들이, 지금 우리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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