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닥
사부작 사부작. 항상 나는 뭔갈 하고 있었다. 열심히.
광고를 공부하던 대학생때는 방학때마다 알바를 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광고회사에서 대학교 2학년때 일을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인턴을 해야한다고 얘기할 때 나는 인턴을 두 번이나했다. 그것도 그당시 주목받던 퍼포먼스 마케팅 분야 인턴이었다. 잘 마치고 나와서 내가 과연 광고를 하고 싶은 건지 몰랐지만 일단 나에게 메리트가 있는 것은 광고, 마케팅인지라 이쪽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기 위해 달렸다. 휴학도 반학기만 했어서 25살1월에 홍보회사에서 정규직 취업도 했다.
왠걸 지금은 누구보다 뒤쳐져있다. 회사를 그만둔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고, 광고홍보 분야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항상 일들이 나쁘진 않은데.. 몇 년간은 잘 하기 위해 이 일을 죽도록 팔 수 있을까에 확신이 없었다. 현재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 팀을 만들고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재밌다. 못넘을것 같던 4차원의 벽을 뚫었을 때 쾌감을 맛보는게 즐겁다. 그리고 개발도 하고 싶다. 답이 없는 곳에 답을 찾는 일,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기획과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내손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좋다. 조금 더 일찍 개발을 시작했더라면...남들은 2년차 3년차를 바라볼 시기에 커리어 전환을 준비해야하는데, 전환이 잘 될지 걱정부터 앞선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여전히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거다. 일단 개발 재밌고, 서비스 기획 재밌고 좋아. 근데 내가 뭘 만들고 뭘 기획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기획과 개발이 재밌다 정도. 앞으로 어떤 일을 선택하면 거기에 집중을 해야하는데 하나 정해서 집중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러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골든서클이라는게 있다. 왜(Why)를 중심으로 어떻게(How), 무엇을(What)하려고 하는지 메세지를 만드는 방법인데, 이 중에서 가장 핵심에 있는 '왜'를 건드려야 이 사람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 내 인생이 특히 그랬는데 나는 왜가 설득되지 않으면 연봉을 1천만원 올려줘도, 그 어떤 큰 회사여도 전혀 설득이 안되는 사람일정도로 왜가 중요했다.
그런 나인데 매번 나의 행동에는 왜가 없었다. '그냥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가 핵심이었다. 그래서 그냥 눈 앞에 닥친 일들을 재밌어 보인다는 말로 포장하고 무작정 했었다. 결국 이제와서 왜를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달려왔던 삶이 정 반대로 뒤집혔다. 이제 내가 가장 뒤다. 지금까지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만의 왜를 위해 달려온 사람들을 우두커니 뒤에서 바라볼 뿐. 꾸준히 마케터를 했던 친구들은 3년차에 접어들거나 대기업에 이직하고, 개발자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1인분을 할 정도의 역량은 안된다. 다시 바닥이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현실적인 문제도 크게 다가온다. 이제는 내 밥벌이를 해야하는데. 언제까지 사람들에게 얻어먹고 살 수 없는데. 조카한테 선물도 사주고 싶고. 남자친구 향수랑 옷도 사주고 싶고. 집에 티비도 놔주거 싶고. 그냥 지금 잘 하고 있고 이력도 있는 콘텐츠 기획쪽을 쭉 파서 콘텐츠 마케터로 취업하는게 가장 빠르지 않을까. 그래서 남는 시간에 사이드프로젝트로 기획도하고 개발도 하는거다! 하지만 또 애매하게 두개를 병행하다가 또 둘 다 놓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어짜피 기획하고 개발이 하고 싶은거였으면 좀 배고파도 참고 지금부터 하면 되잖아.
이제 하나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집중하기 위해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벌리고 사는지부터 정립하고 싶다. 나는 대체 왜 기획을 하고 개발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싶어하는걸까. 왜를 알면 모든걸 다 접어두고 이제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까.
또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푸념의 글을 쓴다.