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식사 자리를 했다. 요즘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야기는 자연스레 부동산 주제로 흘러갔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부동산은 상급지가 더 올라. 앞으로 폭등할 거 같으니깐, 돈 더 들더라도 지금 갈아타기로 꼭 상급지를 사야 해. 나중에 나이 들어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 그때가선 살던 집 팔아서 돈 마련하는 거야.
그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분은 앞으로 강남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예측' 하고 계신다. 예측에는 분명 근거도 있다. 여태껏 올랐으니깐 계속 더 오를 거야. 모멘텀이다.
그런데 피터린치는 모든 경제예측은 쓸모없는 거라고 했는데? 심지어 지금 집값은 저금리, 정책대출, 전세대출, 전세보증으로 능력보다 힘껏 부풀어 오른 상태인데?
부동산 계급도 라는 말이 있다. 어디는 1급지, 어디는 2급지, 여기는 하급지. 이런 식으로 사는 동네에 따라 계급을 매긴다. 역사적으로 5천 년 동안 계급사회가 지속되어서 그런지, 근대에 공식적으로 계급을 철폐했어도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여전히 위아래, 서열정리,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은 본능이 가득하다. 내가 너보다 위에 있어, 넌 나보다 아래야, 라는 감정 승리에 대한 열망이다.
그들이 정의하는 하급지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사람들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고, 상급지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모두 외부인이 저지른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 그건 다 외부인 소행. 우리 아파트는 상류층이 사는 곳이니 잘못 따윈 하지 않아.
그들이 정의하는 상급지에 먼저 입성한 사람은 자기 동네를 올려치고, 다른 동네를 내려친다. 너희들 사는 동네 별로니깐 어서 우리 동네로 매수해서 들어와. 비싸게 사서 들어와서 우리 동네 집값 방어해 달란 말이다. 사람들에게 중급지, 상급지로 갈아타면서 결국엔 강남에 입성해야 성공한 인생이라는 설교를 끊임없이 한다.
그런데, 강남에 입성하는 게 성공한 인생이라면, 실패한 인생은 강남에 입성하지 않는 삶인가?
일본사람에게 오사카 살면 승리자, 나고야 살면 패배자라고 말하면, 당신 미친 겁니까, 하는 표정으로 어처구니없어할 것이다. 미국사람에게 당신 샌프란시스코 살면 승리자, 샌디에이고 살면 패배자라고 말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분이 말한 상급지의 성공한 인생론은 결국 돈이 많아야 성공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집은 어찌 됐든 자산의 한 가지 수단이니깐. 비싼 집에 살면 돈이 많기 때문에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자산이 꼭 부동산 이어야 할까? 세상엔 투자할 것이 널리고 널렸고, 돈을 버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강남 아닌 곳에 살면서 투자로 돈 벌면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도 널리고 널렸다.
결국 상급지를 꼭 사라고 하는 사람의 심리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서 우리가 정의한 좋은 동네를 매수해서 가격을 올려줘, 나 전재산 털어서 여기 집 사는 데 올인했단 말이야, 여기 동네 집값 올라간다는 것에 인생 베팅했단 말이야, 나 돈 벌게 해 줘.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인생은 분명 돈이 많은 삶일 것이다. 그런데 돈이 많다는 것이 꼭 (그들이 정의하는)상급지 부동산을 가졌다는 것과 등가관계는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꼭 이런 반론을 펼칠 것이다. 그럼 넌 만약에 100억 있으면 강남 입성 안 할 거니?
나는 설령 100억이 있어도 우리 동네에 계속 살 것이다. 남은 돈은 예금 이자 받아서 여유롭게 생활비 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